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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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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11-21 07:49 조회 3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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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정욕을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욕이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명사로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 또는 물건을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 또는

이성의 육체에 대하여 느끼는 성적욕망 또는 조정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게 됨으로 했습니다.

성경사전에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무절제하고 감각적인 욕망들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지문이 있듯이 정욕은 내 마음에 새겨진 마귀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원흉

이 정욕으로 시기질투 다툼이 일어나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고, 구하여도 잘못구하여 응답 받지 못하게 한다니 하나님께

난 성향과 얼마나 반대적인지요.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며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

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최근의 일입니다.

다른 동네의 얘들이 자신의 단지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보고 “여기서 노는 것은 도둑질이라 했다” 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니,,,놀랍습니다.

이 시작은 한 개인의 이기심이었지만 비슷한 사람끼리 연대하면 집단이기주의가 되고 나중에는 국가주의가 됩니다.

너도나도 그렇다면 세상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시기와 질투가 있어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지만 머지않아 싸움이 나는데,,

마귀 짓인 것입니다.

 

이 정욕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는 대적합니다.

군부대가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인권을 말하는 사이 누구든 “교회가자” 는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휴대전화가 주어져서 교회보다 생활관에서 휴대전화를 갖고 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과시간에도 사용한다니,,두발상태도 간부와 같게 한다니,,신앙적으론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능가하는 길이 유일합니다.

곧 마귀를 대적하는 일이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을 이길 수 있거나 아님 해결할 수 있다는 많은 목회적인 방법이 실제는 하나님방법이 아닌 것과 같습

니다.

왜 아니냐? 계시도 아니면서 급하게 나왔으니 급조된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백신도 2년이 걸렸고 치료제는 아직도 개발 중입니다.

그런데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팬데믹을 이기는 묘수가 나왔다? 그럴 수 없습니다.


2) 주 앞에서 낮추라

정말 정욕에서 이기고 하나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으로 살기 바란다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가 정답입니다.

약4:8~10)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

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기독신앙은 철저히 동사이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갈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

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여종이 난 아들은 이스마엘인데 순전히 정욕으로 난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본부인에게서 늦게 태어난 이삭이었습니다.

기업을 이을 자가 누구인가요? 이삭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이 자꾸 싸웠는데 먼저 난 이스라엘이 나중에 난 이삭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평화가 없었고 결국 내 쫒김을 당한 아들은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이는 실제사건이지만 비유이기도 합니다.

정욕이 하나님이 주신 새 성품을 지배하는데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정욕이고 이삭은 새 성품입니다.

기독교는 정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정욕에 대하여 내가 죽었다고 인정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새 성품을 따라 사는데,, 성령을 따라 사는 일입니다.

많은 종교가 이 정욕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 방법에서는 조심조심 다루려고 하거나 피하고자 할 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정욕을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대신 죽게 하셨고 마침내 그 믿음 안에서 우리도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활시킴으로 우리도 새 성품으로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정욕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몸에서 작용하면 육신의 정욕, 눈으로 올라가면 안목의 정욕, 생활로 나타나면 이생의 자랑이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해결 받았기에 이 정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동사는 의지입니다.

모든 정욕에서 “내가 죽었다” 선포하고 정욕을 거부하면 거부가 됩니다.

더 이상 그런 법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자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하사가 서태평양 괌도에서 28년간 정글에서 숨어살다가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문명세계로 나온 사

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숨어있었기에 전쟁이 끝났다는 정보가 없어서였습니다.

 

성도에게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이 자유의 정보가 성경이고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고 성도가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자유로 서로 비방하지 말고 내일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만이 입법관이요 재판관인 것을 명심하고

선을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약4:17)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하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성도의 자랑은 정욕의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사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 자랑도 아니고 예수님 자랑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고 싶나요? 착한 일이 습관이 되도록 의지를 담금질해야 합니다.

기부, 자원봉사, 재능기부,,무엇보다도 습관적인 기도,, 예배와 전도는 꼭 익혀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되는 데는 되는 이유와 안 되는데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꿈만 갖고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또 실천만 하고 꿈이 없으면 방향과 목적이 없어 헛수고가 됩니다.

 

극동방송사에는 좋은 간증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홍콩에서 방송을 듣는 성도라면서 한 성도가 1000만원을 헌금했답니다.

또 전도하는 프로에는 복음을 대신 전도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실천과 방향과 목적이 거룩하고 선한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더 움켜잡으려는 시대에 한 영혼을 위하고,, 복음을 위해서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연다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가요?

이런 자유는 정욕을 위해 쓰는 자유가 아닙니다.

진리와 복음과 영혼을 위해 쓰는 자유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사랑인 줄 믿습니다.

“약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가 됩니다.

 

결론)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는 거두거나 저장하는 추수가 아니라 나누는 추수의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추수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을 긍휼이 여길 때 남도 나를 긍휼히 여기는 심판이 옵니다.

6,25전쟁시절 기차를 탄 소년을 한 헌병장교가 자리를 만들어 앉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훗날 그 소년은 훌륭한 목사가 되어 그를 찾아 보답차원으로 그 아들을 유학을 시켜 목사로 만들어 데리고 있었습니다.

정욕적인 데서는 결코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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