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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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한로’ 라는 찬이슬이 맺히는 때였습니다.
이런 때는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앞서 예비적인 때가 있었습니다.
풀도 자라지 않고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라는,,
1) 마지막 때
이런 절기의 마지막 때는 농촌은 물론 도시도 월동준비를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루의 마지막이 있고, 삶의 마지막이 있습니다.
실제 마지막 때에는 준비할 수 없기에 준비는 미리 해 두어야 지혜입니다.
김동길 교수가 최근 별세했는데,,유언장은 작년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으니” 하며,,그 징조를 언급했고 준비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 때가 말세인데 징조도 많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지진과 전쟁과 역병이 증가하고, 사람들이 사납고, 돈을 사랑하며, 사랑은 식고, 불법이 성하며 왕래는 빨라지
고, 집 위에 집을 지으며,,
교회적으로는 경건의 모양만 취하고 능력은 부인하는,,
영적으로는 마귀의 횡포가 성행하고,,
주님은 이러한 일들이 보이면 인자가 문밖에 서 있는 줄 알라고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경고를 귓등으로 여기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흘리게 하거나,, 아님 인류에게 해결책이 있다며 믿는 노력들입니다.
행성을 탐험하는 노력들이 인류의 이주를 꿈꾸는 노력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인생은 짧고, 인류의 노력은 약하고, 말세는 이미 준비된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세라는 촛대를 옮길만한 능력과 지혜가,, 인류에게는 그리고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런 지혜가 있었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던 세상을 “사람들이 보기에도 심히 나쁘더라” 로 만들지 않았을 것
이고, 전쟁은 물론 전쟁의 불안을 만들어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그 배후는 마귀인 것입니다.
언제나 마귀는 때를 잊어버리게 하며 나 자신도 잊게 만드는 선수가 아닌가요?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해야 할”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2) 무엇보다도
특히 마지막 때에는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문제는 신앙이 우선적이고 종교적이면,,경건의 능력이 아닌 경건의 모습을 따르기에 사랑은 구호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곳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받은 큰사랑 갖고,,서로 대접해야 하고,,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이는 성도의 참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비하의 “노슬아치” 소리를 듣습니다.
성도가,, 교회가 이럴 수 있기에 “입은 좀 닫고 지갑은 많이 열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 유감입니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목사가 교회이전비용으로 대토와 함께 거액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자신이 승리했다고 해도,,결국 조합원들의 몫이 증가 되었기에 빛을 잃은 것입니다.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
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무궁하
도록 있느니라 아멘
인구가 주는 때에 그 돈으로 큰 예배당 지어도 문제이고, 안 짓고 아들에게 물려주어도 문제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씨 부리는 때가 아니고 번성케 하는 때도 아닌 결산하는 때인데,,
빛 잃고 예배당만 크게 지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사람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짐승 보다 못하다” 고 했듯이..이런 때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면 미래도 없게 됩니다.
대나무에는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마디가 있습니다.
마디가 무늬도 되지만 날마다 새로운 결산과 시작을 이루게 됩니다.
그 나무가 속 빈 나무인 것은 마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 결과 솟구치는 나무요, 바람도 어쩌지 못하는 절개의 나무요, 늘 푸름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도가 모인 교회,,,어떨까요?
대나무 숲이 되어 말세에 안식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3) 은사를 받은 대로
사람에게는 각각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발휘하면 삶과 세상이 한결 밝고도 윤택해집니다.
어린아이 때 발견하고, 청년의 때 발전시키고, 장년의 때 발휘하면 직업과 취미도 됩니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자퇴하는 학생이 많아졌답니다.
이유는 옛날하고 다르게 문제가 생겨서 자퇴가 아닌,, 보다 나은 자기 발전을 위해서,, 과목선택이나 시간을 벌기위해 자퇴축
하도 받으면서 자퇴한다니 새로운 시도입니다.
현대는 공부만이 아닌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기에 괴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제는 괴짜 하나가 수천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스필버그라는 괴짜학생이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산업을 선도하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공부가 대세인 시대는 아닙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변화가 늦는 이유는,,세상에 뒤쳐진 이유는,, 청년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이,,체제가 보수적이라서 그렇고 괴짜가 통하지 않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성도의 은사가 빛을 발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자칫 나대는 것처럼 보이거나 아님 삯이 있어야 한다든지 하여 빛나는 은사가 교회가 아닌 밖에서만 발휘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히 의와 선과 이웃들과 복음증거에 있어서 발휘되어야 합니다.
큰 교회 보다는 은사가 발휘되는 교회가 많아야 합니다.
의대생 때 실습 나가서 노숙인들이 흙탕물에 밥 먹은 모습을 보고 이들을 섬기는 의사로 결심한 최영아 여의사가 계십니다.
그는 지금껏 외진 곳, 낮은 곳을 찾았고 그가 존경하는 사람은 고인인 영등포요셉의원의 선우원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노숙인은 고쳐놓으면 또 술 먹고 망가지고,,수없이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는데 또 그렇게 되어 선우원장에게 속상한
나머지 자문을 구했더니 “나는 60번 입원도 시킨 환자도 있었다, 의사는 환자를 고치는 게 사명이다” 하는 말에 군말 없이 어느
환자든 치료한다는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은사를 발견하고 의사가 되었고 노숙인치료에 소명도 받았으니 힘닿는 날까지 살 듯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너무 이기적이기도 혹은 교회를 위한다는 데서 멈추기 쉽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유럽은 교회당이 없는 신앙이라면 한국은 교회당은 많은데 신앙이 없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마 약속하셨고 그날과 그 때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그 때에만 관심을 가져 이단사이비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재림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거룩한 긴장이 있나요?
흥망이 결정되는 때이고 이 믿음이 영원을 가르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결론) 성경마지막 구절은 의미 있는 말씀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진짜믿음은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심에 언제나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금은 14K나 24K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금의 특성이 있듯이 주께 향한 믿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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