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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천사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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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2-26 02:26 조회 55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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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노래에는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빼앗깁니다.

TV에서 가수가 노래하는데 종종 감동받아 우는 관객을 비추곤 합니다.

그때면 “ 가수가 짧은 노래 한곡으로도 저런 감동을 주는데 목사의 설교는 어떤가?”하며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백성들은 합창을 아니 국민합창을 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습하지 않았기에, 전문성이 없는 아마추어기에 듣기에는 난감했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극동방송사는 매년 늦가을이면 찬양제를 합니다.

그 피날레로 출연교회 전체 찬양단원들이 메시야를 합창합니다.

아주 웅장합니다.

 

1) 천군천사들의 합창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군천사들의 합창보다 못할 것입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이 합창의 모양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천군은 허다했고 천사는 좀 적었던 것 같고 악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양념 맛 보다는 담백한 맛을 낸 것처럼,

가수의 노래가 요란한 퍼포먼스 보다 기타나 피아노에만 맞춘 것처럼,

천군천사들의 단순하며 음성으로만 한 합창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을 알리는 지휘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홀연히”

 

그 찬송의 내용은 지금도 기록되어있는 그대로입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찬송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어떤 영광이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독재국가일수록 모든 충성과 영광은 독재자에게만 돌립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국가이기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악한 독재자가 아닙니다.

자비의 하나님이기에 감사함으로 충성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 찬미, 찬양은 제목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올리는 곡들입니다.

사람과 삶을 노래한 노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예배음악이고 성가이기도 합니다.

부흥의 시대에는 성가가 많았습니다.

설교가 힘 있고 설교단이 중앙에 있었습니다.

찬양단은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숨어서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쇠퇴의 시대에는 찬양은 줄어들고 설교는 맥없고 옆으로 밀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회중을 의식한 보이는 예배나 설교 외에 다른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형식이고 절차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떠났음을 보여줍니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썪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썪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찬양은 기교나 입술보다는 마음이고 마음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찬양을 부를 때 가사 하나 하나를 음미해 부르십시오.

감동은 배로 임할 것입니다.

 

2) 땅에서는

눅2:14)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보편적 구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듣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반으로 주는 구원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진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이 “땅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 아니라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했습니다.

눅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주의 백성”, “자기 백성” 제한적 아닌가요?

 

“평화로다” 구원과 영생의 확증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하나님과 평화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하기 위해서는 불화된 죄책이 사라져야하는데 사람으로서는,

그 불화, 죄책을 없이하지 못합니다.

평화의 최고는 무엇인가요? 안식입니다.

 

한일관계가 여전히 불편합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한일관계는 세월의 약발이 듣질 않습니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직 없기에 우리도 그들을 용서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정의 골은 패여 한일전은 축구든 야구든 꼭 이겨야 할 결사항전이 됩니다.

일본이 사과할까요? 그들은 벌써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과는 피해자가 될 때까지 해야 하는데 그들은 도리어 성을 냅니다.

평화를 바라지만 아직 요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금번 평창올림픽에도 불참할 듯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화목인 죄책을 자신이 제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고 죄 사함의 어린양으로 지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의 삯이고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죄의 저주의 삯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는 평화와 나음을 입는 것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평화는 어떤 평화든 거저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평화는 이처럼 엄청난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저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

와 젖을 사라

이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가 주의 백성이고 평화를 얻는 자입니다.

 

성도는 이 거저주시는 평화의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할 사명자들입니다.

변호인보다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사도행전의 제자들이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 중 2위가 김정은이랍니다.

한마디로 이 존재를 모르는 세계인은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떨까요? 탄생하신지 2000년이 지났건만,

 

3) 땅에서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천사가 처음 전했습니다.

눅2:10~11)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한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러나 이 천군천사들은 곧 떠나 하늘로 올랐습니다.

이제는 찬양과 합창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평화를 얻은 우리들의 몫인 것입니다.

 

천군천사들의 합창은 우리들의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목사가 전할 내용이고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할 전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한 권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를 찾느냐고 고생했답니다. 그러면서 통화가 되니 울먹였습니다.

이 권사님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갓난 아들만 들쳐 업고 집나온 과거가 있습니다.

그 아들을 위해서 수고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허망하여 죽기를 바랄 때 자신의 집 베란다에 앉아 있는데 우리 교회당에 십자가가 올라가는 게 보이더랍니

다.

문득 마음에 들기를 저기에 가면 살겠구나 싶어 찾아오신 분입니다.

온 식구 가 믿었고 권사가 되고 아들은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백성을 찾으십니다.

 

결론) 하나님은 지금도 찾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들의 합창은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합창과 화답되어야 합니다.

찬양도 화답이지만 눌 자리 없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전도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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