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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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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4-03 12:36 조회 3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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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일하시는 여러 손길을 봅니다.

사울에게는 직접 나타나셔서 계시하셨고,

나중에는 아나니아를 보내 안수하여 보게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일찍이 순교한 반면 베드로는 천사가 감옥에서 탈옥시켰고,,

헤롯왕은 벌레가 쳐서 죽게도 하셨습니다.

 

다양합니다.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며 모든 물리작용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셨고,, 부활 후에는 벽을 통과하셨으며 승천 때에는 구름을 타고 오르셨습니다.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태양이 멈추었지만 실제는 지구가 멈춘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어떤 현상이나 후유증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대에서도 추적되어 미국에서 소련이 우주개발을 경쟁할 때 NASA가 잃어버린 그 하루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거의 하루 종일 내려오지 아니하였더라.”는 23시간 20분이었고,

히스기야 왕이 구했던 해 그림자 10도가 뒤로 물러간 사건은 그 10도 즉 40분이 합쳐져서 딱 하루가 맞은 것입니다.

성경은 생략된 것은 많아도 대략적인 것은 없습니다.

주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과 지혜와 명철과 사랑이 완전한 주님께 기도라는 방편으로 자꾸 제한을 두곤 합니다.

“주여,, 지금 해주옵소서.“ 또는 ”이렇게 저렇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는 초월적인 기도를 말씀하셨

습니다.

 

실제 이처럼 기도하는 신앙은 주님과 깊은 관계적 신앙입니다.

자신보다는 주를 구하였으니 주께서 보실 때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실 것이고,

자신으로서는 “내 말을 항상 들으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가 고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쉽게 되질 않습니다.

첫째, 친밀감과 신뢰감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새와 사람이, 개와 사람이, 심지어는 사자와 사람도,, 물고기도 친밀감과 신뢰감이 형성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강림하셨고 대신 죽기까지 하셨으니 내가 가까이해야 관계가 발전합니다.

이런 면은 개한데 배워야 합니다.

얼마나 주인을 살피는지요? 또 사랑 받기 위해서 애쓰는지요?


둘째, 성령을 받아 성령의 힘으로 기도하고 찬송하여야 합니다.

노동은 힘들기에 곧 지치게 마련이지만 좋아하는 일은 할수록 힘이 솟구칩니다.

주님이 좋으면, 사랑하면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 됩니다.

그 원동력이 성령입니다.

초기기독교 성도들이 불같은 박해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성령이 주시는 힘인 주님 사랑이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경험이 먼저 아니라 인식의 변화부터 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신을 섬기는데 신은 딱 두 종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돈신인데 유물주의에 의한 기복신앙이 됩니다.

부자되고 형통하고 장수하며,, 행복한 목적과 목표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들에게 가난은 어떤 가난이든 싫어서 거부하므로 자연 심령이 가난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함을 받아드리는 신앙이 있습니다.

마음의 가난함부터 생활의 가난과 생명의 단명까지도 받아드리는 신앙인데,.

오직 주를 영화롭게 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 주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입니다.

이 신앙의 특징은 미래적이기에 지금은 자꾸만 낮아지고 비우고자 합니다.

살찐 새는 날지 못하듯이 주께 더 가까이 하려 해서 세상적인 것에서는 돌아서고 비우는 것입니다.

 

최근 한 우려스런 발표가 있었는데 교회청년들이 낭랑 18세가 되면 교회를 떠난답니다.

대체로 장로권사의 자제들인데 이런 답니다.

이유는 교회가 신앙과 사생활 간섭을 많이 하고,, 목회자가 덕성이 떨어진 탓이랍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참고할 사안이지만,, 한편 이들의 인식이 영적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먹고살만한 시대이고 보니 이들의 관심은 어떻게 살까? 어떻게 죽을까? 보다는 어떻게 재미날까에 치우쳤습니다.

그리고 형제 없이 혼자만의 살아온 세대라서 자기애가 강한 것과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등한시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의 위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이처럼 갑절로 어두워진 탓에 갑절의 영감이 더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더 사나워졌고, 거리만 아닌 모든 체제가 혼잡하고 혼란한 것이 많아졌습니다.

영혼이 죽으니 마음도 정신도 갈피를 못 차리는 것입니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십시오.

“진리가 무엇인가요?” “의가 무엇인가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와 의가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종교개혁은,, 또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어느 민족의 부흥은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졌을때 가능했습니다.

1973년도에 여의도에서는 100만 명이상 모인 전도대회가 있었습니다.

국가가 지원했고 한국교회들이 함께했던 전도대회였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당시에는 이 찬양을 고백하는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 예수만큼 귀한 것도 많네” 아니면 “더 귀한 것이 많네” 하니 문제가 된 것입니다.

 

주의 능력은 이름에도 있습니다.

거룩하고 존귀하신 주의 이름을 높여야 하고, 불러야 하고, 선포하고, 어둔 일에는 책망도 해야 합니다.

또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큰 권능과 권세가 있습니다.

기적이나 표적 보다는 주님의 마음을 갖고 때론 아파하며, 슬퍼하며, 분노하는,,주동행입니다.

이는 열매이기에 신앙의 열매가 됩니다.

사랑 없는 이 시대에서 탁월한 증거가 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교회는 돈이 없고 건물도 없었지만,,성령 충만함이 있었고 사랑도 있었기에 로마의 지배 안에서 한 통속이 된 유

대교와도 싸워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순절,, 주현절,, 이런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머리되시는 주님을 붙잡고 있어서입니다.

성도는 그의 지체입니다.

지체에는 피가 흘러야 건강합니다.

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피가 흐르는 운동력은 사랑입니다.

흔히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 가요?

위에서 부터 흐르는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내가 살고 모두가 사는 원천입니다.

 

결론)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바탕 위에서 하나님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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