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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아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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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7-02 13:28 조회 667회 댓글 0건

본문

기이한 일은 상식을 초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이라면,, 아주 크게 놀랄 일이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기이한 일이라면,, 좋은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이라면 어떨까요?

나의 일이 되고 기대됩니다.

본문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정확히 표기되었고 무려 3번이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가슴 벅찬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성취

성경을 보면 과거 현재 미래적 상황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다 이루신 성취로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말과 글과 동사가 부족해서 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진리시기에 꼭 성취하신다는 기본 믿음으로 성경이 기록되

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인 것입니다.

 

9절을 봅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모하는 영혼을”,,현재입니다만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완료입니다.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성취되어 있는 것입니

다.

특별히 “인생에게” 하여 불특정다수임을 볼 때 나도 포함되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친척 아비 집에서 부르심과 죽은 자와 방불했던 100세에 독자이삭을 받은 일들이 됩니다.

이삭은 무엇이 있나요? 아버지께 순종하여 제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신 것을 보았던 일입니다.

야곱에게는 아비 집을 떠나갈 때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천사들 오르락내리락 했던 일과 노년에는 죽은 줄만 알았

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을 불러들인 일이 됩니다.

요셉은 무엇인가요? 노예소년이 제국의 총리가 된 일입니다.

시대와 상황은 달랐지만 믿음이 실제가 일들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로 말미암은 인자하심과 기이한 일들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백성은 어땠나요?

출애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인자하고 기이한 일로 가득 찼습니다.

광야생활은 어땠나요?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로 영양결핍이 없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길 잃지 않았습니다.

시108:4~7)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

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위대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시고 지혜가 완전하시고 한 없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은

인생을 놀라게 하심도 아니며 하나님 자신의 탁월함을 증거 하시기 위함만도 아닙니다.

바로 인생, 그리고 그 백성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함입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2) 하나님의 반전

그러나 가끔은 반전의 반전이 일어나는 기이한 일도 있습니다.

시107:38~40) 또 복을 주사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이 감소치 않게 하실지라도 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하여 저희로 감소하여 비굴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반전의 반전이 무엇인가요?

지고 있던 축구가 극적으로 이겼으나 다시 진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원수에게서 건져주었습니다.

또한 평화롭고 안정되게 하셨지만 어느 날 전쟁이 나거나 재해가 터져 다 없어졌다면,,

반전의 반전인 것입니다.

이런 경우 멀미가 난다고 하고 천국과 지옥을 오고갔다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욥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생을 가지고 논다”고 합니다.

또 신학적, 신앙적, 철학적으로 의미를 달리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황과 인생에 따라 다르기에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이한 행사’ 라는 사실입니다.

 

이때 당장 보다는 미래를 보아야 하고, 상황을 이해하기 보단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은 곤란 중에 있을 때 기도하고 형통할 때라면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곤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

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께는 흔한, 그래서 증험된 상황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제한적인 부류인데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모든 것이” 포괄적이기에 모든 상황이 다 포함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결국은 반전이 또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이한 일로 악인의 번성도 있고 그 번성을 보며 실족하는 성도도 있는데 확실한

것은,

전8:12)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잘될 것이요

 

사람들은 편한 한 것을 즐거워하지만 하나님은 조화된 아름다움을 기뻐하시고,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자신이 있지만 하나님이 목적하신 자신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자하심은 바라도 기이함은 왜 거부할까요? 이 경륜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우파좌파 뒤섞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흥망을 통해 인생을 이끄시고 성도의 믿음도 아름답게 하십니다.

 

3) 깨달으리로다

시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 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우리는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이한 일은 아주 다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았을 때 “하나님을 귀로만 듣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 하며 엎드러지고

깨달았을 때 “42절)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깨달았을 때 새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솟아오릅니다.

시108:1~2)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기독교의 모든 고전물은 단순히 골동품이 되었기에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인데 여기에는 깊은 깨달음의 감격이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눈이 밝아 화폭에 옮기니 성

화가 되었고, 귀가 튀어 오선지에 옮기니 성가가, 믿음이 확실해져 종교개혁이나 삶의 변화를 끌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복을 주사,, 흥하고 흥해서 잘 먹고 잘 살겠습니다” 하는 단순한 신앙을 초월해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또 반전이 일어날지

라도 고난도 주의 은혜로 여기는 이 확실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상황적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강한 국가에는 훌륭한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리더쉽이 따랐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신체허약으로 육군을 입대하지 못하자 해군으로 지원했습니다.

또 거기서 떨어지자 아버지께 부탁해서 입대했습니다.

우리와 다른 병역비리입니다.

이런 리더쉽이 애국심을 낳았다면 믿음은 윤리를 낳고 낳아야 합니다.

 

고려 때는 불교가 왕성했고 조선시대는 서원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망했습니다.

현대는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가 많은 것보다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기의 선교사들은 선교지를 분할했습니다.

서북쪽으론 미국북장교가 함북도와 북간도쪽으론 캐나다 장로회가 맡았습니다.

각기 다른 성도와 제자들을 배출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적으로 두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북장로회는 평양과 정주와 신천에 학교를 세워 민족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보수화를 이루었고 캐나다장로회는 교회를 세워

민족성과 사회성의 진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윤리가 건강한 것이 부흥시대입니다.

우리는 잘 먹고 잘사는 것 보다 좋은 윤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윤리는 거룩이고 사랑이며 희망입니다.

이 윤리는 좋은 소가 좋은 우유와 고기를 내는 이치처럼 세상의 흔들리는 현상만 보며 요동하는 신앙이 아니라 반석 같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신앙에서 빚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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