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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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던 개를 보니 주인된 우리에게 사랑을 받으니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은커녕 다른 개들에게 관심도 없었고 대신 주변의 개들로부터 러브콜만 받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개들은 호르몬으로 자기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사랑을 받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질병도 낫고 예뻐집니다.
사람에게 제일의 사랑은 누구의 사랑일까요?
또 이 제일의 사랑을 받으면 어떨까요?
요1서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1) 하나님께로 난자
하나님께로 난자의 식별은 외모나 경제력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는 가난한 산동네 나사렛출신 유다지파 요셉의 아들인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일입니다.
그냥 믿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이 동반되는 전행위적요,
전인격적 믿음인 것입니다.
다수는 이 지식과 경험이 없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말은 해도 결국 부정합니다.
그러나 소수는 합니다.
하나님성령이 그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지식과 믿음이 없어도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믿음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써,,마침내 경험과 지식을 갖게 합니다.
요1서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
를 사랑하느니라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과 관계된 무슨 일이든 버거움은 있을지언정 억지가 없습니다.
요1서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랑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다 예뻐 보입니다.
그래서 속담도 “고슴도치도 자기새끼는 밍크라 한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그 어느 개보다 예뻤기에 아직도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고 삽니다.
사랑은 사랑의 크기만큼,,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개의 똥을 치웠고,
부모들은 없는 살림살이에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사랑을 믿는 사람은 어떨까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리며 자신도 드리는 것입니다.
무겁지 않은 것은 곧 아깝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터키의 국호가 달라졌다는데 그 곳의 갑바도키아에는 많은 바위굴이 있습니다.
옛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처소로 생활했던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곳의 사진을 옛날 내 목양실에 걸어둘 만큼 내게는 교훈적이었습니다.
그 옛날 그곳의 생활을 누가 시키거나 돈 주어서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있다면 주의 사랑의 빚진 자가 된,,
그 부담이 단한번의 삶이지만 안일과 향락 보다는 궁핍하고 피곤해도 그러나 경건한 삶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간에 주 믿는 영감들이 주의 이름으로 6인이 모였었습니다.
사하라사막이 있는 차드 국가의 선교사와 오늘 그곳으로 떠나는 그 일행들이었습니다.
그곳의 선교사는 좋은 땅 미국에서 살다가 11년 전에 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간경화가 왔고 간암도 초기암으로 시술도 했답니
다.
그런데 사하라사막의 사막화를 좀 막고, 수확이 좋은 농업을 시도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알제리 대사출신인 유엔 소속기구 NGO 법인 이사장 장로님과,
농업학박사인 목사님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함께한 한 과학자가 아프리카에서 농사를 위한 큰 지원과,,
아픈 선교사님을 위해 디지털치료기술을 값없이 제공했기에 박수가 터지기도 했었습니다.
이 모습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2) 분명한 고백
세상을 이기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동일한 특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경험에 대한 간증과 또 성경적고백과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 신앙이 이단이다,, 사이비이다,, 정통이다 하는 1차적 구별이 여기서 나오고,,
2차적 구별은 열매를 보아서 이는 것입니다.
요1서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그리스도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
령은 진리니라
특히 성경은 예수를 높으신 분으로만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자체가 성령님의 감동인 만큼 예수님을 높이셨는데 다른 성경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서는 “임하신 이시니” 왔다가 아닌 “임하심”입니다.
성자하나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으니,,역사 속으로 오신 분명한 임하심입니다.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와 대속사역이 시작되셨으니 물로 임하신 것이고, 십자가위에서 창
에 찔려 피와 물을 흘리셨기에 공생애와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증언하시니 기독교역사만이 아닌 인류역사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농담이나 허튼 말과 거짓이 없으신 줄 믿습니다.
요1서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
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분명한 고백은 정확한 고백이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주신 고백이 됩니다.
이런 고백은 성찬식에 참예하며 삶에 증언과 열매가 있습니다.
삶에 증언은 곧 예배, 기도, 예물, 전도 등이 아닌가요?
유감되게 지금은 수십 년 전에 비하면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증언과 열매가 작기 때문입니다.
군인교회를 겸직하고 있기에 6,25에 전쟁 통에서 예배했던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참호에서, 숲에서, 짚차 앞에서,,절실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인교회나 민간인교회나 모이는 일부터 열심을 잃었습니다,
꿀벌이 없어졌으니 과일이 수정이 안 돼 낙과가 많아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꿀벌이 없어져도 세상이 망할 징조라고 옛부터 한 말이 실감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증언과 열매가 약해진 성도들이 많다면 시대는 어떻고 세상은 어떨까요?
결론) 결국 교회의 부실로 오고 사회의 여러 기능에서의 부실로 옵니다.
가정의 부실, 도덕의 부실, 관계의 부실,,늘 주창하는 바가 왕펄에서 왕골난다는 진리입니다.
매의 눈이 아닌 이면을 보는 눈으로 세상범사를 살펴보십시오,
탄식이 나올 텐데,, 나도 책임 있음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죄에서 주와 함께 죽고 장사되어 부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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