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추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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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래동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후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유독 새들이 불평이 많았답니다.
입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왜 다른 동물들에게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주시면서 우리에게만 허약하게 만들었을
까? 게다가 날개라는 무거운 짐을 얹어주어 걸어 다니기가 얼마나 힘든가?”
대표인 독수리가 그 불평을 하나님께 했습니다.
이 불평을 접수한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날개를 짐으로 생각하느냐 활짝 펴보아라” 독수리가 날개를 질질 끌고
가다가 말씀대로 활짝 펴고 한참 달리니 창공으로 올랐습니다.
무거운 짐이 아니었습니다.
1) 감사조건
감사의 조건이 무엇이 있나요? 좋다는 것이 훗날에 나쁜 것이 되고 부러움을 받았던 것이 장차 수치가 되곤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수감자가 되었습니다.
상황은 시대따라 변합니다.
감사를 조건에서만 찾으면 감사는 그치고 그 감사는 훗날 원망되기 쉽상입니다.
구약에서 감사의 인물은 다윗이었고 신약에서는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감사 조건이 없는 극한 악조건에서 감사했고,
그 감사는 아주 풍성했던 인물들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 중에서 감사가 끊임없었습니다.
엡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감옥은 후회하고 원망하고 자신만 생각하기에 딱 좋은 곳 아닌 가요?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인격이 됩니다.
어느 사장은 종업원 때문에 회사가 어렵다고 하며 회사가 버는 것은 저들이 다 가져간다고 합니다.
반면 어느 사장은 종업원들 덕분에 회사가 살고 나도 산다고 합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내가 늙도록 이 고생한다는 부모가 계시고,
이 고생하는데 자식들마저 없었으면 어디서 즐거움을 찾았을까 하는 부모도 계십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감옥에 있으나 여러분들을 생각하니 기운이 납니다했던 사도 바울이 있고
교인들 때문에 내가 속 다 썩었다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한 원로목사님이 길가의 속빈 고목을 보고는 그 고목을 쓰다듬으면서 “ 에구,, 너도 목회했느냐 네 속과 내속이 똑 같구나
했답니다.
사람에 대한 인격평가 기준은 스펙이나 나이나 건강이나 직위가 아닙니다.
얼마나 감사하느냐? 모든 사람에게 어떤 감사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느냐? 에 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젊은이가 어른을 받들었다면 그 어른은 감사해야 하고, 젊은이가 어른의 사랑을 입었다면 사례해야 합니다.
이 감사가 지나치게 강요되니 뇌물이 되고 이를 근절하자며 새 법이 등장했는데,
여하한 기뻐하기만 하고 감사가 없다면 사람으론 하급입니다.
인간 말종인 것입니다.
또한 감사는 신앙수준입니다.
신앙이 무엇인가요? 성경암송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신앙을 잘하는 일입니다.
인격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종 행복지수가 어떻고 합니다만 그 행복지수가 무엇인가요? 잘사는 수치인가요?
이것도 감사에 따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을 얼마나 감사하느냐? 그것이 행복지수입니다.
얼마나 버느냐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닙니다.
유감되게 우리나라는 소득과 소유에만 행복이 있다고 믿는데,, 속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최고의 행복자와 감사자는 재벌총수여야 할 것입니다.
2) 마음과 생각의 변화
본문은 감사의 대상과 감사의 모양을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갖 신령한 것들과 빛들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아버지는 모든 것의 원천이기에 감사의 근본입니다.
사람에게도, 농부에게도, 국군장병에게도, 두루두루 감사하지만 최종적으론 주님께 향해야 합니다.
시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
다
“주께 감사하고”
이 감사에 주님이 제외된다면 수취인 없는 편지와 같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누렸던 많은 감사 사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136:5~6)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라
그러나 감사에도 곱빼기가 있다면 큰사람, 큰 신앙입니다.
짜장면 짬뽕에도 곱빼기가 있고, 은혜에도 곱빼기가 있고, 영적능력에도 곱빼기가 있으니
감사도 곱빼기가 있어야 합니다.
시145: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감사의 곱빼기입니다.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이런 이중적 서원과 결단의 감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가끔 밖에서 사례를 받습니다.
흔히 교회봉투나 편지봉투에 담아 줍니다.
그런데 정성담긴 봉투에 글까지 쓴 경우 갑절의 사례를 받는 경우가 됩니다.
사례비야 규정이나 형편 만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만 봉투와 글에서 진정성을 받으면 좋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는 감읍은 마음과 생각의 변화여서 은혜를 입은 경우입니다.
그 은혜는 역시 믿음이 시발점이 됩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어느 날은 새들이 지저귐이 노래로 들리기도 하고 불평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요?
낙엽이 귀찮다가도 하나님의 손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힘, 훗날을 내다보는 일,,믿음의 안목만이 가능합니다.
지난 여름 얼마나 가뭄이 심각했나요? 국내정치사회는 밭 갈아 없는 듯했고,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또 이런 사고 저런 질병은 어떤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겪은 후 현재 주의 보호와 인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은 이기적일 때 순수성을 잃고 은혜는 현재적일 때 그칩니다.
3) 범사에 감사
우리 신앙은 믿음 안에서 범사감사입니다.
햇빛 감사, 태풍감사, 이른 비 늦은 비 감사, 장미꽃 감사, 가시 감사,
형통하고 풍성하고 행복하고 건강해서만 아닙니다.
보이는 감사, 느끼는 감사, 만져지는 감사만 아니라 예수 안에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영생을 주신 감사, 성령이 내주하시는 감사, 충성되이 여겨주신 감사 등,
헤아려 보십시오.
새에게 가느다란 다리는 허약함이 아니고 날개는 짐이 아닌 창공을 비상하라 하신 은혜였듯이, 부리가 뾰로통한 것은 불평
하고 불만하라 하심이 아니라 노래하고 집짓고 새끼 낳고 잘살도록 매가이버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동물은 뿔이 있거나 이빨이 날카롭거나 발톱이 사납거나 아님 힘이 세거나 성질이 사납거나 아님 잽싸거나 합니다.
오직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흔한 꼬리도 없습니다.
사람은 은혜로 살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도록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 아름다운 얼굴을 남기는 팁을 드릴까요?
잠 잘 때 아름다운 얼굴이면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생각부터 행복하고 평안해야합니다.
그 시작은 감사입니다.
결론) 우리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추수감사도 하지만 매일 감사합니다.
상황도 조건도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감사하지만 주께 더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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