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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 설교말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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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6-13 10:00 조회 3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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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별 달인들이 많습니다.

일종의 전문가들로써 직업적인 숙련이 그처럼 탁월한 달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붓 제조 전문가는 털 200그람 300그람의 무게를 정확이 감별해 냈고,

봉투접기 전문가는 눈감고도 접기는 물론 장수를 맞혔습니다.

그밖에 맛에,, 소리에 대해 절대적 감각의 소유자들이 많습니다.

 

1) 세례요한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증언자였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몰라도 예수님만은 확실히 알았기에 인류최초의 증언자였습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로다

좀 더 원어적으로는 “보라,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최초는 늘 부담스런 일입니다.

본 받을 것이 없기에 부담스럽고, 뒤따라오는 역사의 평가나 기록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공개적인 최초 증거자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알았고 믿은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믿으려하고 아님 “믿으라” 강요하곤 합니다.

이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믿기 위해서는 알아야합니다.

그냥 교회당에 와서 자연히 알아지고 믿어지는 데에는 세월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최소한도의 학습을 할려는 의지를 갖고 기초부터 알아간다면 튼튼해집니다.

기초 과정을 필하고 나아가 또 다른 과정으로,, 여기서 신앙은 자라고 건강한 믿음의 됩니다.

우리나라는 안보에 있어서 핵우산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미국의 보호아래 있다는 의미인데,, 튼튼한 우산은 지지대와 살대가 좋아야 하듯이,,

좋은 믿음은 지지대라는 기초와 살대라는 성도와 관계가 튼튼해야 합니다.

 

최근에 안 얘기인데 제 아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있답니다.

내가 목사인 것은 알고 결혼했기에 가난은 감수했답니다.

그런데 사이비나 이단이 아닌 바른 목사라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니 참 감사한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것만큼 행동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세계를 본 사람이 있고 세계화된 요즘에도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있습니다.

자동차와 와인과 커피에는 해박해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지식은 세상의 힘이 되지만 예수님지식은 세상을 초월한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순서상으로 먼저 알 것이 있고 나중 알 것이 있다면 예수님은 우선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2) 어린 양

“보라,,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를 주목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인데 또 다른 말로는 “예수그리스도” 라고,,예수가 메시야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대해 여러 가지 말로 웅변합니다.

성현,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랍비, 사상가,, 일종의 인문학적,,역사적 표현들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는 성도들조차도 “예수님의 정신을 믿는다.” “예수님의 삶을 본 받는다.” 하는데 그럴 듯해도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내용은 곧 하나님이 보내신,,

내 죄를 대속한 내 죄의 희생양으로 믿는 일입니다.

구약의 많은 양들이 죄인의 목숨 값으로 대신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죄에서 살고 싶어 양을 끌고 제사장에게 가면 제사장은 그의 죄를 양에게 전가한 후 대신 양을 희생시켰던 것입니

다.

이때의 양은 마치 일회용 같았으니 얼마나 많은 양들이 죽었을까요?

또 제사장들은 얼마나 수고했을까요? 말이 제사장이지 역할은 백정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앉는 의자가 없었고 희생 고기를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백성의 모든 죄를 한 번에 대속하는 양이 있었는데 유월절 어린 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이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른 후 400년 종살이해서 해방된 기념비적인 양이었습니다.

양이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했던 것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백성들은 유월절을 기념하며 실제적으로 오셔서 죄에서 해방시킬 메시야를 기다렸는데,,곧 예수님이십니

다.

사람들은 믿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예수님자신이 실제로 누누이 증거 하셨기에 아직은 유효한 약속입니다.

요3:12~16)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

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 일은, 예수님을 가장 예수님 되게 하는 일은,

세례요한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일은, 그리고 성경대로 예수님을 잘 믿는 일은,,역사나 주변의 말이

아닌 곧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믿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어야 하기에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시고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이 일은 신비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활동으로 이룩하신 것입니다.


3) 증언의 확실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던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확실성을 갖게 된 이유는 경험이나 문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증표였습니다.

요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

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우리 개인의 경험은 소중해도 주관적입니다.

이는 객관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흔히 지옥간증이 있어도 성경보다 사실화시키면 곤란합니다.

반면 객관적인 문헌이 있어도 주관되질 않습니다.

성경이 내 믿음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주관적인 경험도 객관화되고 객관화된 성경도 내 주관화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절대적인 것은 분별력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위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말세에는 마귀도 광명의 천사로 활동하기 때문인데,,

많은 사이비이단이 여기서 출발했었습니다.

이 분별력에 합당한 객관적 문헌인 성경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이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게 하고 깨닫게 하는 성령이 믿음의 주체가 됩니다.

누구든지 믿음의 확실성을 지녀야 비로서 신앙이 출발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그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그들은 “성령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합니다.” 했기에 사도는 그들에게 기도하여 성령이 임하도록 했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바울 자신도 겪었던 일이었습니다,

 

믿음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양으로 믿지 못합니다.

이 성령은 믿음으로,, 또 믿음은 성경을 들음으로,,서로 보완적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믿나요?

이 분을 통해서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화목했음을 감사하나요?

나아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랑하고 싶어야 합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여 그 삶의 성취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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