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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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이방사람들과 혼합하여 낳은 혼혈족속이고,,
사마리아는 그들이 사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아이로니하게 유대인들은 이 지역을 다니지도 않고 이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서는 한 낮에 물 길러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왜,,사람이 다니지 않은 낮 시간에 우물가에 왔을까요?
물 길러왔다지만 동네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남편 5명이 거쳐 간,,
그리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사람과 사는,,불쌍하고 불행한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찾으셨는데 전도해서 양지의 사람이 되게 하려하심입니다.
1) 여인의 고백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이 여인과 말씀을 나누면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전도를 하셨는데,,
그럴 때 마다 여인은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예수님께 대한 고백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으로 물을 달라하셨을 때는,
“어찌하여 사마리아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하십니까?”하면서 으아스럽게 여겼는데,,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 째는, 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고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셨을 때 “당신이 야곱 보다 큽니까”
하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네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셨을 때는,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
이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을 때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이다” 하면서 주님오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말하는 내가 그로다 하실 때는,,말 보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섰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주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네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
도가 아니냐” 하니,,
고백은 누구든,,무엇이든,, 언제든지 지식과 경험에서 나와야 참입니다.
그 참은 행동이나 행위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아는 만큼 사랑하고 믿는 만큼 신뢰합니다.
2) 여인의 증언
여인은 동네에 살면서도 이웃들과 담쌓고 살던 여인이었으나 그 여인의 행동이 진실로 인정되니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요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변변치 못한 여인이었지만 진실이 통했던 것입니다.
물동이를 버려둘 만큼,,? 한 낮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 할 만큼,,눈빛과 말투와 손짓발짓에서,,메시야를 만난 감격이 배어있었
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과 진실이 중요합니다.
전도를 받고 니느웨사람들이 왕부터 가축까지 금식하며 회개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이렇게 회심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요나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요나가 방금 큰물고기 뱃속에서 나왔으니 그 모습이 어떨까요? 외침은 어떨까요?
예수 믿는 이들이 잊지 말고,, 잃지 말아야 할 진실성입니다.
가끔은,, 집 철문에 붙여놓고 가는 전도지를 떼면서 누군가의 수고와 진정성에 고마워합니다.
이단사이비도 열심은 있어도 선과 의와 진실은 없는 만큼 열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진실함과 거룩함에 있느니라
사람들은 아이들이 모를 것으로, 여인들은 약할 것으로 오판하곤 합니다.
그런데 진실은 다릅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면 아이들도 잘 알고,, 힘이 아니라면 여인들도 강합니다.
특별히 복음이 들어가면 부끄러움을 초월하여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두려움을 떨치게 하고 약함과 아픔과 슬픔도 감싸는 능력을 발휘해서입니다.
복음의 거룩함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대표적 신앙인입니다.
금식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왕앞에 나섰던 여인이 마침내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믿음 좋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전남 신안군은 여전히 시골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유독 출중한 김준곤, 이만기, 정태기 같은 목사님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특별히 중도리에는 굿이 없고, 사찰도 없으며, 화투와 투전도 없습니다,
심지어 성당도 없이 오직 교회만 11개가 됩니다.
2200명의 주민가운데 92% 기독교인이니 그 곳에서는 주일에는 밥 사먹지도 못합니다.
이런 이상한 환경은 문준경이라는 여전도사님이 신안군의 섬들을 다니면서 전도한 덕입니다.
이 전도사님이 6.25때 매맞아 순교했는데 죄명이 “새끼를 많이 깐 씨암닭” 이었습니다.
17세에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첩을 얻어 딴 살림을 나간 탓에 주님을 믿어 전도자가 된 열매
였습니다.
3) 영향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이 지리적으로 태풍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습니다.
이 때 두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환경이 주어지길 바라는 부류입니다.
그들의 삶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타인에게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의타와 의존 말고도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반대되는 부류가 있습니다,.
내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가 사람을 살리는 환경이 되어 주는,,물론 성도는 후자여야 합니다.
성도도 배워서 출세하고 벌어서 부자 되어야 하는데 출세와 부자 되는 목표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꿈너머 꿈을 갖는데 주님의 꿈이어야 합니다.
사마리아여인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그 영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더 믿는 자가 많아 졌고,,
그리고 여인의 말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자립하는 믿음으로 성숙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훗날 이들이 교회도 세웠고 마침내 선교사도 파송했을 성 싶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야고 순례 길은 그 옛날 야고보가 전도하며 지난 여정이랍니다.
시대가 달라지니 야고보의 복음전도 보다 지났던 그 길이 명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믿음을 가졌던 도마는 사도행전에 나오질 않습니다.
아프리카로 가서 전도했다는,,그래서 남아프카국에는 유독 도마의 이름이 들어간 흔적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적이 아니라 변화의 증거여야 합니다.
내가 믿었으니 그 증거가 내가 속한 모든 곳에 두루 배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사람들 속에서 인격과 문화로 증명되고 거룩한 영향을 발휘해야 합니다.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
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배워서도, 있어서도, 잘나서도, 젊어서도 아닙니다.
겉이 아닌 성도 속에 들어 있는 복음의 능력이 생명이기에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론)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78세의 대전에 사는 어느 권사는 젊은 날의 생활은 말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딸을 11살까지 키워본 후 남편에게 넘겼는데 주를 믿은 후 아픈 어린이들에게 마음이 갔으나 돈이 없어 어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인 지금 심장병어린이를 위한 성금으로 24평 빌라를 기증했습니다.
2018년에 직장암 선고받고, 작년에 화장실에서 낙상한 후,, 삶에 더 애착을 가져 돈에 집착할덴데,,그렇지 않고 천국 빨리 가는
일이 희망이 된 것은 주의 생명 덕이었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말의 모양은 여럿입니다.
침묵은 마음은 언어이고, 입술의 언어는 인격의 언어이며,, 삶의 언어는 행동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치해야 진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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