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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6-04 13:08 조회 6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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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를 보니 고위공직자후보들이 다 반칙을 했습니다.

이번 만이 아닌 지금 껏 그래왔습니다.

더 이상의 후보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앞줄에 섰던 이들이 이처럼 반칙선수였던 것이고 또 이런 이들이 미래사회를 낫게 만들겠다며 줄서고 있음에 우려

를 갖게 됩니다.

어떤가요?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1) 부정부패

“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이가 없다” 합니다만 그동안 우리사회는 이런 면에 관대했습니다.

법으로 맺는 계약사회가 아닌 정으로 맺는 관계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라면 엄정할 일이 우리에게는 약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여기서 공사가 불분명한 폐단이 생겼고, 만사에 확실함 보다는 대충적이고 정도껏이라는 모호함이 국민생활전체에 자리매

김했습니다.

이 탓에 부패지수는 높아졌고 국가신뢰도도 낮아졌습니다.

 

우리의 부패지수가 OECD 34개국 중 9위가 된답니다.

1위 멕시코, 2위 슬로바키아, 3위 이탈리아, 4위 헝가리, 5위 그리스, 6위 체코, 7위 스페인, 8위 라이티, 9위 대한민국, 10

위 폴란드,

 

양심껏하면 바보 되고 손해 본다는 의식이 팽배함이 너무 강한 사회입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이중매매, 가짜명품, 자동차 보험사기, 장애인 및 기초수급자 부당 등급, 각종 허위 보고서, 학위논문

표절, 방산비리, 혈세낭비 및 착복 등,

특별히 기득권과 고위자의 탈법은 형용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욱이 교회는 모든 것을 은혜로 치부하기에 은혜의 온상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공사는 건축업을 하는 성도 보다는 일반 업자를 통해서 하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라는 업자가 더 하기 때문입니다.

또 구청에서 싫어하는 이가 목사님이랍니다.

떼쓰는데 1등이고, 요즘의 경우 양로원한다면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 되면 되게 하라” 말을 지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이 왜 생기나요?

공직후보자들이 청문회에 설 줄 알았다면 어떨까요?

되는대로 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정녕 믿는다면 어떨까요? 성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이유는 “ 저희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가 현상화 된 것입니다.

성도는 살면서 많이 억울하고 많이 원통하고 많이 손해 보아야 합니다.

이 감정이 없다면 잘 산 듯해도 못 산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판단하신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믿음 안에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함의 일만 악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2) 은혜와 법

성도는 은혜와 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은혜는 호의이고 법은 규정이기에 상호 모순되는 것 같아도 실제는 하나가 됩니다.

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은 법 없는 자나 법을 무시하는 자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아는 지식입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주님은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가서 범죄치 말아라 ” 하셨습니다.

정죄치 아니하는 은혜를 먼저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법을 주셨습니다. “가서 범죄치 말아라”

 

만약 “범죄치 아니할 수 있거든 가라” 면서 법을 먼저 주셨다면 어떨까요?

그 여인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범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을, 나중에 주셨기에 가서 그 은혜아래서 법을 지키며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만가지 은혜를 먼저 입은 사람들입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 놀라워” 실감하시나요?

먼저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가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입니다.

그 은혜가 커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찬양하곤 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무거운 법이 아닙니다.

이런 성도에게 사는 날 동안 땅의 법도 지킬 힘이 주어집니다.

이 환경이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증인의 자격이 됩니다.

딤후2:1~2)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람이 담대하고 신뢰받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완전할 때입니다.

 

3) 은혜 속에서 강하고

부모는 강합니다.

자기 자녀에게서는 그렇고,

선생님들도 강합니다.

학생들에게 비해서,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만큼은 강합니다.

강한 만큼, 거룩한 빛이 발휘되어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찌되나요? 그런데 그렇게 되었기에 밖에 버리워 밟힙니다.

이제는 달라야 합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비평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옳아야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도는 누구를 비난하고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휼히 여깁니다.

이것이 예수 안의 은혜 속에서 있는 모양입니다.

 

똑똑하고 장사가 되고 부자가 되고 권세자가 되기보다는 은혜 속에서 강하자 자가 되길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이미 면책의 은혜를 받은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먹고사는 일은 큰일입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 무엇이던가요? “ 먹고 살려고 그랬어요.”

마귀는 먹고사는 일을 큰 일로 여기도록 하여 붙잡고 흔들어 댑니다.

 

그러나 사람이 먹고사는 것은 사람의 일 같아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먹을 것이 있고 먹는 은혜를 주셔야만 먹을 수 있습니다.

딤후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걱정 마십시오.

예수 안에 계시면 되고 은혜 안에서 강해지면 하나님은 성도를 굶어죽게 하지 않습니다.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광야로 쫒겨서 아들이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 그 주위에 물주머니를 보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도 아합 왕의 쫓김을 당했을 때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물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셨습니다.

우리는 참새나 백합화 보다 귀한존재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우리는 떡을 사랑하기 보다는 보다는 떡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랍니다.

여기저기서 쎄미나와 포럼이 많아졌습니다.

종교개혁과 신앙개혁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다른 것 하나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행동이었다면 지금은 말의 향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 “개혁하자” 가 아니라 “개혁했다” 는 간증이나 보고서가 채택되어야 합니다.

 

결론) 새 정권이 들어서서 적폐청산을 외칩니다.

그러나 금번 총리가 어렵게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자신이 적폐청산이었다고 했습니다.

“법을 지키자” 는 남부터 아닌 나부터여야 합니다.

새 의지와 새 마음은 성령의 힘입니다.

성도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이 비결의 원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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