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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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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2-27 12:10 조회 3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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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인도는 한 힌두신상을 도난당했다가 10년 만에 되찾았답니다.

구약을 보면 작은 이스라엘민족이 큰 민족과 전쟁을 치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갖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

쟁에서 진 후 법궤까지 빼앗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치명적인 일로 보통 망신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빼앗아간 불레셋은 그 법궤를 자신들의 신상과 함께 보관했다가 희한한 일을 겪어야 했었는데 그 신상들이

자빠지고 목이 부러지는 등,,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활동으로 여겨 두려운 나머지 그 법궤를 이스라엘에게 되

돌려주었습니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지혜의 근본이고 영생입니다.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사신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서 돌아가신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삶의 감정을 시로 표현한 모

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글을 몰랐을 때는 아이들 학교에서 불러도 못 갔었답니다,

무엇을 쓰라고 할까봐,, 그런데 팔을 다쳐서는 갔답니다.

이때는 쓰라고 해도 팔을 다쳐서 못쓴다고 핑계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글을 알고 나니 세상이 밝고 두려움이 없더랍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알며 어떨까요?

큰 빛을 얻고 큰 힘을 얻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요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런 빛과 힘을 일찍이 아는 사람과 늙어서 아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일찍이 알아 시편 18편의 이해 글처럼 그 모든 원수들에서 건짐을 받았던 것이며,

개인적으로 무너졌어도 다시 살아남을 받아 제국을 세웠던 것입니다.

다니엘을 아시나요?

포로된 이스라엘의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았기에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함하는 사람들로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이런 일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동서고금을 통해 다 비슷하게 경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

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세살 적 버릇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처럼 교육은 조기교육이 좋은 줄 다 압니다.

그렇다면 무슨 교육이 인품과 미래에 확실할까요?

유감되게 현대는 하나님교육을 유치원과 학교에서도 못하게 막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교육의 파장을 아는 세력이 정치와 제도와 정책을 통해서 막는 것이라면,,성도는 가정에서부터 철저히 해야 아이와 가

정과 사회의 미래가 있습니다.

 

2) 내 의를 따라서

시18:20~22)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

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을 알되 지식으로 아는 일과 경험적으로 아는 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은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 경험의 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이 발달하거나 머리가 발달한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시18:23~27)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시리로다

 

무엇이든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많습니다.

사람도 소문과 실제가 다르고, 가난도, 건강도, 결혼도 그렇고 자녀교육도 그렇고 다 그렇지만 그중에 큰 차이가 하나님 지

식입니다.

이론적인 지식은 행동이 없고 인격의 변화는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지식은 행동이 있고 변화가 있습니다.

 

비슷하게는 무명생활을 오래한 가수든 배우는 감정이든 연기든 표현이 다릅니다,.

아니 그 누구든 고생을 안 해본 사람과 해본 사람과는 사람과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고생하면 할수록 이해심이 깊어 최소한도 오만방자하지는 않습니다.

성공의 여부는 그다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믿는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소원을 다 이루리라”하셨으니 알만하고,

또 세례요한에게는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자라“ 하셨으니 동일한 신뢰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도 인정받는데 반해 누구는 스치는 사람에게도 욕을 먹는다면 어떨까요?

또한 현대는 어떤 사람들이 많을까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3) 주 의식

언제나 두 모습이 있습니다.

내면을 살피는 모습이 있고 사람이나 거울을 살피는 모습이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시18:27~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시리이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임을 밝히시리이다

 

이 특징이 무엇인가요? “주께서”입니다.

참 주를 아는 지식은 언제 어디서나 주를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거나 싫어서가 아닌 사람들을 의식해서도 아닌 주를 의식해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거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모든 후보들이 외치는 말이 있는데 표를 얻기 위해서 유권자들에게 좋은 말을 합니다.

부산에 가서는 부산의 아들이라고 하고 청년들을 만나서는 청년들을 지원을 한다고 하고,

장애인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자신들이 신이 아닌데도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난발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신앙은,,또 믿는 신앙은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옵소서” 가 아닌,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가 많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 고백과 이 믿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시나브로 봄이듯이,,점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성경의 위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생명과 같은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시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외에 누가 반석이냐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지식이 아닌가요?

나아가 삶의 긍극이 결정됩니다.

시18: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결론) 사람이 성장하면서 성숙도 합니다.

즉 갓난이 짓을 하지 않고 나이에 맞는 언행을 합니다.

그럼에도 있다면 장애입니다.

생각이 멈추었다면 정신장애,, 행동이 그렇다면 발달장애가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숙하는 신앙이고 하나님은 신상이 아닌 살아계신 주님이시기에 함께 합을 이루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시18:46) 여호와는 살아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I need you,

I like you,

I love you,

어느 말이 가장 성숙한 말인가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성도된 내가,, 주 은혜로 사는 내가 주님께 드려야할 고백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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