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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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교는 2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적 종교냐? 신본주의적 종교냐?
인본주의적 종교는 사람이 만든 만큼 사람의 책임은 없고 신께 바라는 기복만 있습니다.
그러나 신본주의적 종교는 계시종교로써 사람의 책임이 주어졌기에 계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일까요? 계시종교로서 사람의 책임이 수반됩니다.
십계명은 “~ 하라” 와 ~ 하지 말라“의 대표성입니다.
그중의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이런 종교는 사람들이 부담과 불편을 느낀 나머지 기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것처럼,,
기독교는 죄를 지적하고 죽음을 선포하지만 회개하면 결국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이 그처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인본주의적 종교냐? 신본주의적 종교냐?
인본주의적 종교는 사람이 만든 만큼 사람의 책임은 없고 신께 바라는 기복만 있습니다.
그러나 신본주의적 종교는 계시종교로써 사람의 책임이 주어졌기에 계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일까요? 계시종교로서 사람의 책임이 수반됩니다.
십계명은 “~ 하라” 와 ~ 하지 말라“의 대표성입니다.
그중의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이런 종교는 사람들이 부담과 불편을 느낀 나머지 기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것처럼,,
기독교는 죄를 지적하고 죽음을 선포하지만 회개하면 결국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이 그처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문제는 죄로써 반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5년 안에 점 본 교인들이 무려 23%가 되니 얼추 4명 중1명이 된답니다.
점만 그럴까요?
본문처럼 “간음하지 말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특히 현대는 이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5년 안에 점 본 교인들이 무려 23%가 되니 얼추 4명 중1명이 된답니다.
점만 그럴까요?
본문처럼 “간음하지 말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특히 현대는 이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었습니다.
본문도 보십시오.
법대로 판결하려면 남녀를 함께 처리해야 하는데 여성만 끌려왔으니 편파적입니다.
이런 이유는 숨겨진 의도 때문인데 정의를 앞세워 예수님을 책잡고자 해서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사랑으로 풀어주라 했으면 사람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했다.”
반대로 계명대로 돌로 쳐 죽이라 했으면 어땠을까요?
역시 “보라,,사랑 운운하더니 말뿐이다”
법대로 판결하려면 남녀를 함께 처리해야 하는데 여성만 끌려왔으니 편파적입니다.
이런 이유는 숨겨진 의도 때문인데 정의를 앞세워 예수님을 책잡고자 해서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사랑으로 풀어주라 했으면 사람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했다.”
반대로 계명대로 돌로 쳐 죽이라 했으면 어땠을까요?
역시 “보라,,사랑 운운하더니 말뿐이다”
주님은 이런 간꾀를 아시고 계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셨으니..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계신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이때에 양심을 가책을 느꼈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내로남불인 현대는 어떨까요? 아니 철가면인 현대인은 어떨까요?
여인과 예수님을 처단하자 할 것입니다.
지식과 양심은 별건입니다.
말세일수록 지식은 높아져도 양심은 실종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경계하며 돌아서야 합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간음이 죄도 아니고 대세라도 성도는 몸도 순결해야 합니다.
둘째, 은혜를 먼저 주신 후 계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다 떠난 후에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고마운 장면이고 말씀입니다.
10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님은 사람들이 다 떠난 후에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고마운 장면이고 말씀입니다.
10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러면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만약 주님이 우리처럼 생각해서 “다시는 죄 범하지 않을 수 있거든 가라” 하시면서 계명을 먼저 주셨다면 이 여인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우리처럼 생각해서 “다시는 죄 범하지 않을 수 있거든 가라” 하시면서 계명을 먼저 주셨다면 이 여인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은혜를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기독교는 좀 더 형통하고 좀 더 장수하는 인본주의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철저히 신본주의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 신본은 하나님은 무서우니 계명대로 섬겨라 가 아닌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동되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자발적으로 섬기는 신앙인 것입니다.
철저히 신본주의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 신본은 하나님은 무서우니 계명대로 섬겨라 가 아닌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동되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자발적으로 섬기는 신앙인 것입니다.
명분이 무엇이든 억지로 하면 노동이고 노동자입니다.
반대로 기쁨으로 하면 감사자입니다.
밭을 가는데 일꾼은 시계를 차고 일한다면 아들은 시계를 풀어놓고 일합니다.
반대로 기쁨으로 하면 감사자입니다.
밭을 가는데 일꾼은 시계를 차고 일한다면 아들은 시계를 풀어놓고 일합니다.
그 차이를 아시나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 영적 간음자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서는 마땅히 죽을 자였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살려주신 줄 믿습니다.
여기서부터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닌 감당할 사랑의 계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서는 마땅히 죽을 자였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살려주신 줄 믿습니다.
여기서부터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닌 감당할 사랑의 계명이 됩니다.
목적전치 현상을 아시는지요?
교회 안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목적보다 수단이 중요시되면서 뒤바뀐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신 은혜이고 선물로써 죄 사함, 구원, 영생, 성령의 내주하심, 하나님 자녀의 신분도 다 함께 주어진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목적보다 수단이 중요시되면서 뒤바뀐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신 은혜이고 선물로써 죄 사함, 구원, 영생, 성령의 내주하심, 하나님 자녀의 신분도 다 함께 주어진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해 마치 마일리지 쌓듯이 두려움에 의해 무엇을 바치고 노력을 기울이는 종교현상입니다.
이단사이비가 이 심리를 이용해서 헌신과 헌금 등을 부추기곤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에 사는 나의 무엇을 필요하시면 나의 어떤 노력을 기쁘게 여기실까요?
우리의 노력 보다는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 이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입니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를 아시나요?
사랑이 없으면 종교이고 무엇이든 자꾸만 요구하면 이단사이비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라면서 땅끝까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을 명심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또 “명령”이라는데 방점을 찍으면 무거운 계명이 되고 두려움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해요” 에 방점을 찍으면 어떨까요?
무서웠던 주의 계명이 즐거운 나의 일이 됩니다.
부활하셨던 주님이 3번이나 배반했던 베드로를 찾아서 책망 보다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점점 깊이 있고 강도 있게 물으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점점 깊이 있고 강도 있게 물으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 사랑은 하나님 주신 사랑에서 기반한 사랑을 믿고 누릴 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우리의 주님 사랑은 하나님 주신 사랑에서 기반한 사랑을 믿고 누릴 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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