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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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행동합니다.
물총새가 물 밖에서 물 안의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보면 신비합니다.
그들은 꿀새에 비해 꿀이 아닌 물고기가 먹이고.,, 먹이 사냥으로 잠수도 하는 것입니다.
1) 예배자
예배는 성도의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인 만큼 같은 성도라도 하나님을 어떻게 또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예배태도는 다르고 삶의 태도도 달
라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은 예배,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지식이 없고 믿음도 없어서입니다.
그럼에도 자동차나 술이나 야구나 축구에는 대단한 열정을 보이며 온갖 선수들의 경력과 경기전력을 다 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에서 예배가 어렵게 되는 이유는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성경을 찾지도 못하고 찬송가를 부르지도 못합니다.
설교도 못 듣는데 말을 몰라서 더 합니다.
그이유가 첫째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싫어해서이고
둘째는 교육과 훈련의 부재입니다.
코로나로 부대교회가 예배 맥이 끊겼습니다.
아는 바가 없으니 오지 않고 스마트폰까지 제한이 없으니 교회에 올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이런 교육이 있었어야했는데 없었으니,, 군대만이 아닌 사회에도 예배자가 끊긴 셈입니다.
교회교육자로서 답답하고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능력만 느낍니다.
지난날 교회교육이 복음적이지 못했고 놀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떠난 청년들을 붙잡고자 예배를 재미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런 잘못과 사람 중심이 더욱 교회를 떠나는 가
속화를 부채질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가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에서는 흔한 이미 지나간 내용들을 붙들고 진리인 냥 호도했기 때문입
니다.
파스타전문집이라면서 손님 없다고 돈까스 비빔밥을 판다면 어떨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삼계탕과 김치,, 그리고 청국장이 세계 속에서 고유한 한국적인 것이 되었
고 마침내 한류문화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또 믿어야 할 예수그리스도는 독보적인 존재이고,, 그 믿는 신앙은 능력 있는 탁월한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믿는다하면서 성도의 긍지도 없고 자신과 자존감이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믿음이 불안해서입니다.
신앙의 기초인 뿌리가 허약하거나 반석되는 성경이 아닌 모래격인 느낌에 세운 부실함 때문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
우리 신앙의 뿌리는 그리스도예수께 닿았어야 하고 신앙의 건축은 성경에 근거해야 좋고도 안전합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요?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무식한사람들의 회의 결과나 소문이나 추측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말씀의 선포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칭 꽤나 박식한 줄로 알고 고대는 원시요, 야만인 시대라고 간주하며 그 편견으로 성경이 무지고,, 무식하다
하는데 실제는 그 편견자체가 무지고 무식입니다.
현대의 철학의 기원은 언제 인가요?
모세시대에도 철병거가 있었고,, 기가 막힌 해부학으로 미이라가 만들어졌다면 어떨까요?
현대는 박식한 것 같지만 천만입니다.
그 증거가 지구평면인 입니다.
이들은 인공위성이 네비의 좌표를 알려주는데도 여전히 지구는 평면이라고 믿는 족속들인데 이외로 많아 신인류가 됩니
다.
또한 지혜가 있다하면서도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 때문에 30초에 1명씩 죽고,
또 8시간을 걸어서 똥물을 마시고는 그 똥물을 길어 가는데,, 날마다 이런 물로 1400명이 죽어도 침묵하고 있다면 그게 지
혜인가요?
비슷하게 하루 10불을 쓴다면 세계 상위권 10%, 2불을 쓴다면 90%, 여기에 더운 물과 찬물을 집에서 사용하면서 3식을 먹
고, 치료를 받고, 대학 공부를 했고, 자동차가 있으면 최상위1%가 됩니다.
그럼에도 대체로 10%욕망을 위한 소비를 만들고 90%생존을 위한 소비는 없다니,,
진정한 야만이 됩니다.
이러한 무지와 무식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와 무식에서 온 결과입니다.
왜 그럴까요?
골1:16~1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
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짧은 성경구절에서만 예수님을 잘 증명했습니다.
*보이는 하나님,, 하나님을 본래 볼 수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존재형태인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너무 크고 완전하시고 죄 없는 분이시기에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없다고 하는데 오판입니다.
예수님이 증명하셨고, 성경이 증명하고, 인류 역사가 증명하며 교회가 그리고 지체된 성도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창조주이십니다,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면 그 사람은 집보다 큰 사람이고 집은 그 사람을 존재와 실력을 증명하듯이,, 세상만물
이 그러합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팩트 첵크를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섰느니라” 가 됩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만 그 말씀으로 흉흉한 바다를 잠재우시고 귀신을 떠나게 하시고,,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이름 믿은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곧 하나님말씀인데,,현대에서 잠잠한 것은 말씀의 이상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문제입니다.
믿는다지만 의사의 말은 믿기에 웃고 울면서 이 말씀을 믿지 않아 행동하지 않은 탓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세에 너희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 믿음은 행동이고 행위입니다.
3) 그 아들 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아버지하나님도 아들하나님도 되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신이신 성령하나님도 되십니
다.
한분이면서 위치가,,독립적으로 구분되었고 존귀와 지혜와 영광은 동일하신 기묘자십니다.
그래서 아들하나님이 아버지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하나님은 아들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 아들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셨고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후 아버지하나님영광에 오르셨습니다.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본래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처럼 하나님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하심은 우리(나)의 죄값를 당신
의 피로 대신 지불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대충다루시지 않으십니다.
죄값은 사망이라 선언하셨기에 죄는 죽어야 했고 죄인은 살리셔야 했는데 이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어서 대신 예수님
죽고 먼저 첫 번째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 내용이 전부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한 집사님 부부가 교회를 다녀오는데,,마침 참새가 집정원에서 먹이를 찾는 게 보였습니다.
불쌍한 나머지 안에서 먹이를 갖고 와 참새를 불렀는데 참새가 놀라서 날아갔습니다,.
이때 집사님부부가 너무 아쉬운 나머지,,우리가 참새 말을 했으면 좋았겠다며 푸념 하다가
문득 사람들이 하나님사랑을 몰라서 자꾸 멀어지는 일에 하나님의 답답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픈 손녀를 보면서 나의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보시며 마음 아프게 기다리시며 안타깝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
다,.
결론) 천국에서는 의인 99명으로 기뻐하는 그 기쁨 보다 죄인 하나가 돌아왔을 때 더 큰 기쁨이 있다고 하셨습
니다.
왜 그럴까요?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이유이고 무엇보다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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