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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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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5-29 11:47 조회 3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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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떻게 정의할까요?

큰 믿음이라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며 부끄러워하기도 하는데 실제적으로 믿음은 크기가 있습니다.

또 성질도 있어 변하지 않는 정금 같거나 아니면 이슬처럼 쉽게 마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가요?

 

1) 구원에 이르는 믿음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믿음의 특성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 있지 나의 믿음의 크기나 세기보다 질에 상관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허술하거나 작아도 참 믿음이면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의 삶에서의 믿음은 클수록,,건강할수록,,하나님께도,, 내게도 좋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유월절은 이스라엘민족에게 탈출이 아닌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민족을 구원하시는데 먼저 큰일을 작정하셨고 명령하셨습니다.

* 유월절이 있는 달을 해의 첫달이 되게 하고,

* 식구 수에 따라 어린 양을 취하고,, 식구수가 작으면 이웃과 함께 취하고,

*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고,

* 이 달 열 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회중이 그 양을 잡고,

*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 그 밤에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 날 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 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

이니라

 

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능력으로 건져내시는 큰일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믿음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떨까요?

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여 감사로 받고 곧 순종할 것이며,,

누구는 남 하는 것과 여론을 볼 것이며,, 누구는 툴툴대며 억지로 할 것이며,,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은 누군가의 지도로 동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민족은 모두가 순종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12: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듯 믿는 이들에게 일반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값싼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말씀하신 하신 바를 이루셨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믿음을 두어야 구원도,,생활도 튼튼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함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보장 있는 약속입니다.

구원은 시작도, 과정도, 마침도,, 완전한 하나님에 의한 섭리적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다? 그렇다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그 목자의 양이라는 증거입니다.

목자는 그 양의 이름을 알고 부르며 앞서고 잃으면 찾기 때문에,, 찾아주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 앞에서는 여러 부류의 여러 반응이 있습니다.

믿고 순종할 때는 큰 믿음이 되고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2) 큰 믿음,, 작은 믿음

실제적으로 기독신앙에는 큰 믿음과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하거나 연약함의 차이이고, 정금 같고 겨자씨 같다고 한 것은 은유적 표현입니다.

흔히 좋은 믿음을 말하면 그 반대되는 나쁜 믿음도 있어야 하는데 나쁜 믿음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감성적이거나 심미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믿음의 바른 표현은 “믿음이 큰 사람” 혹은 “믿음이 강한 사람” 등의 표현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나쁜 믿음의 바른 표현은,, 순종치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큰 믿음을 갈망해야 합니다.

큰 믿음일수록 강한 믿음이어서 험한 세상과 악한 시대에서 담대함과 거룩함을 발휘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유

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믿음을 갈고 닦는데 마음부터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빛나도록 갈고 닦아주시는데,, 곧 연단입니다.

이 연단이 당장에는 슬퍼보여도 마침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은 없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더니,,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생겨 순종했더니,, 더 큰 구름을 만들고 마침내 큰 비를 내리는 변화를 이루는

일이 교회 역사이고 성도의 삶입니다.

 

마가복음을 2장을 보면 믿음의 장면이 나옵니다.

가버나움이라는 고장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왔지만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로 데려갈 수 없으니 그 계신 곳의 지붕에 구

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무식한 일인가요? 간절한 일인가요? 주님은 믿음의 일로 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지붕에서 사람을 달아 내린다? 그러므로 믿음은 또 “보인다.” 는 것입니다.

주님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중풍병자의 믿음도 아니요, 들것을 들었던 네 사람의 믿음도 아닌,,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왔던 사람들의 믿음

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루스드라에서 열심히 전도하는데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네 발로 일어서라”

말했더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고 했는데,,이처럼 믿음은 달라도 다릅니다.

참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고,, 믿음 같아도 믿음 아닌 것은 듣고서 끝내는 경우입니다.

믿음은 박수치는 손처럼 마주치는 효과가 있고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시대의 믿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빛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무인점포가 늘고 우리 동네에도 무인 정육점까지 생겼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사고방식, 대응전략이 바꾸어야 됩니다.

이럴 때 새로운 도구들에 관심을 갖고 배워야 사용할 수 있고 그 도구들을 내 손안에서 쥐락펴락해야 내 것이 됩니다.

여기에도 믿음처럼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맞아, 배워서 사용하자,,말자,, 대충하자,.,

옛 교회시절의 권사님들이 인사를 해오는데,,카톡도 얼마나 잘 하시는지,,신식이 됐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대를 초월해서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님께서도 “말세에는 믿음 있는 자가 없도다” 하셨는데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믿음은 꾸미지 않는 자연스런 성향입니다.

옛 유대지도자들은 꾸몄기에 회칠한 무덤으로 책망들은 것입니다.

카페에서 80대 가까운 할머니 4명이 앉은 것을 보았습니다.

옷들도 젊게 입었기에 동창들 같아 보였는데 아내는 권사님들 같다고 했습니다.

커피가 배달되었는데,,그들은 입이 먼저 갔을 뿐 어느 누구도 감사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십시오,

야곱은 죽을 때에 자기 후손들을 축복하고 자기 지팡이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습니다.

 

돈 있고 없고가 들어나며, 배우고 못 배우고가 들어나고, 건강도 들어납니다.

믿음도 그렇기에 모세의 부모와 산파들은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어린 모세를 숨겨서 키웠고, 산파들은 갓 난 아기 모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결론) 믿음만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믿음만이 사람을 성도답게 합니다.

이미 성경과 보혜사로 성령님을 주셨기에 객관적인 사실이 주관적인 사실과 일치를 이룰 수 있고, 땅의 일이 하늘이 일로 인정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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