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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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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7-24 14:28 조회 3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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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도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서 처리하겠다.”

그런데 이 말을 못 믿는 것은 정치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론 법치를 말해도 실제는 법과 도덕에 따라서 혹은 원칙과 여론에 따라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1) 법대로

다윗은 언약궤를 되찾아오면서 마음이 앞선 나머지 율법을 무시하여 낭패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가 명심하게 된 부분은 하나님께는 계시하신 율법대로였습니다.

대상16:40) 항상 아침저녁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훗날 언약궤를 법대로 옮긴 후 번제를 드린 모습인데,, 보십시오.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게 하였고” 어떤가요?

마치 트라우마를 겪은 후의 모습 같습니다.

이 모습이 발달되면 마음은 없이 모양만 회칠한 무덤이 되기에 주님이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대로 하나님을 섬길 때는 침묵하셨지만 율법을 무시할 때는 진노하셨습니다.

 

이제 성도는 달라진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법이 아닌 마음이 강조되고 있는데 법이상인 것입니다.

 

큰 기념된 예배의 대표기도자에게 주최 측은 3분 기도 원고를 요청해왔습니다.

순서자가 하나님과 내밀한 소원을 어떻게 사전에 유출하느냐며 거부했지만 콘티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요청을 했었습니다.

비슷하게는 예배의 리허설도 있습니다.

예배는 세련되거나 스마트할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기뻐 받으십니다.

신27:5) 너는 다듬지 않은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이는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자세인데 사람들이 착각했을 뿐입니다.

율법대로,, 그러나 그 율법이 강조하는 바는 언제나 중심이고 사랑입니다.

사람관계도 실제는 이래야 맞습니다.

테크닉이 아닌 진심과 진실로,, 사랑도 그렇고 거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죄가 탐심과 교만을 부추켜서 위선과 거짓이 나무한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연기로 살고,,신앙도 주님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경건의 모양을 연기하는,,

이런 연기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법대로,, 원칙대로만 된다면 삭막합니다,

사랑이 없어서인데,, 법이 상식이라면 덕도 있어야 합니다.

덕 역시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시비를 가리는데 법이라면 허물을 가리우는 데는 법만큼이나 덕도 절대적입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균형과 조화 있는 법과 덕을 이룰까요?

아주 쉽고 간단한 주님의 방식인데..나에 대해서는 법이고 남에게는 덕을 베풀면 됩니다.

왜요? 남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만 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세상 시끄러운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라” 는 내가 할 말이 아닌데 내가 하니 문제가 됩니다.

같은 일인데도 나는 죄가 안 되고 남은 된다니,,

오죽하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세계화가 됐을까요?

법은 언제나 귀해도 다루는 사람이 불완전해서 그 법으로 죽일 수 있기에 법 보다 덕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은 다윗이 율법대로 준행하며 섬길 때 다윗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대상17:1)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아래에 있도다

아주 단순한 하나님께 향한 마음인데 하나님이 만져주신 마음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에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마치 아들부부는 겨울이 되었으니 부모님계시는 “시골집에 보일러 놔드리자” 하는 마음 씀씀이 같고,

하나님은 부모처럼 “나는 필요한 것 없다,,마음이 고맙다, 너희들 잘 살아라,” 하시는 사랑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섬겨야 바릅니다.

법이나 기분이 아닌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감동도 내 기분이지만,, 다른 것은 감동은 하나님이 앞서고 기분은 내가 중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밥살 때 내가 사지만 주님이 사라하셨다면서 결재하면 어떨까요?

다윗은 그 섬김의 대상이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궁궐에 들어가서 좋은 것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생각했으니 감사 보답이고 효심도 됩니다.

우리는 좋으면 내 덕이고 나쁘면 조상 탓을 하거나 심하면 하나님도 탓하고 원망하곤 합니다.

또는 나는 계속 좋아야 하고,, 하나님은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지식을 늘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신이시지만,,

내 작은 신음도 들으시는 디테일한 주님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큰일에 감격도 하시겠지만 실제적으로 작은 일에 더 감동하시곤 하십니다.

과부가 드린 두 푼 헌금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고 주님 머리에 기름을 부었을 때도 주님은 그 마음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높여주셨는데,, 감동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막8~9)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는 것은 다 감동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테크닉은 있는데 감동을 주는 진정이 없어서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교통하는 성도입니다.

진실의, 중심의, 최선의, 경건의 자세가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하나님도 내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3) 하나님의 뜻

주 안에 있는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많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건축의 마음을 지녔을 때 감동 받으셨던 하나님은 곧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

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은 건축보다 “신뢰관계”입니다.

 

*신뢰는 거룩입니다.

거룩은 주님의 성품이고 경건의 모양이고 능력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벧전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거룩으로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께 무엇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하심을 믿고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아버지 마음을 갖고 보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얼 해 드린다면 자꾸 사양하십니다,

대신 건강하고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길 원하심처럼 하나님아버지가 그러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크면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영원성입니다.

대상17:12)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성전 건축은 훗날 다윗의 아들로 하여금 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인데 과연 솔로몬이 건축했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견고한 왕위는 주님이 이 계보에서 오셨기에 영원한 관계의 언약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이 언약 속에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짓는 일이 아닌 삶의 성전,,주님 재림하시는 그 나라를 위하여 대물림되게 하십니다.

 

결론) 다윗은 하나님께 감동을 드렸기에 이런 복 넝쿨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은혜지만 이 은혜로 국가사업도,,인생도,,신앙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이 은혜 안에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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