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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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에게는 디모데라는 믿음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전도해서 같은 신앙적 길을 가는 디모데가 비혼자였던 그에게 유일한 아들인 셈입니다.
그에게 진정한 가치를 물려주고 있으니 그 편지가 디모데전후서입니다.
1) 나와 함께,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귀한 일에 사도바울은 훈수만 두는 감독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 코치처럼 함께하겠다니 디모데는 듣기
만 해도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시나요? 같은 경기장에 있어도 감독은 양복을 입고 코치는 츄리닝을 입는 이유를,,
감독은 팀을 대표하는 상징성이라면 코치는 선수와 함께하는 활동성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언제나 선교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에 코치답습니다.
지금도 그렇기에 “나와함께 좋은 병사로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본문은 병사라는 말을 썼지만
좋은 병사든, 좋은 의사든, 좋은 아들이든, 좋은 어머니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라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
입니다.
좋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상태를 말합니다.
좋은 병사는 자신을 모집한 국가나 국민에게 충성하며 승리하는 것이고,
좋은 의사는 병을 보는데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고, 좋은 자식은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에 마음을 두는 자식이고, 좋은
어머니는 자식을 잘 양육하는 여성인데,,
실제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일이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다 보니 고난의 과정은 생략되고 희망만 있게 되어 공상,,망상만 넘칩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이라면 필수 과정을 잘 마쳐서 누가 보더라도 좋게 되었기에 찾는 이가 많고 유효기간은
길 수 밖에 없습니다,.
방송사나 신문사를 보면 같은 명퇴자라도 붙잡히는 인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과일도 좋은 과일은 진열대가 다르고 값도 높은 값으로 팔리는 이치입니다.
딤후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 성도는 거룩한 과정과 고난을 부담스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먼 땅에 가서 선교적 사명이나 혹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적 삶을 살지는 못해도
나를 정욕적인 데서 돌이켜 주와 동행하는 나를 만들어야 신앙승리와 인생승리가 됩니다.
딤후2:10) 그러므로 내가 택함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세상은 돈 따라서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권세자 옆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도 실제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금리가 인상되니 시중은행에 돈이 몰렸답니다.
반대로 코인 악, 부동산 악, 주식 악,,,이 되었다니 손실이 많은 것입니다.
변동되는,,믿을 수 없는 세상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어디에 기초해야 안전할까요?
2) 미쁘다 이 말이여
미쁘다(Faithful)는 확실하다,,신뢰할만하다 입니다.
믿지 못할 변동되고,,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확실함이 있다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쉴 곳과 기댈 곳이 없었는데 쉴 곳과 기댈 곳이 있다니 참 좋습니다.
아파트붕괴 같은 사고가 왜 있을까요?
대학교와 검사들 세계에서도 온갖 술수와 허위가 나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고 이 미쁘신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딤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모든 삶의 바탕은 이 믿음에서 출발하고 이 믿음위에 세워야합니다.
개인의 복음화, 가족의 복음화, 직장의 복음화, 사회의 복음화, 세계의 복음화가 절대적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원리가 빛을 받으면 점점 더 원만한 광명에 이르지만 빛을 잃으면 어둠에 걸려 넘어져도 깨닫지를 못하는 원리라서 그렇습니다.
또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도 맡겨지지만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하면 그나마 빼앗기고 쫒겨 나서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우는 일만 있게 됩니다.
흔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합니다.
이 근거는 어딘가요? 미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나부터 믿어야 하고 나부터 미쁨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못하기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려고 힘쓰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완전함이 아닙니다.
늘 자신을 성찰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적입니다.
우리는 너무 시대적입니다.
우리는 너무 편협적입니다.
우리는 너무 일방적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속에 내가 있음을 잊고 사니 자기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한 이유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믿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아닌 주님이십니다.
열심히 라는 속도 보다는 주님이라는 방향을 확실히 점검해야 합니다.
3) 주는 항상 미쁘시니
여기에는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주는 항상 미쁘시니 (나와 함께하십니다.)
주는 항상 미쁘시니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주는 항상 미쁘시니 (내가 언제나 뵐 수 있습니다.)
또한 보장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리라”
성경은 주님의 많은 약속으로 가득 찼습니다.
국가나 개인에게 하셨던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 믿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감록이니 토정비결이니 동의보감을 들먹이는데 이제는 거리가 먼 애기들입니다.
물어봅시다.
구약의 에레미야서 33장2~3절을 보면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
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 중에 이 말씀을 경험 성도가 있나요?
있다면 부르짖은 덕이고,, 없다면 안 한 탓입니다.
또 히브리서 13:5절을 보면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
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역시 이 말씀을 경험한 성도가 있을까요?
있다면 순종한 믿음의 성도이고 그 성도는 역시 담대히 외칠 것입니다.
히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
찌하리요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기에 식언치 아니시고 우리가 아니기에 실수와 실패,,변명이 없으십니다.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로다”
기도도 말씀을 붙들고 하는 기도가 좋고,
신앙도 성경대로 믿고 순종하는 신앙이어야 옳습니다.
결론) 광석은 돌과 광물이 섞여있기에 불에 들어가서 녹은 후 불순물을 걸러낸 후에야 금, 은, 구리,,철이 만들어
집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이 과정을 겪는 일이고 힘들수록 정금이 되는 일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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