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일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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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랑 길가면서 내가 내 전화기를 떨구었지만 나는 몰랐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너나 할 것 없이 많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비상등이 깜박거리는 차를 보고 연락해 주었더니..연락이 왔습니다.
“후진 주차하면서 비상점멸등을 켠 다음, 끄지 못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남들도 다 비슷합니다.
1) 잃지 말아야 할 정체성
건망증은 뇌의 과부하이고 치매는 뇌의 늙음이라고 합니다.
뇌의 현상은 달라도 잊음은 같습니다.
문제는 심각하면 할수록 마침내 자신도 잃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은혜는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 주님의 은혜,, 그런데 곧잘 잃습니다.
대신 원통함은 마음에 새기고 있기에 관계에 문제가 되고 병이 되어 버립니다.
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
나는 나에 대한 자문이 늘 있습니다.
마치 밤에 별을 보면서 내 가는 길이 맞나하는 일종의 자기 확인 같은 일입니다.
2021,11,5 자문
날마다 자문하는 일은,, 나는 왜 목회자가 되었나? 또 목회 자세는 어때야 하나?
오래전의 ‘독백’ 이라는 칼럼이 있습니다.
역시 전화기에 담아놓고 읽곤 합니다.
자네 목사인가?
목사는 어때야 된다고 생각하나?
내 생각으론 목사는 모름지기 사도들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네
그렇지 못하다면 옛 선비정도는 되어야 하지
진정한 선비가 어떠한가?
정절이 있고 학문에 정진을 이루고 기개가 곧았지
돈과 감투엔 마음을 두지 않았고
(생략)
이런 글과 이런 마음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더니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사양하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비중 있는 면이기 때문입니다.
옛 바울도 이렇듯 정체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2) 동일한 마음
성령님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활동하시는데 언제나 동일한 성향과 기질을 이루셔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믿음과 힘을 공급하시며,
하나님의 사람답게 거룩하여 온유와 겸손하고, 복음의 중심되시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경우 “요3:30)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던 것이며,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당연히 본문에서 “내가” 아닌 “우리”라는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뿐만 아니라 실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을 보면 두드러진 특성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또 모든 부흥시대의 성도들의 특성도 같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주를 택한 것이 아니라 주가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이를 조정
하고 계시기 때문에 불가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곧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완성이고 성취인 것입니다.
고전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러나 그렇지 못한 때가 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는 때인데,
성령을 잃고 마음만 가질 때입니다.
그래서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야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
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마음을 지킨다는 것, 초심을 지킨다는 것,,다 어려운 일이기에 충성이 귀합니다.
법관 초임에 서약을 하지요, 의사도 마찬가지이고 목사도 그렇고, 장로 집사권사도 그렇고, 부부도 맹세약을 하므로 축복 속에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변질과 파경을 이루는데 점점 더 하여 더 불충하고 더 계약맹세 파기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이유를 아시나요?
공중권세를 잡은 마귀가 불법을 더 조장하고 성행하게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성도들은 경건하고 성령 충만하여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의 정체성을 지키고 주 맡기신 일에 충성 할 수 있습
니다.
말세일수록 고상한 냥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꼭 대놓고 믿어야 하나요?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요?”
그러나 믿음은 행위이고 행동인데 어떨까요?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고상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변화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대놓고 찾아 갔던 담대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3) 우리는
우리는 성도된 나의 집합체입니다.
나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몸은 교회인데 우리는 지체입니다.
여기에 은사가 여럿입니다.
이 몸된 교회가 건강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적 역할을 위해서는 목사와 함께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세웁니다.
장로는 연장자로써 가르치고 치리하는 지혜자이고, 안수집사는 일을 만드는 은사입니다.
여성의 경우 권사가 위로하고 섬기는 은사가 됩니다.
이는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할 직분이라서 항존직이라 하고 그 밖의 직은 편리에 따라 임시직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사도와 제사장과 선지자 직도 있었지만 이제는 성령 안에서 발휘됩니다..
사도,, 보냄을 받았다는 선교사,, 전도사이고,
제사장,, 하나님 섬김과 이웃 섬김의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선지자,, 나팔수인데 자기 자랑이 아니라 주님과 주 재림의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손과 발의 위치와 모양과 기능이 다르듯이 교회는,, 성도는,,고유한 멋과 맛이 각각 다른 은사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해 주고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고 하나의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주의 몸된 교회요,
성령의 교회인 것입니다.
고전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
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런데도 교회가 시끄러운 것은 사람들의 인성만 나타나서 그렇습니다.
모일수록, 많을수록,, 파가 갈리우고 다툼이 심한데,, 이는 머리가 아닌 몸통이나 지체를 붙들었기 때문으로 여기서 돌아서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고 주의 사랑에 연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는 성숙한 교회이고, 믿는 자가 날마다 더하는 교회이고, 칭찬받는 교회입니다.
결론) 우리교회가 작아서 오랜만에 투표를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훌륭해서 추대할 수 있지만 장로는 치리권이 있기에 투표가 합당합니다.
이 일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동참하시고 투표로 지지하고 격려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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