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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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 갖추지 못해도 신뢰만 받으면 내 것 없어도 남들이 신임해주어 살 수 있습니다.
신뢰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언행일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반대가 무엇인가요? “네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 믿겠다.”는 불신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1) 성도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지만 또 세상의 선생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앞서가는 만큼 신뢰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생의 모든 말과 행동은 잘 들어나는 만큼 모든 사람에게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남을 많이 의식하고, 남의 말도 잘하고, 비판도 잘하기에 선생으로 살기에 어렵습니다.
목사가 그 대표적인데,,가족전체가 많은 교인들에게서 판단 받는다면 얼마나 어려울까요?
설교나 목회가 힘든 것이 아니라 상전 많은 탓으로 스트레스 받아 병들곤 할 것입니다.
왜 최근 들어 부쩍 교회와 성도들의 신뢰도가 떨어졌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코로나를 통해서 보여준 언행불일치 때문입니다.
물론 소수의 정치적인 막말과 행위들도 포함됩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말이 있는데 “마음이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도다.”입니다.
사람이 이 말씀을 인용할 때는 자기 합리화를 이룰 때 사용하곤 합니다.
여기에는 발전이 없습니다.
또 같은 경우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하
여 말의 실수를 합리화시킨다면 역시 발전이 없습니다.
세상도 말에 대해서 교훈이 많지만 성경은 특별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그럼에도 독한 말, 험한 말,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 있다면 어딜까요?
정치적으로 선전선동이 있는 곳으로 거짓말이 많고,,인권이 없는 곳일수록 독하고,, 험한 말이 많아 이런 곳은 살기 위해서
충성경쟁까지 하기에 아부도 심한 특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담화문까지 독한 말이 난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거짓말을 하고 독한 말, 험한 말을 하며 선전선동까지 한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고 그것이 교회라면
덕을 세우기는 고사하고 허무는 일이 됩니다.
여러 해 동안 교회가 내홍을 겪었다가 이제는 다른 교회와 합병해서 안정된 교회의 장로님이 오셔서 식당으로 가면서 “목
사님,,새로운 교회성도들은 얌전한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강성이더라고요“했습니다.
이때 내가 뭐라고 했을까요?
“남들은 장로님과 권사님도 강성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개인은 좋은데 모여 단체가 되면 강하고,, 사납고 저질이 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공동의 특성 따라 이익을 얻기 위해서인데,, 성도는,,교회는 이 범주에서 떠나야 옳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과 손해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심판하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2) 성도의 특성
성도가 두 셋이 모이면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특징은 기도이고 전도이며 축복이고 찬양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상황 따라 험한 말, 독한 말, 거짓말이 있다 해도 인간적입니다,.
이 때의 인간적인 것은 부족한 인격의 인간이나 신앙이 미흡한 성도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닙니다.
약3:9~11)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
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그럼에도 그런 것은 단순히 유감을 떠나 마음의 변화를 이루지 못해서입니다.
지방에서 사투리를 쓰다가 서울에 오면 표준어에 익숙하지 못해 사투리를 씁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합니다.
그러나 불편하다면 고칠 수 있듯이 나의 마음 밭을 고치면 성도의 말이 됩니다.
약3:13~14)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차가 비틀거리면서 간다면 차가 음주 운전한 것이 아니라 운전사가 음주 운전한 것입니다.
차가 난폭한 것도 마찬가지이듯이,, 우리의 말도 입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훈련의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
제입니다.
우리 성도된 나의 주인은 더 이상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우리 영혼부터 새롭게 창조하셨기에
새 마음으로 새 노래와 새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
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3) 영적 전쟁
세상은 전쟁이 많습니다.
무역전쟁, 산업전쟁, 정보전쟁, 이념 전쟁 등,,
지금 중국과 미국이 패권전쟁을 하면서 대만을 놓고 동맹들까지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는 영적전쟁도 있습니다,
은유적으로는 빛과 어둠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주 예수님과 마귀의 전쟁입니다.
예수님은 밝히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
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이미 이 전쟁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완전 승리하셨기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쫒기면서도,, 머리가 상해졌음에도 꼬리로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가 밤에만 약탈하는 옛 인민군패잔병들처럼,,굳세지 못한 성도들은 여기에 놀라서 협조하고 되레 교
회를 공격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약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꼭 기억하십시오.
말은 인품이고 신앙이고,, 자기를 증명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 생명을 받았으면 말도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말이고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언어입니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
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같은 인삼종자라도 흙에 따라 맛도 성분도 다릅니다.
예수님 생명이 내게 심겨졌지만 옛사람언어로 사는 나와 새사람언어로 사는 내가 달라지는 만큼 친구가 다르고 주변도 달
라집니다.
약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순히 세치 혀의 움직임의 결과가 아니라 내 삶을 움직이는 조정키가 됩니다.
기질에 따라,, 사는 곳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말입니다,.
또 말은 솜씨에 따라 재미있고 없고도 하지만 실제는 어떤 인품의 말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온유한 말은 화를 돋우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말의 때를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감자” 라며 놀림을 당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군감자, 찐감자, 돼지감자,,마침내 홧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불편한 그는 자는 척 했습니다.
친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 친구가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는데 갑자기 죽어버렸습니다,.
이 친구는 귓속말로 “너,,는,,감,,자야” 했던 것입니다.
말의 위력을 나타내는 예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고 맞는 말도 경우에 합당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은 달라야 합니다.
말이 아닌 몸이어야 하고 혀가 아닌 행동이어야 합니다.
요1서3:17~18)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야고보서를 쓴 제자와요한서를 쓴 제자는 달랐어도 한 뜻을 말씀했으니,,잘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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