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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성을 보존하는 일보다 나은 일이 있을까요?
달리 질문하면 거룩성을 훼손하시면서 까지 보다 더 이룩하실 일이 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롯의 가족들을 소알성으로 피신시키셨습니다.
1) 사랑주의
동전의 양면 같이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은 특별한 속성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이 두 성품의 완성이고 만족입니다.
주님의 대속은 죄에 대한 거룩성의 충족이고 부활은 하나님 사랑의 성취였습니다.
롬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사람에 대한 사랑,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큰 사랑이고 참사랑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또 이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합니다.
성도는 이 사랑으로 산사람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물론 사람이해도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했지만 신관이야 어떻든 유물론적인 사상에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중심의 사상에는 사람도 중심에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인권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몰랐다가 대한민국에서 와서 들었답니다.
우리에게는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보호법도 있어 함부로 도살하거나 치료할 수 없고 학대할 수 없습니다.
군견수용소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노견들이 새 주인을 맞이하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하지 않고 몇 년씩 우리에서 나마 생
활한답니다.
6월이니 6,25한국전쟁을 예로 듭니다.
함흥철수에서 미군들이 600만 톤이 넘는 무기와 전쟁 물자를 버리고 배마다 정원의 수백 배를 넘는 피난민을 실어왔습니
다.
장진호전투는 어떤가요? 진격했던 미 해병대가 중공군을 격퇴했지만 강추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지경에서 후퇴한 사건
입니다.
미군이 힘들었다면 중공군은 어땠을까요? 미군들은 중공군까지 도듬어 주었고 피난민들도 살렸습니다.
전쟁의 실리보다 사람을 중시한 것인데 곧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의 마음입니다.
앞장의 하나님의 율례를 보면 철저히 사람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종에 대한 조치, 심지어 여종에게라도 손해를 끼쳤으면 배상하도록 하셨습니다.
출21:9~10)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접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치 못할 것이요
가난한 이웃에 대한 긍휼도 있습니다.
출22: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철저히 이웃들과 함께 살도록, 없는 자보다는 있는 자에게 약한 자보다는 강한 자에게 갑질 금지를 법제화 시키신 것입니
다.
이런 배려, 이런 원칙이 지켜졌다면 어떨까요? 지금처럼 강한 자와 있는 자를 타도하자거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판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경주최씨 가문이 동학의 화를 면한 이유와 같습니다.
2) 인구 절벽
우리나라의 인구절벽이 심각합니다.
아들아이가 다녔던 여의도의 중학교가 폐교된 답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고등학교도 폐교될 것입니다.
강남의 웨딩홀들이 이미 폐업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애를 안 낳아서요? 살기 어려워서요? 교육하기 어려워서요?
취직하기 어려워서요?
그 저변에는 나만 살겠다는 자기애가 강한 나머지 교육의 출발선이 무너졌고
삶의 출발선이 무너진 탓입니다.
공동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니 자본주의야 오죽할까요?
마음속에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의 사랑이 있었어야 됐는데,
공동의 유익이나 선 보다는 개인우선으로 치중한 탓입니다.
더듬어 보면 남다른 자식 사랑이 남의 자식은 어떻든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그릇됨이 작용했고,
교육도 역사나 철학이 나 도덕 같은 인성교육 보다 밥벌이에 유용한 과목에 치중해서 그렇습니다.
이런 교육, 이런 사회의 특징은 자멸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출23:28~30)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 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면 원주민 7족속을 무찔러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3족속은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서 제거하실 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에는 당장 없애야 하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1년의 유예를 두셨답니다.
땅이 너무 황무하면 들짐승이 번성하여 오히려 해가 되니,
이스라엘이 번성할 때까지 상황을 보시면서 조금씩 제거 하신 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구원해주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맞춤 복지입니다.
철저하고 완전한 이해와 배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3족속을 향한 진노 중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인내를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을 누르시고 사랑을 발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도 주변에 대해서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뜻과 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이해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구원 받기를 기뻐하시는 대상이라면서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 하셨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판단과 정죄와 신앙에 대한 이단 판정은 쉽게 할 것이 못됩니다.
판단은 하나님이 하실 몫이고 우리 몫은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탁발승이 찾아와서 냉수를 부탁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같으면 어떠셨을까요?
그러나 탁발승이 와서 불자가 되라 한다면 어때야 하나요?
출23: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는 바꾸어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신앙은 쉽게 바꾸거나 흩어놓고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기주관에 따라 판단해 버립니다.
지금 필리핀 민다오 섬에서는 전쟁 중입니다.
반군소탕중인데 대체로 극단 무슬림이 주동되어 설치고 있습니다.
이 무슬림 중에서 참수당할 기독인들을 숨겨 구출해준 사건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무슬림인 것입니다.
3) 하나님주의
하나님주의는 곧 거룩성과 사랑을 함께 이루는 일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마음인데 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죽고 혐오하며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문해 보십시오.
기도 잘하고 성경 많이 있고 사기 치는 사람이 낫습니까?
아님 교회도 잘 못나오고 사기 치지 않으면서 이웃에 동정을 베풀면서 희생까지 감수하는 사람이 낫습니까?
과연 누굴 보고 예수님을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장은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글을 관에 써 붙이도록 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인침으로, 그 보혜사적인 역할로 대신합니다.
여호와께 성결은 예배만이 아닙니다.
이웃관계도 포함됩니다.
거룩한 예배자라면 이웃에서 존경받는 사랑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사요, 제물이 됩니다.
예배는 잘하는데, 교회당 안에서는 흠이 없는데 사회생활에서 흠이 많다면 심각한 외식이 아닌가요?
교회라는 집단영성은 발달했는데 나라고 하는 개인영성은 형편없다면 기형적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신앙은 이기적입니다.
이 신앙은 무너집니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마따나 원칙 없는 정치와 함께 희생 없는 종교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은 무엇인가요? 많은 동사가 있지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나요?
출23:29~30)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
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 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또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셨을 때 뭐라 하셨나요?
창19: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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