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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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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10-31 10:14 조회 3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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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어머니는 갓 시집 온 며느리에게 “요즘 시대가 좋아서 그렇지 옛날에는 며느리가 어른들과 함께 식사하지 못했다

“ 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그 시댁에서 사는 동안 시어머니와 식사하지 않았답니다.

성경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차별되어서 갈등은 물론 전쟁도 있습니다.

왜 차별될까요?

너나 할 것 없이 외모로 판단해서인데 그 결과 스스로 무덤을 파는 범법이 됩니다.

약2: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 긍휼의 문제

구별과 차별은 다릅니다.

구별은 이성의 문제라면 차별은 감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남녀노소로 구별하고,, 있는 자 없는 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장애와 비장애로, 주인과 종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는 단순하지만 감성으로는 아주 복잡하여 실제로 차별을 낳는 것입니다

 

요즘 국내에서조차도 많이 언급되는 말이 무엇인가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방지법입니다.

그래서 남성군인이 자기 신체를 훼손하여 전역된 일을 갖고 법원은 훼손자의 전역이 부당하다고 손을 들어 주었고, 국방부

는 이를 항소하고자 했으나 법무부가 항소를 하지 말 것을 지휘했습니다.

 

법 이전에 모든 사람은 인권이 있기에 교도소, 군대, 학교, 직장, 가정 등에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할 수 있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국민적 의식은 물론 법과 제도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을 없애면 자칫 구별이 모호해져 혼란이 오는데,,

이 혼란은 마귀가 좋아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차별이 있냐 없냐는 법 보다 인품의 문제입니다.

나의 인품에 따라 상대에 대한 차별이 있고 없고 하며,

또 상대의 처신여부에 따라 받고 안 받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임산부를 위한 지정좌석이 지하철에 있고 임산부는 임산부패치를 달고 다닙니다.

그런데 노인들이나 혹은 젊은이들이라도 그 좌석에 앉아서 임산부를 외면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는 앉은 사람의 인품 부족으로 임산부배려가 없는 탓입니다.

그러나 같은 임산부라도 누구는 그 패치를 보이면서 좌석에서 일어날 것을 요구하지만 혹은 자신이 양보하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칫 다툼이 될 일이지만 다툼이 안 되는 이유는 누가누구에게 긍휼을 베플고 배려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

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부터 차별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내 심정으로 상대방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일이 기독신앙인 것입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2) 기독신앙

기독신앙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큰 사랑에 기초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순종해야 참 믿음이고 억지가 되지 않습니다.

억지는 자연의 반대로,, 신앙이 자연스럽지 못한 꾸민 신앙으로 곧 가짜 신앙이 됩니다.

옛 유대지도자들의 대표적 특성인데 주님이 책망하셨고 지적도 하셨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

하는 자여야 하리라

 

이는 실천하지 않고 입만 앞세운 신앙이고, 자신만 위하고, 남은 상관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현대도 많습니다.

특히 관록 있는 신앙일수록 타성이 붙었기에 겉치레만 발달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지인장로님이 소식과 안부를 전해 왔습니다.

집중치료를 받는 우리 아가를 위해 기도부탁을 했더니 가족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손녀에게도 기도를 시켰답니다.

유치원 다니는 손녀는“하나님,,이 기도 꼭 들어주셔야 해요,

수아이모 아기 빨리 낫게 해주세요” 하면서 아주 간절하게 기도하더랍니다.

연상되나요? 예쁜 나머지 통닭을 주문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어른들의 기도는 간절함이 결여되었습니다.

결국 믿음이 이탈이고 변질인 셈이니 이웃 사랑도 그럴 것이고 마침내 교회 안에서도 교인차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아니 교인들끼리의 차별만이 아니라 교회끼리의 차별도 된 것입니다,.

이는 불행입니다,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대박을 쳤는데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첫째는 한국적 콘테츠이고,,

둘째는 세계에 만연해진 부익부 빈익부에 대한 공감 내지는 분노와 상실감이 있어서입니다.

사실 어느 나라든 나 잘 살기위해서는 남을 죽여야만 합니다.

나는 원하지 않지만 현실은 그런 것인 만큼 이미 정글의 법칙이고 서바이블 입니다.

교육이든,, 게임이든 전체가 다 그러니 끔직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시대정신으로 본다면 나의 이웃은 나의 적이니,,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다스려서 그렇습니다.

반면 하나님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는 어떤가요?

함께,, 같이,, 더불어 공화국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먼저 배려하는 사랑의 국가입니다.

이상적이지만 이미 임한 국가여서 내가 실천하면 내게도 임하는 아주 좋은 나라입니다.

 

3) 나의 나됨

우리는 성도로써 나의 나된 역할이 있습니다.

먼 땅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그 일 보다는 나 머무는 곳에서 이웃 사랑하는 일입니다,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

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느냐

 

세상에는 귀한 금이 3개 있습니다.

황금, 소금, 지금,, 우리는 지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을 나중으로 미루는 은사도 있는데,, 유감이므로 고쳐야 합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이미 기독신앙에 있어서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지식과 경험이 있어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는 말이고, 반대로 상대에 대해 비판을 잘하고 이유와 변명

에 능숙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살기도 어려운데 시끄러운 이유는 이런 전문가들이 양보 없이 충돌해서입니다.

야당과 여당이,, 야당끼리,, 여당끼리,,,우리의 신앙은 말이 아니라 손발이고 몸이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나찌 당원인 오스카 쉰들러의 삶의 궤적이지만 그는 차별 없이 유대인들을 구했습니다.

600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했는데 전쟁 후 그의 무덤에는 6000명이 넘는 유대인 후손들이 와서 감사추모 했습니다.

 

그의 나중의 독백이,, 알만했었습니다.

“저 자동차를 팔았으면 10명을 구했을 것을,,이 뱃지,,뱃지도 팔았으면 2명을 더 구했을 것을”

 

그 영화는 소설이 아닌 역사였기에 결과가 확실했습니다.

돈이 좋아 큰돈을 받고 유대인을 팔아넘겼던 독일군은 도망갔었지만 붙잡혀 교수형을 당했고,,그에게 자기 재산을 주고 사

람사서 살렸던 사람은 후대에 영화에서도 조명된 것입니다.

사3:11~12)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라

 

결론) 우리는 이성적 존재이기에 구별이 가능해서 차별을 낳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이 그 의미입니다.

누구나 차별 없는 생활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는 특히 외모로나 편견으로의 차별은 절대 삼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사는 한인을 미국교포라고 하는데 비해 중국은 달리 부르기 때문입니다,.

기독신앙은 이런 면에서도 능력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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