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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0-18 13:48 조회 9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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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을 간 날이었습니다.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서너 시간 후 궁금해서 유치원을 부부가 다시 가는데 방배동전철역 지하도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유치원에 있을 줄 알았는데, 황당했습니다. 유치원에 가서 원장한테 아이를 물으니 있을거라했습니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1)상황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상황이 다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사람도 잃고, 길도 잃고,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명예도 잃는 일이 허다합니다.

분주하고 번잡하고 비슷하고 심지어는 욕심을 내 잃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을 잃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 상황의 소감은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입니다.

 

기분으로 말하면 잊혀 진 것 같고, 왕따 당한 듯 하고, 기도는 응답되지 않고 은혜는 멀게만 느껴진, 하나님이 남의 아버지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이쯤되면 희락이 없고 피곤만 하고 온갖 의미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찌해야 하나요?

 

자동차로 예를 듭니다.

자동차 브레이크가 삐삐소리가 나고 브레이크를 작동하면 차가 밀리고,, 왜 그런가요? 어찌해야 하나요?

 

하나님을 잃으면, 스스로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여호와께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합니다.

엘리야선지자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영적 무기력이 치고 들어왔기에 스스로 하룻길을 광야로 나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긴 여정입니다. 이 여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추억과 비밀이 형성되는데, 우리의 영적안목이 여행의 목적을 보지 않고 어느 한 순간을 보면서 피곤하다, 재미없다, 의미없다, 하는 것입니다.

 

오르는 신앙이 있다면 분명 내리막길 신앙도 있고, 천사를 만나는 신앙이 있다면 강도를 만나는 신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삐삐 소리를 내며 작동이 밀린다면 이상증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조치는, 라이닝을 교환하고 오일을 보충하면 됩니다.

 

영적인 증세,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원통한 것은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면~”는, 조치를 하면 됩니다.

 

2) 조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다른 조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크게 바라봐야만 합니다.

 

언제 어디서 바라보아야 되나?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다면 최상입니다.

주님은 새벽 미명에 하나님 아버지께 엎드리셨고, 바울 사도는 선교지에서도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이 의미 있는 일은 누구에게 부탁하기 보단 내가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기도를 부탁하는데, 부탁만큼 내가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이 내대신 식사를 하는 것과 내가 식사하는 일과의 차이입니다.

내 배를 부르게 하려면 어찌할까요?

 

크게 바라보는 일을 경배와 기도 외에 몇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일입니다.

사울 왕이 불순종했을 때 사무엘은 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늘 새겨 들어야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10가지 보다 싫어하시는 1가지가 더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기뻐하시는 바는 하고 싫어하시는 바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지하는 일입니다.

의지에는 의탁도 들어있습니다.

아쉬울 것 없는 장로님이 아들에 관한 “일찍이 하나님께 맡겼습니다.”고 했습니다.”

부모로써 한계 밖의 문제인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아들을 의탁한 것입니다.

이 말에 아버지의 짠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범사에 인정하는 일입니다.

실제 이 일이 잘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바를 먼저 인정하고 저변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단풍만 보면 안 됩니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모양을 좀 시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요7: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날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최근의 간증을 합니다.

아들의 친구가 드디어 심장수술을 마치고 무균실에서 회복을 하고 있답니다.

이 수술 소식을 해외에서 들었을 때 묵은 체증이 가신 듯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꽃 같은 청춘이 죽어가고 있음을, 그 자신이라면,, 내 아들이라면 어떨까요?

이들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을 앞서 비슷하게 겪었기 때문입니다.

자연 기도는 긍휼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3)다른 상황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확실합니다.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을 안다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경험한 이들의 특징은 더 사모하고 떠 큰 비밀을 알게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는 것이 병이다”가 허다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좋은 보약과 다릅니다.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새 힘에 비유했습니다. 피곤치 않습니다. 지혜도 옵니다. 근원이 하나님이기에 가능합니다.

 

종전의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와 얼마나 다른가요?

 

죽기를 구하였던 엘리야와 이 힘으로 소생한 엘리야는 과연 같았을까요?

아닙니다. 살기등등한 왕궁을 찾아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고, 밭가는 엘리사를 자기 사역의 후임자로 삼았고, 나중에는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에 올리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시대는 언제나 번잡하고 분주하고 하나님을 잃기에 쉽상입니다.

언제나 마귀는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혈안이기에 성도들도 사뭇 주를 잃습니다.

그러나 주는 우리를 빼앗기지도 않고 놓치지도 않습니다.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느니라”

언제나 우리는 주 안이라는 안전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곧 은혜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가 보이지 않는다 싶고, 주의 음성이 낯설다 느껴지고, 헌금이 아깝고, 예배가 귀찮고, 세상이 멋져 보일 때가 있다면, 그 때는 내가 슬며시 주를 잃을 때입니다.

염려가 들어왔고, 주의 새 힘이 떨어졌고, 겨우겨우 밥 힘으로만 견디는 그때입니다.

여기서 더 멀어지면 큰 탈이 옵니다.

 

결론) 육체에도 증세가 있고 처방이 있듯이, 영혼과 신앙에도 증세와 처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사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계절따라 독감백신만 기억치 마시고 영적 무력감에서의 백신을 찾아 맞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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