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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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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1-05 13:26 조회 689회 댓글 0건

본문

사람은 누구나 두 종류의 내가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나와 그 속에 담겨진 내가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나냐? 한다면 복잡합니다.

둘 다 나이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나는 세상에서의 보이는 나고, 담겨진 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입니다.

 

1) 나

나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못합니다.

거울에 비추인 나를 어떻게 한다고 명품으로 꾸미면 좀 낫기는 해도 여전하며,

담겨진 나는 그대로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나는, 속으로 그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내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겉을 보며, 사람들은 겉을 무장하거나 단장합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합니다.

회칠한 무덤을 아시나요? 겉은 아름답고 깨끗해도 속에는 썩은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모인 곳마다 실망과 갈등과 썩은 냄새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두 나의 불이치 때문입니다.

 

고맙게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아시면서도 사랑하십니다.

사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본문은 지렁이 같은 내가 구속받은 후의 새로워진 모습입니다.

벧전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애굽에서 430년을 노예 생활했던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부도 아니고 예수님의 칭찬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실적 선언이고 예수님의 진실된 증언입니다.

약속하신 구속이 이루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선언해야 합니다.

 

Self talk 를 아시지요? 혼자 말입니다.

언뜻 보거나 듣기에는 정신병자 같아도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매우 좋습니다.

문제는 무슨 소리냐가 관건입니다.

욕이 아닌 찬송이라면, 말씀 암송이라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상처 받은 나를 낫게 하고, 자존감과 자존심을 튼튼하게 합니다.

 

2) 속사람부터

모세를 보십시오.

왕궁에서 도망 나와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았습니다.

잔뜩 웅크려진 실패한 그였습니다만 하나님은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를 만나시면서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셨지만 그는 사양하고 사양했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화를 내셨을까요?

출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이처럼 겉이 망가지면 속도 망가지게 마련입니다.

망가짐은 그렇습니다.

성묘 가서 밤알을 주워보았습니다.

한결같게 겉이 쭈그러진 밤알 이면 속도 똑같았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유는 겉을 통하여 속을 치유하시지 않고,

속부터 다듬고 만들어 겉도 새롭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의 능력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의 난 것은 영이지만 분리가 아니라,

하나인 한 사람이기에 망가짐도 함께라면 새로워짐도 함께인 것입니다.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요3:7) 내가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거듭남이 무엇인가요?

보이는 나의 개량이고 개선인가요? 머리숱을 심고 주름을 없애고,, 인가요?

보이지 않는 나의 심리적 북돋움인가요? 정신적 무장인가요?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담겨진 나, 속사람의 새로운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고통을 산고로 여겨, 성령으로 힘으로 말미암는,

하나님부터의 영적 출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새 성품이 심겨지는 위대하고 신비한 생명작용이고 생물 작동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엘리야는 불같은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떡과 물을 주시면서 잠을 자게 하셨습니다.

보이는 사람의 치유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담겨진 속사람은 떡과 물의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열왕19:11)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섰으라”하셨습니다.

그냥 산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입니다.

 

이때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지진이 있으나 지진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데 그 소리가 “ 엘리야야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하셨습니다.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겉 사람은 힘든 삶에 괴롭고 힘들고 슬프고 낙심됩니다.

세상은 이럴 때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즐거워하라 잊어라”

그러나 속사람을 위해서는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네가 누구인지 아느냐? 상기하라

벧전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이름만이 아닌, 진짜 누구인가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을까요? 세상이 기억하는 내가 맞을까요?

하나님이 불러주는 내가 맞을까요?

다 맞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불러주는 나를 잃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크다고 느끼고 두려움에 웅크리고 있지 않나요?

예수님 안에서의 내가 아닌,

예수님 밖에서의 나만 알고 지금 길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은 자칭 큰 사람이고 자칭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해서 지명되고 선언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벧전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를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이고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다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인 혹은 하나님사람이라 합니다.

아파트 평수 갖고 구별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이런 사람은 속사람을 고백을 합니다.

고후 4:16) ~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이런 사람은 신령한 것을 자랑합니다.

시119: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결론)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택하신 족속”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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