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버금 지혜 > 설교말씀

버금 지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1-26 19:51 조회 661회 댓글 0건

본문

시간이 흘러가는 상태가 세월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자전은 하루,

그 속도는 초속 465m이며 그렇게 24시간을 돌면 4만km, 하루가 됩니다.

이것이 시간의 개념이고 세월을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1년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공전속도로써 시속 1700km가 됩니다.

세월은 더딘 듯해도 그 어떤 승용차나 고속열차보다 10배이상이나 빠르니,

눈 깜짝할 사이가 맞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이고 세월인데 나이 따라 다르답니다.

10대는 시속 10km, 30대는 30km, 50대는 50km, 70대는 70km, 가속의 가속이 붙는답니다.

대체로 나이 먹을수록 시간은 있는데 세월은 빨리 간다고 이상스레 여깁니다.

이는 시간 속의 사건축적이 젊어서 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1) 지혜

성경은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으뜸지혜입니다.

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시간 활용을 잘할 것도 교훈했는데 버금지혜가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를 잘 믿는다 하면서도 이 시간을 선용하지 못해, 하나님이 주신 세월을 낭비하여 “시간을 떼운다”

혹은 “소일 삼아 한다”하는데 삼가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시간을 생산하거나 붙들어 맬 수 없기에 잘 선용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루 24시간을, 1년 365일을 금처럼 활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건강과 명예와 취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도 시간에 대해서는 무심한데

삶의 낭비가 됩니다.

특별히 약속시간에 기다리게 하여 상대방의 시간을 낭비시켰는데도 변상은커녕, 사과할 줄 모르고 변상을 요구하지도 않

습니다.

시간은 물과 공기 보다 귀중합니다.

자원이 아니기에 재활용을 할 수 없고 무엇으로도 대신하거나 대체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내 세월의 통장잔고에서 찾아 쓰기에 순간순간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귀한 시간을, 이기적으로 쓰는 사람이 있고, 이타적으로 쓰는 사람이 있고, 주께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떨까요? 아니 누굴까요?

시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를 믿는 으뜸지혜는 버금지혜를 발휘하게 합니다.

오늘의 시간과 남은 세월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신 하루, 일 년, 이 시간, 이 세월을 내가 잘 알고 변화된 삶을 구현할 때 시간의 선용이 됩니다.

시39: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

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이 시간의 가치와 남은 날들을 짐작하고 어제가 아닌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했던 스피노자가 그 삶을 대변했습니다.

이는 나무심기가 소중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최선의 날로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2) 남은 날

우리는 지금껏 타인의 삶을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종말도 지켜보았습니다.

이 특징은 불현듯이고 온 순서대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생애가 하루 남았다면 무엇을 할까요? 뒷담만 할까요? 일 년 남았다면?

TV앞에서 리모컨만 끼고 살까요? 그리고 십년 남았다면 어떨까요? 옛부터 마귀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단정하지 못하고

흩어지고 방심하게 만드는데 선수입니다.

시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

다

그럼에도 대다수 여기에 붙잡혀서 주를 외면하거나 이웃을 떠나 불의와 함께 자기 입과 배를 위해 사는데 헉헉거립니다.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언제나 땅보다는 하늘에 가치를 침노해야 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거룩하고 진지한 성도의 자태가 세월을 통해 악한 세상을 이기는 거룩한 승리입니다.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닌 하나님을 찾고 알아야 합니다.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몸과 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신 모든 것들을 힘써 사랑해야 합니다.

 

치료를 받고 보양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왜 해야 할까요?

직장이나 사업으로 돈을 벌고,,왜 벌어야 하나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얼마 전 베트남선교사님이 피부암 수술 차 입국했습니다.

치료 후 만나서 방송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그 짧은 방송을 듣고 베트남에서 돌보는 고아들을 위한 후원금이 답지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일을 처음 겪기에 방송의 위력에 놀랐다며 방송사와 제게 감사를 연실했습니다.

앞섰던 네팔 선교사를 위한 방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1만원, 2만원, 많아야 10만원을 드렸지만 생면부지의 고아들을 위해, 시간을 통했던 자신을 기증한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이야 말로 믿음으로 살고 세월을 아끼며 자신이 청지기임을 아는 지혜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이런 일에 적극적 입니다.

금번 포항지진 같은 불우 이웃돕기에 큰 성금이나 몸으로 봉사하곤 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는 일이라서 그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면서 안 하면은 그들보다 못한 신앙이 됩니다.

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럼에도 모르겠거든 “그 다음은? ”이란 말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옛 로마에서의 일이랍니다.

한 가난한 청년이 부자 노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노인은 흔쾌히 응락했답니다.

그러면서 노인은 그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 물었답니다.

학생과 노인의 대화가 지금도 이태리 로마의 우르반 대학교 강당에 새겨져 있답니다.

“이 돈으로 학업을 마치려 합니다.” 잘하는군,, 그 다음에는?

“열심히 일해 돈을 벌겠습니다.” 훌륭하군,,그 다음에는?

“예쁜 여성을 만나 결혼하겠습니다.” 멋지군,,그 다음에는?

“ 음,,나이를 먹으면 늙겠지요” 그렇겠군,, 그 다음에는?

“ 결국.. 죽겠지요?” 그렇지,, 그 다음에는?

 

3) 계수

벌써 구주성탄 캐롤이 울리는 계절입니다.

머지않아 달력이 한 장 남고,, 한 주 남고,,마침내 올해의 마지막 한 날이 남을 것입니다.

이런 구별이 우리에게 왜 주어졌을까요?

왜 하나님은 해와 달로 절기와 시간의 구분을 주셨을까요?

나무도 나이테가 있고 피조개도 나이테가 있고,, 대나무도 마디가 있고 왜 이런 구별을 하도록 하셨을까요?

나이가 많으면 꼰대다 하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인가요?

계수하라 하심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더니, 돋보기를 쓰더니, 한 쪽 귀가 먹더니, 추위를 타더니 어깨가 아프더니,,

일종의 나이테이고 마디입니다.

이만큼 살았으니 앞으로는 기운이 없을 것이며 그 후 기억이 오락가락 할 테고 마침내 원욕이 그치고 메뚜기가 짐이 된다

를 의미하니 자신의 남은 날을 계수하기 딱 좋은 때입니다.

 

찬바람이 부니 겨울 준비한다며 김장과 난방기와 두터운 옷을 장만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남은 날, 그 마지막은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수해야 합니다.

나이는 숫자만이 아닙니다.

억지 부리지 말고 숫자가 많거든 남은 날이 작다는 상징으로 받아 들여 어떻게든 살 생각 보다는 잘 죽을 일을 생각하고 준

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내일이 궁금한가요? 오늘을 보면 됩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늘 새해아침이면 감격으로 맞이했던 시작이 아쉬움과 후회로 맺는 마지막 날이 되곤 합니다. 이러기를 반복으로 연속된다

면 우리의 남은 세월도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대속하여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어린양으로 새 생명주셨으니 이제 성도는 성령을 따라 새 성향과 새

습관을 작동해야 합니다.

정녕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았다면 시간에 대해서도 온전한 관리와 효과적 선용을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는 한 바퀴 돌고자 하며 태양을 중심으로 또 크게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거나 탔던 그 무엇보다도 더 빠르게 종착역으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 시작의 감격과 끝맺음의 감격이 일치돼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 으뜸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청년들은 젊었을 때 창조주하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버금지혜는 내 날을 아는 지혜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