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
페이지 정보
본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세계도 충격을 먹었습니다.
국가나 민족을 개인으로 여길 수 있으니,,
러시아 라는 사람이 우크라이나 라는 사람에게 선방하며 싸움을 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왜 당했을까요?
눈치가 없든 아님 믿음이 좋아 “평화롭게 살자”는 러시아의 말을 너무 믿었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의 몫이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우크라이나였다면 어땠을까요? 혹시 하면서 경계하며 힘을 비축했어야 옳습니다.
주변을 보면 힘자랑하며 깝치는 기질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긴장하고 약자들은 숨죽이고 사는데,,
이런 일은 국가 간에도 있어 국방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은 미래에 증가된다는 위기 상황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아름답게 연결해 주는,,성경에서는 권위자라고 했는데,,
권하고 위로하는,,바나바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유대교에 얹혀서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갑자기 회심하여 기독교로 개종했을 때,, 기독교는 그를 경계했
지만 바나바가 나서서 보증하며 사도들에게 소개했었습니다.
또 세월이 흘러 사울이 이웃나라를 선교하는데 마가라는 청년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마가가 선교도중에 돌아왔고,,이런 마가를 불신한 사울은 다음 선교여행에 데리고 갈 마음이 없었을 때 바나바
는 그때도 마가를 위했습니다.
그랬던 마가가 훗날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고 사울의 말년에 큰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변한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열심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인정하기 때문인데,,
실제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많아야 감동도 있고 아름답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니”
여기에 예수님은 대표자이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인되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어린양 되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화
목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
기와 화목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그냥 만들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즉 전공을 이수하고 훈련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성향부터 평화적이어야 하는데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로서 거듭나고 성령 받은 사람들이기에 온유하
고 겸손하며 남을 긍휼하게 여깁니다.
주변에 이런 인물들이 있나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목소리 크게 내지않고,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연민을 갖는데 긍휼함 때문입니다.
입안에는 딱딱한 이가 있어서 입안과 혀를 깨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지만 혀 없으면 곤란합니다.
혀가 음식물을 잘 섞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사람들 간에 꼭 있어야할 사람은 화평의 사람입니다.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은 친구를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이런 친구가 성도여야 합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주시고 내게 함께하신 것처럼 나 역시 그 사랑에 보답으로 작은 사랑 이루는 것입니다.
힘은 근질거리고 과시하게 되며 비슷한 사람끼리 경쟁하다가 마침내 싸움을 몰고 오지만,
사랑은,, 부모사랑이든 친구사랑이든,,예수님사랑이든 받은 만큼 흘려보내는 보답형이기에
평화를 만들고 살맛나는 사람을 만들게 됩니다.
히틀러는 무수한 유대인을 죽였지만,,
쉰들러 오스카라는 독일인 군수사업가는 그 유대인들을 살려냈습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나요?
같은 시대의 같은 민족인데,,하나는 증오였다면 하나는 연민이었습니다.
그 결과 역사는 히틀러를 전범으로 기록하지만 쉰들러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그를 추념하고 있습니다.
몸이 크거나 사나운 짐승은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동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나 고라니 같은 온유한 동물들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는 성경의 선언이고 하나님의 다스림의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부대의 책임 있는 간부가 사실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선임과 후임들이 함께하는 생활관에서 갈들이 많기에 이런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동기생활관을 운영하는데 이제는 자기들
끼리 힘자랑하여,,갈등을 부추킨다는,,웃지 못 할 얘기입니다.
이 얘기가 실제는 군대 밖의 얘기도 됩니다.
부부도 누가 위냐? 누가 크냐? 할 때 다투게 됩니다.
어디든,, 언제든 나 살겠다며,, 목소리 높이고 손해 안 보겠다며 사납게 굴면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쉽상입니다.
성도는 옛 성품이 아닌 새 성품을 지녔기에 이제는 정욕이 아닌 성령을 따라서 “피스 메이커”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좀 입으면 대체로 소명 받았다 하여 신학교로 향합니다.
그래서 목사도 많고 선교사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 같은 사람 보다 그를 감싸고 마가도 감쌌던 바나바가 더 필요합니다,
이번 대선을 보면서 여야의 접전이 어떤 경기보다 박진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더 상쾌했습니다.
낙선후보들의 깨끗한 승복이 좋았고 무엇보다 통합을 주문하고 또 통합을 이루겠다는 당선소감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다툼은 언제나 마귀짓이고 화평은 언제나 성령의 활동임을 명심해서 마귀가 아닌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좋습니다.
결론) 성도는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이런 성도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