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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가까이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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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2-06 11:05 조회 32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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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 있던 옛 선비들은 자기 관리가 철저했습니다.

정몽주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하여가로 회유했던 이방원을

“이 몸이 죽고 죽어” 하는 단심가로 물리친 후 이방원의 공격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지조 있던 옛 선비들처럼 가까이 할 것과 멀리할 것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1) 거룩함

거룩함은 모양이나 기질이 아닌 성향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의 성향을 물려받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악을 미워하시고 진노하시고 마침내 멸하십니다.

이 죄악에는 정도가 있기에 그 정도에 따라 하나님은 적당하게 반응하십니다.

문제는 거룩함을 잃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었기에 죄악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일은 이 죄악을 감지하는 능력이 되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도 정도가 있어 어린 아이, 청년, 장년, 노년의 단계가 있어 발전하며 혹은 멈추기도 합니다.

자연히 이 상태 따라 고백이 다르고,,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처럼 연휴에,, 주를 찾아 주의 음성을 듣고자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고난을 당해야만 주를 찾는 성도가 있다면,, 정도

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애완견 보다 반련견이라고 하는데 1500만 마리 시대가 되었다니 진작에 산업이 되었습니다.

애완견이든 반려견이든 개는 주인과는 상관없이 냄새만으로도 상대 개가 어떤 개인 줄 알고,, 사랑을 받는 개인지 아닌지

단번에 안다는데,, 이는 맡은 냄새 속에 정보가 있어서랍니다.

주인에게 사랑 받는 개는 냄새부터 다름은 물론 당당하고 따르는 개가 많습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가정에서 당당한 사람은 가정에서 사랑 받는 존재요,

직장에서 당당한 사람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들은 안색부터 좋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또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가까이 합니다.

이들은 이미 죄악에서 당당했기에 세상에서도 당당하니 큰 신앙이요, 건강한 신앙이요, 거룩한 신앙인 것입니다.

 

내가 엄마를 사랑했으면 엄마의 형제를 좋아하고, 유품도 소중히 여기고, 유언도 이루려하는 이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아닙니다.

 

2) 전문인

모든 분야에는 전문가가 있습니다.

와인이나 커피의 감별사는 색과 맛과 향으로 감별해 내고, 의사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입니다.

이 전문가들이 연륜이 붙으면 달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믿는 신앙에 전문인이고 달인이어야 맞습니다.

나 스스로를 하나님께 맞추는데 누구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의 확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카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자신과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음을 즉시로 알고 분을 내었습

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창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네가 선을 행

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

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

“카인아,, 내가 너와 네 제사를 열납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거룩한 나에게 거룩한 제사를 드린 다고 하였으나 네 죄로 네부터 거룩치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너부터 거룩하여라“

 

카인은 열납치 않은 이유는 몰랐기에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지만,, 최소한도 하나님의 반응은 알았던 성도였습

니다.

어찌 알았을까요? 살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아는 것과 살피는 일은 다릅니다.

현대의 우리는 기도하면서,, 예배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살피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너무 오랫동안 굳어진 나머지 다 괜찮은 줄 믿는데,,이 오판으로 하나님이 내게 향하신 메시지를 못 듣는 방어벽

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좋아 하나님을 내 방식으로 섬길 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일은 옛날에도 그랬던 전통적인 일입니다.

롬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서는 개성이라는 말은 없어야 하고 개혁이라는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낡은 것에서의 변화로서 본래의 성향으로의 돌아섬이어야 하는데 전혀 낯선 개혁이 되면 근본 없는 신앙이 될까 우려됩니

다.

 

생각해 봅시다.

지금의 우리말이 조선시대의 말일까요? 연속극에서 나오는 한복이 옛 한복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종교개혁자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아니 얼마나 같을까요? 의식주와 생각이 이처럼 달라졌는데,,차이가 없을까요?

 

3)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시금석은 여호와를 송축하느냐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밤에 손을 들고,,

이는 하나님을 향한 기본자세입니다.

군인의 기본자세는 차렷이듯이,,

거듭난 거룩한 성도의 믿음의 기본은 하나님께 향하는 자세입니다.

엎드릴 수도 있고 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향합니다.

두 손을 들 수도 있고, 여럿이서 잡을 수도 있고,

혼자서 모을 수도 있지만 오직 하나님께 향합니다.

집에서, 차에서,, 사무실에서,, 가게에서 어디서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께 향합니다.

향하라 가 아닌,, 향함입니다.

 

이 일이 쉬운 듯해도 쉽질 않습니다.

훈련이 되었든 아니든,, 누가 보던 아니든 하나님께 향한 고백으로서 거듬남과 성령의 인도가 아니고서는 안 되기 때문입

니다.

 

흔히 우리는 주를 위하여,,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또 주께 헌신한다 하지만,,

실제는 내게 손을 얹고 안수하는 격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하나 아쉽거나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이시며 누구의 도움이나 증언이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34:4)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지로다

하나님은 옛부터 옛까지 홀로 계시며 홀로 천지를 창조하신 완전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이 지식이 있을 때,,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하나님을 살피고 곧 나를 살피게 되니 진정한 거룩이요,

온유하고 겸손한 성향으로 주의 친절이 인격과 삶에서 배어나는 것입니다.

 

결론)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골프 선수의 손과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손과 밭일 하는 손과 공사판의 손과 책상에서 공부하는 손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닮은 성도는 세상에 살아도 그냥 살지 않기에 모양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는 사모함이 있으며 애써도 채워지지 않을 때 애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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