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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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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10-17 08:34 조회 41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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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는 비슷해도 아주 다릅니다.

지식은 양이고 지혜는 깊이라서 그렇습니다.

먼 바다의 물결과 얇은 바다의 물결이 다르듯 지혜는 깊이에 따라 다른 결이 나타납니다.

믿음이란 이 지식과 지혜의 조화로써 인품의 결로서 증명됩니다.

 

1) 인내

믿음의 사람들은 믿었기에 언제나 인내가 있습니다.

노아는 혼자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1년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세월이었고,

아브람 역시 오랫동안 기다려서 약속의 아들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알았기에 믿음의 인내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세와 현대의 특징은 조급함인 만큼 너나할 것 없이 인내가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가 더 필요하거든,,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

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 기도인데,, 성도들은 기도 보다는 방법을 많이 찾고,

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셨는데 대체로 자기 필요를 먼저 구하여 말이 마차를 끄는 형국이 아니라 마

치 마차가 말을 끄는 형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어둔 가운데서 좌충우돌하는 일이 많이 생겨납니다.

이단사이비가 증가되고 거기에 빠지는 일이 그중 대표적인 것입니다.

한동안 666 표,, 베리칲을 받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 얼마나 많았나요?

하나님의 판단은 예수님이 기준이지 베리칲이 아닙니다.

요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

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없으면 이런데 미혹 당하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조상들의 원죄를 끊어야 된다는 교훈도 있었습니다.

다 지식은 있으나 온전한 지혜가 없으니 미혹에 잡히는 것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 자랑

그러므로 성도의 자랑은 일반적인 자랑과 사뭇 다릅니다.

일반적인 자랑은 무엇인가요? 흔히 듣고 보는 모든 자랑입니다.

물질이든, 지적이든, 영성이든, 자식이든,, 소유적인 것으로 그 자랑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은 많으면 교만하고 없으면 주눅 들고,,

있어도 헛헛하고 떠나갈 때 아픔을 준다는 점입니다.

약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세상사의 모든 고통이 여기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종의 집착인데 특히 이기심의 집착이 지옥 같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소유의 집착, 상실의 집착,,흔히 종교는 이 집착을 “끊어라” “내려놓아라.” 하는데 못합니다.

그 이유는 본질이 바꾸지 않고는 수행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힘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이루신 정과 육체와의 죽음에서 믿음으로 죄에서 죽고, 그 분의

부활하심으로 의에서 믿음으로 부활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개라도 혼자서는 미국에 못갑니다.

그러나 주인이 데리고 함께 가면 되는 것처럼 성도에게는 이일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새 속성이 나타납니다.

약1:9~10)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본래는 미천하고 벌레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의 믿고 고백했더니 하나님

의 자녀로 두 번째 태어난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 놀랍고 존귀한 지위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지위를 감사하면서 결코 행세하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의무는 다 이루고자 할뿐 권리를 누리려고 하지 않고 되레 낮은 곳과 작은 곳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임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저 교인이 진짜 성도냐 가짜냐를 아는 시금석은 간단합니다.

무엇을 자랑하고 지향하느냐 입니다.

 

3) 시험

얘들은 아프고 어른들은 아프면서 늙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도는 시험인데 곧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통해서 성숙합니다.

제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편찮으실 때 기도했었습니다.

“ 주님..2년만 더 살도록 해 주시면 제가 목사 안수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피난 나오셔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 모습 보셔야 되지 않겠나요?“

아버님은 일어나셨고 2년이 지난 후 목사고시 신청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으니 선배교수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왜 신청을 않하느냐고” 사실을 말씀했더니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 가운데 무엇이 우선이냐” 물었기에 결국 목사안수

를 받았습니다.

결국 내 아버지는 안수식을 참석하시고 돌아가셨는데,,안수식이 1989년도 10월 지금쯤이었고,, 목사안수 후 꼭 1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난처한 상황은 스스로 만들어 자신일 뿐,,하나님은 아무도 그렇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약1:13~14)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믿음이 없으면 지혜도 없어서 좋은 일은 자기가 잘해서 됐다고 자찬하지만 부족하거나 잘못된 일은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

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얼마나 구체적인가요?

이러저런 백서나, 설명서나, 백과사전도 새판이 종종 나오는데 비해 성경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정하셔서입니다.

또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에 얼마나 좋은지요? 언제나 그 뜻이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런데 이 계명을 귓등으로 듣고 자가 주장을 주장하여 언제나 탕자처럼 살아 자기 머리위에 숯불을 피우는 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늘 명심보감으로 품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약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

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의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동생들과 같이 예수님을 형으로만 인정했지 구세주와 하나님으로 믿지 못했다가 부활하신 후부터는 확실한 믿음으로 “주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약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

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일은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 “예배를 드린다” 의 정도가 아닙니다.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의 고백이고 삶입니다.

디도서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딛2:3)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결론) 믿음의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같아도 속이 다르고,,

남들처럼 온갖 사연들을 마주해도 스타일이 다릅니다.

반응하는 관심이 달라 복음적인,, 영적인 것에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아도 소와 개의 관심이 다른 이치입니다,

종이 다른 만큼 소리도,, 먹이도 소답고 개답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하늘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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