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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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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5-21 14:00 조회 707회 댓글 0건

본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두 가지다.

모든 것이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

                                                                                                               알버트 슈바이처

1) 삶의 방식

알버트 슈바이처는 삶의 방식을 기적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성도는 어떨까요?

은혜와 약속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면 감사가 넘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만 충만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이 약속이라면 신실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엉망진창이 됩니다.

 

야곱은 순결한 지혜보다는 잔꾀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이익 중심이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축복을 가로채고 라반삼촌의 집으로 도망갈 때는 어땠나요?

그 삼촌 집에서 나올 때는 어땠나요?

형에서를 만난 후에는 어땠나요? 역시 잔꾀를 부렸습니다.

창33:14)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그러나 그는 형을 곧 따라가지 않고 숙곳이라는 곳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그에게 기적들은 있었지만 은혜로 여기지 않았고 약속들은 있었지만 신실하게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나요? 삶의 사연이 많은 것입니다.

야곱이 “창47:9)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했던 말년의 고백이 우연이 아닙니다.

결국 자신이 그처럼 살았기에 그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요즘 방송사에서 전파선교 모금을 위한 홍보를 합니다.

사과 씨를 뿌리면 사과를 얻고 수박씨를 부리면 수박을 얻는 답니다.

그러면서 기적의 씨를 뿌리면 기적을 거둔답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적에 동참을 권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야곱이 들었으면 좋았을 그러나 쉽게 동참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왜 그런가요? 야곱은 지지기도 싫어할뿐더러 손해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탐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사연

이런 그에게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외동딸 디나가 동네 구경나갔다가 원주민추방아들에게 성폭행 당하게 됩니다.

이러 인해서 야곱의 아들들이 그 부족을 살육하고 노략질합니다.

창34:28~29)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

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끔찍한 복수였지만 이 복수도 속임의 꾀가 동원되었습니다.

창34:17)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그의 딸을 데리고 가리라

종교적인 할례를 빙자하여 할례 받고 움직이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정당치 못하게 살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가족들을 이끌고 옛날 서원했던 베델을 향해서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창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

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왜 야곱은 이 생각을 못했을까요? 죄인은 죄책이 오면 두려워 숨기 마련입니다.

죄인이 고생하는 이유가 죄로 말미암는 사연 때문이라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죄책 때문입니다.

이때 지혜가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자 먼저 찾으시고 먼저 인도하십니다.

범죄한 아담을 찾으신 하나님은 야곱을 찾으셨고 베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떨까요? 역시 찾으시고 십자가로 이끄십니다.

 

얼마나 친절하신가요? 얼마나 자비로우신지요?

우리의 하나님은 아빠가 되시고 또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신이 이토록 지시하고 은혜를 주시나요? 평생에 감사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아니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라반삼촌의 집으로 도망갈 때는 어땠나요?

절망가운데 돌베개를 베고 잠잘 때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서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역시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우리는 어떨까요? 야곱은 감격하여 서원하였지만 세월 속에서 외면하고 말았듯이 우리도 그렇습니다.

창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

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말은 근사했고 서원은 진실이었어도 스스로 베델을 찾지도 않고 좋을 때 베델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편안한 숙곳에 머물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편안에만 머물면 죄악과 짝짓게 되고 고난과 고통을 당하며 마침내 그 흔적과 상처가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혜를 받아도 죄의 흔적과 고통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기념비가 됩니다.

딸 디나의 성폭행, 또 나중에 나오지만 장자 루우벤이 서모와 통간했는데,

창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유할 때에 루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들었더라

외동딸 디나의 성폭행,, 아들과 작은 부인과의 통간,,얼마나 큰 평생의 고통일까요?

 

루우벤 역시 훗날에 이 일로 아버지로 하여금 기업을 잇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역시 심는 대로 거두게 된 것입니

다.

창49:3~4) 루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

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죄는 이처럼 고통을 줄뿐더러 흔적을 남깁니다.

 

이런 죄의 유전자는 아버지께 받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공통되게 왕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 속였으니,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삼촌을 속이고 했던,, 부정적 아버지효과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잘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잘 살아라” 하는 백번의 말은 효과가 없습니다.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3) 상수리나무 아래

우리는 이처럼 모태로부터 죄악 중에 잉태되고 어려서부터 죄짓는 행악의 종자입니다.

그냥 이대로 살면 죄의 고난과 고통으로 땅에서도 못살고, 천국에서도 못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창35:3) ~ 우리가 일어나 베델로 올라가자

이는 용기이기도 하지만 믿음이기도 합니다.

 

왜 올라가야 하나요?

“창35:3)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나의 가는 길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회복이요, 죄의 청산이요, 서원의 갚음이요, 감사의 보답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요?

창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 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아래 묻고

우리는 너무 많이 쥐고 나옵니다. 묻는 것 보다 캐려고 하는 행위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먼저 죽어야 살고 놓아야 쥐고 묻어야 캐는데 전혀 이 사전 작업인 회개치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손해도 감수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더하려 한다며 잘못되고 잘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신앙의 모델이 여기에 있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언젠가 사회자가 순서 받은 우리를 소개하면서 부회장을 가리켜 "회장을 사양하셔서 현재는 부회장이시고 미국과 한국에

서 큰 목회를 하셨고~” 하면서,

내게도 그렇게 하기를 “~ 전에는 어떻고 어떻고 무엇을 하셨고 ” 소개했습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부회장이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삼가라 했는데 또 그런 일이 발생했기에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혹 누구에게 소개하실 때 그냥 현재의 저만 나타내시면 좋겠습니다.

작심한 게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도 날마다 죽어야 삽니다.

여기에 사도바울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결론) 보십시오. 이들에게 새로운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창35: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들은 작은 무리이기에 사고를 당하고도 두려워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은혜를 입고 나니 오히려 두려움을 주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믿음과 회개, 혹은 회개와 믿음이 구원에 이르렀다면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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