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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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장은 생각만 해도 좋고 신납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고 온 백성과 천사가 찬송을 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시 음미합니다.
1) 하나님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누구처럼 복 짓는 분이 아니라 복 자체시기에 그 하나님께 가까이만 가도 복이 됩니다.
한동안 기복신앙이 천박한 듯 인식된 듯 했습니다.
복만 구하는 기복신앙은 천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구하며 가까이 하는 기복은 성경적이고 복음적입니다.
같은 고난과 가난과 슬픔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복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침내 더 귀한 복덩어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형통과 부함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신도 남도 세상도 망치기 때문입니다.
실로암병원 이사장목사님은 폭탄사고로 실명이 된 고아출신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난 후에 그 실명된 눈을 갖고 지금껏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반면 태어날 때부터 부하고 형통했지만 자신도 남도 망하게 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꼽을 수 있습니다.
피난 나와서 술 만들던 집안은 번성해서 그 술상표로 건설사와 백화점 등을 세웠지만 다 망하고 후계자였던 아들이 외국에서
자살하고 말았으니 술 상표는 여전해도 몰락한 것입니다.
이런 일 역시 많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솔깃한 제안을 예수님께 했습니다.
마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예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일은 지금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마귀도 복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쑤시개 하나도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속이는 자요, 빼앗고 멸망시키는 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이시기에,,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생자가 그리스도이기에 그 안에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만큼 내 발견의 신앙이 발휘해야 합니다.
2) 복 잇기
이런 복은 자손대대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입니다.
이런 일은 산소자리를 잘 쓰고, 집터가 좋고, 태어나는 일시가 좋고,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계시하신 대로,
“벧전3:10~12)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
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
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통치의 규칙이 됩니다.
사도베드로는 이 말씀에 의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했습니다.
벧전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
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기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 받게 하려 하심이라
또 생활적으로 구체화시킨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서신서가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아주 간단합니다.
“선을 행하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이며, 곧 “마음의 변화” 이고 “거듭남”이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은 가져도 도무지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삶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리 자들과 함께 울라”의 삶인데
타인에 대한 배려, 동정, 공감, 존중, 인정이 곧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호나 표어가 아닌 실제적 믿음이고 인성의 성숙이기도 하여,, 사도바울도 그랬고,, 또 가르치도록 권면도 했던 일
이기도 합니다.
딤전6:1)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여기서 너그러운 자는 ‘동정’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바랍니다.
또 복 잇기를 원해서 고기 잡는 방법보다 고기를 주려고 손자들에게도 재산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은 3대를 못가는 게 정설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주기 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가치 있는 것을 붙잡기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보배로운 기름은 없어도 아름다운 이름을 얻은 것이 됩니다.
잠23:4~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3) 신조냐 실용이냐
언제나 진지한 질문이 있습니다.
“신조냐 실용이냐” 원색적으로는 “존재냐 소유냐” 여러분은 어떤가요?
신조를 붙들면 가난하고 실용을 붙들면 가치가 없습니다.
현대는 자본주의가 드세진 만큼 신조보다는 실용을 붙들곤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삶은 더 피폐해졌고 사람들은 더 불행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존재감을 잃어서입니다.
성도들은 존재감을 분명히 해야 건강한 신앙과 삶을 이룹니다.
벧전3:15) 너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지난 주간에 형제 같은 목사님이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난 만류했는데 그쪽에서 부르고 여건이 되니 주의 뜻으로 알고 70세도 떠난 것입니다.
떠나면서,, 그곳에 도착해서의 전화음성을 들으니 신남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서는 목사로써 목회를 못하니 갈아 앉은 도끼 같았는데,, 정체성에 맞는 아프리카선교라니 떠오른 도끼처럼 된 듯했습니
다.
우리 모두는 너무 삶에 집착해서 나를 잃지는 않나 점검해야 합니다.
그 점검이 사색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와 동정을 갖는 일도 됩니다.
동정하며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야 합니다,.
한 작가의 글을 보았는데,, 지인이 우크라이나에 전쟁지원금을 보낸 일에 감동을 받고 자신도 마침내 보내는 사연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전쟁 중에 태어나 자란 장본인인데,,그 때에 누군가 와서 전쟁도 해주었기에 전쟁이 멈추었고, 자신이 어렸
을 때 받아 입었던 구제품티셔츠도 알지 못한 누군가가 후원해 준 물품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전장에 가서 총 들고 싸우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향한 마음으로 전화로 송금 못해 은행가서 송금한다는 글이었습니
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개죽은 데는 간다.”
이제는 이 속담이 그쳐야 합니다.
대감이든 개든 영양가를 따라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라면 죽었던 살았던 예를 지녀야 합니다.
주를 믿은 일이란 언제나 실속은 없습니다.
다만 오지랖이 있는 삶입니다.
역할로 말하면 몸도 있고 뼈가 있지만 그 마디마디에 연골이 있어 부드럽게 하는 역할이 곧 교회와 성도의 역할인 줄 믿습니다.
결론) 세상은 점점 사납고 교회도 시스템화 되어 삭막하기 쉽습니다.
최근 국민일보를 보니 20~30대들이 교회에서 속마음을 나눌 벗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나 머무는 곳에서부터 온기가 돌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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