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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1-10 08:24 조회 3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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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한 유아사망사건이 세상을 슬프게 했습니다.

정인이라는 16개월된 유아를 입양모가 학대해서 죽게 한 사건입니다.

그 아이를 인터넷사진으로 보았을 때 온통 검은 몸이었는데,,

전문가들은 오랜 학대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 입양모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파장이 컸습니다.

이런 입양모 믿음의 질이 한국교회전체 믿음의 격을 실추시키고도 남았습니다.

 

1) 스타일과 디테일

무엇이든 좋을수록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의 특징은,, 스타일은 같아도 디테일하지 못한 점입니다.

얼마나 디테일하냐가 진짜와 가짜의 시금석이 됩니다.

이승만대통령시절에는 가짜 대통령아들이 설쳤었습니다.

요즘은 가짜 해외주둔 미군들이 SNS로 결혼을 빌미로 사기를 친답니다.

또 보이스피싱이,,

이 가짜명품 가방이나 의류를 보셨나요? 바느질, 부품하나도 같습니다.

그런데 속을 보면 역시 조금 다릅니다.

가짜달러를 보셨나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 작은 차이를 확실히 아는 이들이 고수이고 전문가입니다.

 

기독교신앙도 똑같습니다.

겉은 물론 속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품과 생활로서 겪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믿음과 성도 감별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습니다.

그가 가짜신앙 감별법을 강의하고 했는데 오늘은 디도에게 했습니다.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왜요? 교회지도자를 세우는데 참고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참기름 감별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참깨감별부터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참깨가 좋은 참기름을 만들고 마침내 맛과 건강이 좋은 음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좋은 신앙과 인품이 무엇인가요?

딛1:8~9)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여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거듭남의 사람에게는 박애가 있습니다.

박애가 무엇인가요?

자비, 양선, 친절, 긍휼, 인애, 공감 등이 담겨 있는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주머니입니다.

나아가 예수사랑이 충만하면 동물도 학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을,, 아기를,, 학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랬다는 것은 엘리트며,, 외국어를 잘했다는 능력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2) 신념과 신앙

세상에 무서운 것이 신념입니다.

그 중 종교적 신념은 아주 무섭습니다.

철저히 위장된 가짜이기에 언제나 피해가 큽니다.

사도바울시대에도 이런 문제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딛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반면 참 신앙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서,, 개인부터,,가정을,,마침내 사회도 살립니다.

주님이 오신목적에 부합됩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굳이 유럽까지 갈 것 없이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역할이 증명합니다.

기독교의 박애와 희생으로 교육과 정신을 개조해주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인구가 15만도 안 되는 싯점에서 독립운동선언문에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의 기독교인이 있음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믿음의 숫자는 많아졌으나 질이 떨어져 격은 형편없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아니라 신념화된 탓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신뢰를 주고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에 유감입니다.

딛1:10)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특히 할레파가 그러하니,, 했는데 할례파는 어떤 신앙인 인가요?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

리는 자니라

할례파,,이들도 분명히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었기에 밥 먹을 때 기도하고 때 되면 예배당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이 아니라 신념인이었습니다.

우리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붙드는 자가 아니라 할례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할례를 믿었습니다.

 

할례는 외적 신앙표시입니다.

내용보다는 겉을 중요시했으니 알만하지 않나요?

디테일이 아닌 스타일에 집착했으니 가짜답습니다.

 

3) 특히 할례파 중에,

생명에는 성향이 있고 경향이 있습니다.

할례파들은 겉을 아주 주요하게 여기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또 이들은 선지자가 지적한대로의 경향이 있었습니다.

죄에 오염된 그대로였습니다.

딛1;12~13)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더욱이 이 증언이 참된 것이,, 이럼이 실수가 아니기에 불행이고 문제입니다

여기서 회개했으면,, 새 성향을 가졌어야 거듭남이고,, 그리스도인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신념이 아닌,, 신앙이라면 무엇을 중요시 여기나요? 어떤 성향이 있나요?

겉인가요? 속인가요?

무엇을 보나요? 질문이 질문자의 경험과 지식을 반영한다면 답 역시 대답자를 반영합니다.

우리의 신앙본질이 무엇인가요?

내 영혼의 구원이어야 하며 거룩한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일에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삼갈 것이 있는데,,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고,, 느껴도 마음에 담아지지 않는 사안

들입니다.

딛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함이라

 

이를 현대적 표현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육체와 세상의 관심사는 줄이고,, 불신의 사람들과 관계도 청산하는,, 경건에 힘쓰라는 교훈이 됩니다.

 

놀랍게도 그리스도인의 성향과 경향은 언제나 신령한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집중하기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곤 합니다.

사도바울자신이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랑은 표면적증표인 할례나 가문이나 전통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그도 할례파와 같은 성향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 새로워졌습니다.

과거에 붙잡고 사랑했던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며 이제는 자기 몸에 고난이나 핍박을 감수하며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도망 나온 노예를 한 인격자로 대우하기도 했었습니다.

겉이 아닌 영혼에 진정한 할례를 받아 할례파도 아닌 할례주의도 아닌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이들로 말미암아 숫자는 적었어도 기독교는 격이 높아졌습니다.

태양신숭배로 가득했던 로마가 식민지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스타일을 중요시 여겼던 신념이 아니라 디테일을 중요시 여겼던 소수의 신앙이 로마제국이 주를 믿는 큰 변화를 이룩한 것

입니다.

가짜와 진짜는 불 속에서 판가름 납니다.

신념은 고난과 박해에서 사라져도 꾸밈없는 신앙은 되레 담대하고 빛나기 때문입니다.

그 기록이 사도행전입니다.

여기에 후대는 꿈이 갖고 도전해야 합니다.

 

결론) 가짜 꽃에는 벌 나비가 꼬이질 않습니다.

꿀과 꽃가루라는 디테일이 없어서입니다.

인간적 신념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라면 주 믿는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할례파 같은 신념이나 종교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신앙목적부터,, 기도도 이기적이질 않고 복음적이며 이타적입니다.

삶의 모양도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려 합니다.

디테일,,성향을 살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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