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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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이 외침은 옛 사도들이 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핍박을 받은 후 풀려나와 기도하면서 외쳤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주여,,합니다만 사도들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우리들의 경우,,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며 다시는 이런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할텐데 사도들은 전혀 달랐습
니다.
이 기도는 어떤가요?
1) 사도들의 기도
첫째,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를 구했습니다.
행4:29) 주여 이제도 저희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사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기에 으뜸 되는 것을 확실히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를 구했습니다.
행4:29)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
라
하나님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말과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임을 저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러한 구함을 기도로 빌며구했습니다.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는 빌고 빌어야 합니다.
가끔은 하나님을 행해서 ‘당신께서“ 하는 경우는 영어식이라도 옳지 못하고,, 설교식기도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신앙과 같나요? 다른가요?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다르게 받아서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보고, 따랐고, 능력을 받았으니 작품으로 말하면 원본에 충실한 작품인 셈입니다.
그러나 현대 신앙은 많은 복사본을 거쳐 만들어진 복사본이기에 같기에 다른 것입니다.
모조품을 보면 등급이 많습니다.
정말 특A는 완전해서 진품전문가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B급 C급 D급 일수록 시장에 널려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주님이 원본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으니 모
양만이 아닌 질적으로도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을 보십시오,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되레 이길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을,,,대주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위대하신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발생했던 광주 아파트붕괴사건이 짐작대로 인재라고 발표되었습니다.
구조변경과 함량미달의 물 탄 콘크리트가 사용된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정금도 되고, 은도, 동도, 돌도, 똥도 됩니다.
2) 주여,
여기 그 시금석이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며 순종하는가? 입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가 주여 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한 유명 투자자가 기독방송에서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성도들은 펀드나 주식에 투자해서 그 수익금으로 주의 일 할 것을 말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회의적인데,,
펀드나 주식은 돈 넣고 돈 먹는 구조라서 등락에 눈과 마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마6:21)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주님을 제일 중요시 여겨야할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그처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옛 제사장 예복을 에봇이라고 했는데 그 가슴 판에 12보석을 도장을 파듯이 파서 물리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2보석은 12지파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수 조영남씨는 염색한 검은 야상을 입곤 합니다.
그 가슴에 숫자를 수놓았는데,, 어릴 때 이혼으로 헤어진 두 아들의 생년월일이랍니다.
잊지 말자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상징이 아닌가요?
과거에는 TV가 목자가 되어서 나나할 것 없이 각종 프로로 이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 폰이 되어 길가면서도 마음을 뺏긴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요?
사도들은 그 차별성을 구했는데 능력이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본을 보이셨고, 약속하셔서 실제로 주신 독특성이기도 합니다.
행4:50) 선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
라
이 능력구함은 자신들의 과시나 밥벌이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 전함의 도구로 삼았을 뿐입니다.
물건을 사면 봉투나 상자에 담아주듯이,,
이처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도하는데 능력이 절대적입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특히 “오직”을 유념하십시오,
다른 대안은 없다는 선언 아닌가요?
그러므로 교회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지체된 성도도 능력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거꾸러트림을 받아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
이 능력이 임마누엘의 표징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신임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옛날은 있었는데 현대는 왜 없을까요?
옛날은 원시시대이기에 능력이 필요했고,,현대는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개명사회이기에 불필요한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아닙니다,.여전히 필요합니다.
마귀의 궤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시대여서 갑절의 영감이 더 필요합니다.
흉악한 결박에 매여 있는 자들을 찾아와야 합니다.
문제는 약하디 약해서 그렇지 못한 처지가 된 것이 슬픈 자화상입니다.
전에는 신유 은사자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소문조차 없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아프면 약 먹고 병원에 가는 일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의존함은 마귀만 신나는 일이기에 균형을 이루어야 좋습니다.
의사는 치료한다면 성령님은 치유의 광선을 발하시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하교 저학년 때 안수기도에서 받은 불의 뜨거움은 여전합니다.
80년대 초반만해도 삼각산에서 기도하고 교회들은 철야기도회를 했고,, 교통이 불편해도 서울근교의 기도원은 연휴일이
면 만원이었는데 이제는 공항이 만원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3) 빌기를 다하매
사도들의 위대한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배운 바였지만 그 위대함을 꽃피고 능력을 지속이 있게 한 믿음은 저들의
기도였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단순히 간구하거나 기원함이 아닌 그 이상의 간절함입니다.
주님도 밤새워 기도하셨고 또 능력은 기도 외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목회자로서 두루 살펴보면 기도하는 일이 많이 그쳐져 있습니다,
우선 기도회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없어진지 제법 되었는데,,
비대면으로 공적기도회가 멈춘 것은 비극입니다.
또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 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찬송가는 예배음악으로 가사의 기도와 신앙고백이 CCM 보다 월등하다 믿습니다.
부르지 않으니 맥이 끊겨서 청년들이 모르고 예배 중에 안 부르는 것은 목회자의 방기라고 봅니다.
개혁주의의 개혁은 보수신앙 안에서의 개혁일 때 인본과 세상주의가 물러가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영성은 기도가 우선이고 기도가 힘입니다.
크리스탈 강대나 스텐그라스 유리창이 아닙니다.
기도가 없으면 지식은 있어도 지혜가 없고 모양은 있어도 능력은 없게 됩니다.
기도 없는 교회는 친목회이고 하나님을 예배하자 전도하자는 구실이 되고 먹고 노는 사교판이 드세 집니다.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세워지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숱한 징조와 시간이 있었건만 무시하다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경을 읽어야할 사람들이 읽기가 귀찮으니 녹음을 틀고 있듯이,, 기도는 간절히 빌어야 하는데
바쁘다고 대충합니다.
결론) 주여,,를 불렀지만 그 주여 보다 “나여” 가 더 으뜸 되고 있다면 어떨까요?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누군지 다시 확인 하고 그 분께 간절히 비는 신앙이 있어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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