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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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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7-10 21:03 조회 24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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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일대기를 보면 참 기구하면서도 희한한데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의 황제가 이스라엘 남자아기들을 정치적으로 죽이는 시국에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황제궁궐에서 온갖 학문과 학술을 배우며 성장했고, 장성한 후에는 동포와 애굽인이 싸우는데 오지랖을 부려 애굽인

을 죽여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 나왔습니다.

또 광야에서는 양치는 처자들의 양을 위해 물 먹이는 오지랖을 부려 그 양주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40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양치는 목동으로 살 때에 나뭇가지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은 광경을 보려고 나무 가

까이 갔다가 하나님을 뵙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1)큰일

모세에게 가장 큰일이 무엇일까요?

나일 강에 버려졌으나 건짐을 받고, 왕자가 되어 황실의 교육을 받고, 오지랖을 부리고 광야로 도망가고,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등,, 다 큰일이었으나 하나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이 큰일을 위해 모세를 찾아오신 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삭개오에게도, 사마리아여인에게도, 부활하신 후에는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일은 여전합니다.

이들이 특징이 무엇인가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서 충격과 변화가 왔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니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충격은 그 사람의 터닝 포인트가 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때의 경험은 그동안의 모든 편견과 경험과 지식이 다 지워지는 경험을 동반합니다.

두려움과 환희가 오는데 또 다른 경험이고,,그러나 두려울 것이 없는,, 자신을 알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는 지혜가

생기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는 것이고 곧 생명과 하나님영광이라는 목적과 목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북한에 성도가 있느냐 없느냐 하며 관심과 궁금함을 갖고 있습니다.

내게도 묻곤 하는데 누구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탈북한 고위직출신의 증언을 빌리면,, 처음에는 당성 좋은 인민들로 정치선전을 위해 위장성도로서 예배에 참석시켰는

데 훗날 이들의 찬송이 달라졌고, 예배시간이면 교회당 밖으로 산책하는 인민들이 많아졌답니다.,

무얼 의미하나요?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현상인 줄 믿습니다.

이런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고 성도들은 이런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래 살기 보다는, 혹은 갈끔하게 죽기위해 건강하기 보다는,, 나됨을 위한 삶을 살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곧 주님이신데,,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곧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소명

여기서 소명이 옵니다.

아니 소명 보다 고난이 먼저 옵니다.

고난은 떡을 빚기 위해서는 밀알이 먼저 부드러운 가루가 돼야 하듯이,,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께서 이끄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고통이 무섭고 싫어 거부하지만 고난이라는 이해를 다르게 해야 좋습니다.

죽음이 세상관점은 망하고 끝나는 일이기에 두렵고 거부되지만, 성경적 관점은 천국입성이듯이 고난은 정욕을 벗고 신령한 옷

을 입는 일입니다.

여기서 영의 사람이 되어 영적인 일을 생각하므로 소명이 옵니다.

마음과 생각이 아름다우면 세상도 사람도 아름답고,,

지치고 괴롭고 더러우면 아름다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거룩한 일에 대한 소명은 신령해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이 과정이 80년이 된 것이고 하나님은 그동안 함께하시며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살이하면서도 정체성을 몰라 조상들의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출애굽하면서 아는 듯했으나 역시 몰랐고,, 광야를 지날 때도 몰랐기에 3일 길에 40년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알았느냐 마찬가지로 몰랐고, 세월이 흘러 국가로 세워져도 몰랐고,, 나중에 예수님이 오셨어도

몰랐기에 십자가에 처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이들이 일찍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경건해졌고,, 하나님을 향한 소명이 충만해서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이 아닌 교회에 “너희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의 소명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3) 은사대로

목사님들을 보면 똑같은 패턴이 있는데 모세 같고 사도 바울 같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몰랐기에 불량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찾아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빛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이 소명을 이루는데 은사가 각기 다른 것,, 이 패턴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부대에 짜장면 파티를 했습니다.

짜장면 만드는 목사님은 재료비만 받고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헌신이 그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고,, 만난 후 전도사로 짜장면헌신을 했으나 코로나로 헌신할 수 없게 되자 목사안수를 받고

교회도 세운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은 죽을 듯해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일을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말을 못해도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두고 대신 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아론을 구원자로 앞에 세웠을 성 싶은데,,그러면 번거롭지도 않았을 테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고 그 모세에게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이 중요하건만 상징도 주신 것입니다.

출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이 지팡이,,한때는 마른 나무였지만 모세의 지팡이었고, 이제는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명을 받으니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성도가 그렇습니다.

나면서는 죄인이었지만 주님을 만난 후 이제는 성도가 되었고,, 성도로 살도록 소명을 받으니 성령이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사

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말은 능력이 있고, 기도는 권능이 있고, 예물도 뜻이 있게 됩니다.

군부대 짜장면을 하는데 재료값이 필요했습니다.

친구장로에게 부탁했더니 쾌히 응락해 주어서 파티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50명의 장병이 맛나게 먹는 장면을,,

이 장로역시 그냥 장로가 되고 그냥 예수를 믿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장식용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용되면 내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졌으니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하나님지팡이고 우리의 하나님지팡이는 믿음이고 성령님이십니다.

믿음은 주를 기쁘시게 하고,,또 나를 주 앞에 세우며 성령은 우리 안에서 주를 증거 하는 보혜사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험하고 짧은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붙잡겠나요?

붙잡은 그것이 곧 나의 가치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아베 일본 전총리가 황망히 별세했습니다.

그에게도 큰일, 중요한 일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또 정치인으로 이름도 날렸다지만 그를 부러워할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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