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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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삽이라는 시인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최고가였습니다.
언약궤 앞과 민족들 앞에서 찬양을 인도했던,,선견자라고 존경도 받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신앙적으로 미끄러질 뻔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 미끄러짐
그 이유는 불신자들이 더 잘 먹고 잘살았기 때문입니다.(4~12)
그러나 자신은 반대적이었습니다.(13~14)
성도들에게는 이런 마음의 갈등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비교가 되고 또 정욕적인 존재이기에 “질투”가 일어나서,, 내 속의 두 내가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도의 특성으로 이런 갈등이 없다면 바보이거나 성도는 아닙니다.
사도 바을도 그랬습니다.
롬7:21~~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
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누가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
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는 이를 “끼인 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런가 싶으면 저렇고 저런가 싶으면 이런 것,,몸을 입고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을 모시고 천국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왕좌왕하면 성숙이 없습니다.
대체로 우왕좌왕만 하기에 발전이 없고 발목신앙에 머물 뿐,, 가슴과 머리까지 잠기는 신앙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2) 회복 비결
그 비결이 있습니다.
시73:16~17)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생각도,, 마음도 빛을 받아야 분별력이 생깁니다.
군대에는 열 감지 장비가 있습니다.
숨어 있는 적군을 육안으로는 분별이 어려운 경우 열로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성적이라지만 죄로 오염된,, 그 망령됨을 주의 말씀과 성령으로서만이 분별이 되
고 제거도 됩니다.
이를 “영적분별력”이라고 합니다.
최근 한 대선후보부인이 자신은 영적이라 했습니다.
도사들과 인생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사와 말하는 것,,점집에 들락거리는 것,, 다 영적이라지만 실제는 귀신을 따르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 깨닫고 돌아섬이 있는 것
입니다.
시73:20~23)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
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
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여기서 새 문화와 윤리가 나와 발전되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인데,, 상황도 여전한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요, 성숙한 성도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요, 제자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유키즈라는 프로를 보니 여러 군상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격은 같아도 질은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의사를 인터뷰했는데 명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의학은 나날이 발전하기에 옛 책은 접고 새 책으로 주경야독하는 의사들이었고 환자에 대한 인간이해들
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도 그렇고 교사도 그렇고 목사도 그렇고 조리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깝게 지내는 목사네가 일이 생겨 변호사추천을 받았습니다.
신뢰가 갔던 변호사는 미국으로 연수를 갔기에,,소개할 변호사가 마뜩잖았습니다.
몇몇은 급은 높아서 값만 비쌌지,,인간이해가 없었기에 목사님이신 할렐루야변호사를 추천하면서 가서 매달려라 했고,, 변
호사한테는 살려주라 했습니다.
진정한 영의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갖고 생각도 닮았기에 행동도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시7327~28)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멸하시리라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일반적으로는 반대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주님을,, 낮아지셨던 주님을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만왕의 왕으로써 지극히 높이신 줄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위상이 있고 소망도 있습니다.
3) 행복비결
거지는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지언정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살하곤 하는데 우울증 때문이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행보한 거지 보다는 우울증환자인 부자를 더 부러워합니다.
세상은 행복의 요소를 육체의 쾌락이나 소유로 여깁니다.
그러나 행복은 영혼의 화목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최고의 행복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가끔은 술 먹고 전화 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자기를 붙들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아직은 그들이 영적결핍이 없다고 여겨졌기에 모르쇄 하곤 합니다.
진짜는 찾아와야 합니다.
유대인의 종교지도자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처럼,, 그는 주님으로부터 거듭남과 필요를 들을 수 있었고 마침내 바람
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성령이 찾아주셔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다 같습니다.
옛날 한 여배우는 여러 남자와 산후 “대단한 남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같습니다.
다 죄 아래 놓였고,, 죄인 줄 모르고 슬퍼 탄식하며 살고,,예수님을 믿는다지만 세상과 짝 되어 타협주의로 살고,,또 잘 믿
는다지만 성령과 말씀을 떠나면 어김없이 세상이 부러워지는,,
작곡가 헨델은 1700년대의 아삽과 같은 음악가였습니다.
52세에 풍이 와서 반신불구가 되었습니다.
낙심하던 중에 속에서부터 한 힘이 와서 고쳐졌습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4년간 아무 것도 못한 체 피폐해졌습니다.
어느 날 한 시인이 시를 갖고 찾아와 작곡을 의뢰했는데,,
삶이 싫어서 거부했는데 또 다른 힘에 의해서 원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메시야”라는 제목에 전율이 왔고 마침내 3주간 동안 몰두하여 그 곡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그는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찬송을 기록했다고,,하나님이 그에게 하늘의 찬양을 옮기도록 했다고 믿고 고백했습니다.
곧 각광을 받았고 사례도 생겼지만 그는 자신이 사용하지 않고 기부를 했습니다.
내가 환자였으니,, 환자들의 치료비로,, 내가 죄인이었으니 죄수들을 살리는 비용으로,,
마음의 변화가 가져온 새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성도된 나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희락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낮이고 여름이며 등지면 등질수록 밤이고 겨울이듯이
주를 가까이 하면 할수록 행복이어서 바울과 실라는 매 맞고 갇힌 감옥에서 찬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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