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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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인구 293만명의 대한노인회 회장인 이 심씨가 계십니다.
2010년부터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데, 올해의 슬로건은 “나눔과 베품을 통한 통일한국 시대”랍니다.
최근, 통일 나눔 펀드에 노인 72만명을 동참시켰는데, 한 단체의 기부자 수로는 대한민국 사상 최다 기록이랍니다.
또 이 노인회는 지난 5월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65세 보다 상향 조정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발상이지만 회장의 마음자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인은 부양만 받는 세대이기 보다는 세대를 책임지는 세대이다” 를 주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마음자세
조선 중기에 최 북이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애꾸눈이었기에 죽을 때 까지 항상 반쪽 안경을 걸쳤답니다.
기인이어서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금강산에 유람 가서 술 마시며 놀다가 갑자기 “천하의 명인 최 북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며 못 속으로 몸을 날렸는데 옆 사람이 만류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술꾼이었답니다, 술장수들이 그 집으로 오면 그는 있는 것 내주고 술 사먹었습니다.
이 탓에 그는 10일 굶은 데다 만취하여 집에 오다가 동사했답니다.
그 눈이 애꾸가 된 것도 한 권세가가 그림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협박을 했습니다.
그때 그는 “사람들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은 나의 눈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하며 자기 눈을 찔렀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누구인줄은 알았습니다.
가난한 화가였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나는 화가이다”했고, 지금이야 화가가 예술인으로 인정받지만 그 시절에는 푸대접 받던 시절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그림 값을 덜 쳐주면 그 그림은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고, 더 쳐주면 남은 돈은 되돌려주었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삶을 닮았나요?
바꿀 수 없는 시대와 처지라면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까요?
2) 기독교 인물
교회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잘나고 잘나갔던 인물들이 없습니다.
주의 섭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미련한 자를 통해서 지혜로운 자를, 약한 자를 통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약한 자들이 주를 만난 후 강한 쇠가 되더니, 또 성령까지 받으니 폭탄이 된 것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의 정체성을 보십시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확실한 자긍심이 있잖습니까? 자존감이 확실한 덕입니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천하를 어지럽히는 염병이라, 나사렛이단의 괴수” 소리를 듣는 자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변절자”
그런데 그는 이 소리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어땠나요? 가난하고 초라하고 매 맞고 갇히고 등,
그런데 그는 자존심 마져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우울하고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 그렇습니다.
사정은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팍팍한데 있다고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필리핀과 방글라데시는 세계적 빈민국인데도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1,2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더듬어 보면 우리 국민성이고 그 영향은 망한 조선과 유교 탓도 있습니다.
양반과 상놈, 이 신분제도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써 차별화로 만들었고, 유교의 예 중심이 온갖 부정적 체면치레를 만들었습니다.
그 일레가 명품소비와 짝퉁의 범람입니다.
실용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소비와 이런 짝퉁이 범람하질 않습니다.
저들은 가방을 들고 옷을 입지, 우리처럼 이미지를 입거나 가격을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명품은 물론 심지어 짝퉁이라도 들어야 신분이 상승된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외모지향주의를 만들어 ‘성형천국’이라는 오명도 만들어냈습니다.
자존감의 빈곤이고 자존심의 확장입니다.
실제 자존감이 강하면 자존심은 그다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박사보고 “바보야” 하면 무시해도, 무식한 사람보고 “무식한 놈” 하면 죽자 살자며 대드는 이치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가난하게 살았고 외국의 식민지 생활도 겪었기에 이 한이 담겨있습니다.
잘살아야 하고 잘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자기충족과 보여주는 충족에서 명품과 짝퉁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조 중엽 때만 하더라도 양반이 전체인구의 27.8%였는데, 말엽에 가서 78%가 넘었습니다.
몰락한 이조시대에서 양반족보를 막 샀던 것입니다.
상놈의 한이 돈으로 양반을 만든 것입니다.
3) 성도의 자긍심
성도는 세상적으로, 생물적으로 무엇이라 하던,
하나님께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니 (벧전2:9)”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롬5:17)”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5:14)“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8~29)“
이 말씀 앞에 “나는~”를 붙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주 예수의 의를 소유한 자로써, 성령이 함께한 자로써, 새로운 내가, 주님이 만드신 내가 세워집니다.
자존심을 세워 자존감을 강하게 하지 마세요.
모래위에 짓는 집같이 됩니다.
주의 말씀에 자존감을 먼저 세우세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긍심을 건강하게 하세요.
이 역시 반석위에 세운 집이 됩니다.
우리 신앙은 이상만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도 천국을 이룩해야 합니다.
롱펠로우의 인생예찬론 중에서 일부를 인용합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념이나 열정이나 친목보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1:12)”
현재의 수치스럽고 두렵고 불안한 삶을 사는데 사도 바울만한 인물이 있을까요?
그러나 미래의 소망을 갖고 담대한 삶을 사는데 사도 바울만한 인물이 있을까요?
그 비결은 믿음입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성경을 많이 읽어서 구원 받고 성경구절을 잘 외어서 믿음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진실되게 믿을 때에, 인격은 변화되고 지옥문은 닫혀 지고 천국 문이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뢰한 자가 있나요? 그 분은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의탁한 것은 무엇인가요? 내 힘으로 안 되는 그것 아닌가요?
누가 능히 지켜주실까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도 의지합니다.
늙거나 병들면 사람과 지팡이를 의지합니다.
불안시대에는 황금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이러한 공력은 다 불타 없어집니다.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우리 주 예수 안에서 거룩하고, 예수 안에서 의롭고, 예수 안에서 담대하고, 예수 안에서 강한 존재입니다.
결론) 자괴감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열등감도 십자가에 장사지내시고, 부활의 주와 함께,
승천하신 주와 함께, 하늘에 앉으신 영광의 주와 함께,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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