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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새끼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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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4-10 16:40 조회 2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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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한주간은 고난주간 혹은 수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갖은 고초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은 성경대로였기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는 일도 그랬습니다.

이런 경우 늘 의미가 있습니다.

마21:4~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세우므로 말씀하신 하나님을 세우심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소리와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 뜻이 분명하기도 하고 모호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할 말은 “국민의 뜻” 이라는” 정치인 말이고, “손해 본다”는 상인들의 말이고 “죽고 싶다는“노인들의 말이랍니

다.

반면 신뢰할 만한 말씀은 오직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입니다.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사람들이 정한 표준은 늘 변동이 있습니다.

옷을 사면 점원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작다고 하면 “우리 제품은 빨면 늘어요.”

크다고 하면 이제는 반대로 “ 빨면 줄어요.”

홈쇼핑에서는 “반 치수 올리세요, 아님 정치수로 구입하세요.”

오락가락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을 신뢰하는 것이기에 말은 신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기에 우리의 믿음은 안전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이 말씀에 기반 했음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집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기초가 좋아야 오래갑니다.

하물며 우리 신앙은 영원이기에 학자의 논문이나, 다수의 의결이나, 나의 감정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신앙이 되어야 좋습니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 겸손의 왕으로 입성하심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계는 로마제국이 통치했습니다.

이들의 군대는 전쟁에 승리하면 정복자가 되어 입성했습니다.

장군은 백마를 타고 기세등등하며 포로된 자들은 그 뒤에 쇠줄에 묶여서 끌려갔습니다.

승리자는 영웅이고 패배자는 노예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는 언제나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는 1등만이 살고, 힘 있는 자만이 누리고,, 큰 자만이 행복한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은 겸손의 왕이시기에 큰 자가 작은 자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섬기는 나라이기에 함께 잘 사는 나라인 것입니다.

사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

어 어린아이이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

이가 독사의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런 하나님나라를 이상적으로 왜곡하여 탄생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평등을 외친 나머지 아버지도 동무,,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권을 잡은 소수들이 자기들만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일할 때는 빠지고 먹을 때는 많이 먹겠다고 한 탐심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결국 이 이념은 망했습니다.

 

겸손의 왕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정욕이라는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한 나라입니다.

여기에는 이상 보다 나의 선한 변화가 앞서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일이고,,이것이 아름다운 파장을 일으켜서 마침내 나비 한마리가 바람을 일으키는 효과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세계2차대전때 유대인정신과의사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나온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를 꼭 읽어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기업면접 때의 질문이 여기서 많이 나오고는 합니다.

1부에서는 그곳 상황의 생활이 나오는데 나찌들이 유대들을 학살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덜 받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려고 변소를 하나만 주고 용변 보게 만들었습니다.

또 씻는 물도 안 주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인간임을 스스로 지키는 사람들은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햇고 작은 물을 모

아 세수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오래 살았으며 그곳의 생활이 선택의 결정권이 없었지만 유익한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이 마침내 살아 나왔던 것입

니다.

한마디로 영혼의 자유는 빼앗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을 어떻게 아나요? 그 가치를 어떻게 아나요? 하나님을 알면 알 수 있고 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3) 십자가 짐 같은 고난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은 괜한 고난입니다.

우리를 위하신 대신의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향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요?

필리핀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는데 그것이 좋을까요?

금식하며 깊은 성찰이 좋을까요?

아님 주 믿으면서 멸시천대를 받을까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까 보다는 어떻게 할까입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충정을 본 받아야 합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확실한 가치를 붙잡은 사람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확실한 가치가 있는데,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 받으라” 나 “사랑하라”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흔히 사랑이 힘들다 하거나 외롭다 하는 것은 짝사랑이어서 입니다.

사랑은 맞사랑이어야 힘이 납니다.

가정에서부터 교회를 통해서 세상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멈춥니다.

집에서 멈추고,,교회에서 멈추고,, 밖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부실사랑인 탓인 탓입니다.

주의 사랑을 만끽해야 됩니다.

찬송가299장) 하나님 사랑은 온전한 참사랑 내 맘에 부어 주시사 충만케 하소서

 

결론) 한 신문 글을 보니 교회사랑이 세상에 많이 흘러나오는데도 그 사랑을 실감 못하고

되레 반대하는 사람들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사랑의 질도 약하고 사랑도 서투른 탓입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을 입성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배우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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