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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 설교말씀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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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6-20 11:03 조회 38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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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은 사연이 있습니다.

한 주간동안 부부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부모자식 간에,,

또는 친구 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하나님과는? 하나님과의 사연을 새 간증이요 찬송이라고 합니다.

 

1) 간증

지난주간에는 극동방송사 전파선교사생방송모집이 있었습니다.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사연을 보내온 것이 소개되었는데,,

기업하기가 너무 힘들어 부도나기 직전이었답니다.

감원을 생각했지만 결국 망하는데,,그냥 함께하기로 했답니다.

대신 이들에게 전도를 못한 일이 떠올라서 망할 때 망하더라도 전체 직원들의 이름으로 50

명 전파선교사를 가입했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신기하게 막혔던 대출이 풀렸고 더 신기한 일이 생겨 아무런 감원 없이 잘살

고 있다는 간증인 것입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기특한지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 불면 흔히 몸을 구부리고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살 궁리를 내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헌금부터 줄이고 또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이 아닌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이

라고 치부해서 아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입니다.

 

다일공동체는 청량리노숙인 밥퍼사역으로 시작되었지만 진료비 없는 천사병원과 해외에도

밥퍼 사역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어려운데 여전합니다.

주님이 물댄 동산이고 샘이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신 이유입니다.

제게도 약품을 기증하니 중국으로 보내면 두만강 건너로 전달될 것입니다.

 

흔히 좋은 스토리텔링에 박수를 보내고 감동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고생이고 위험을 무릅쓴 사연입니다.

박수가 크고 감동의 여운이 짙은 스토리텔링을 만들려면 책이 아닌 삶이여야 합니다.

 

2)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창조하십니다.

지금도 살피시고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41:18~19)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자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생명을 심으시고 번성케 하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이고 통치입니다.

이런 일은 조금만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과 믿음만 있으면 알 수 있어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

는 일입니다.

사41: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

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죽었거나 아님 스스로 교만하여 결핍을 모르는 경우입니다,.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의 결핍을 통해서 남을 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절에 인정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반대로 결핍을 모르면 감사도 없고 이웃도 없고 남부러움과 시기질투만 넘치게 됩니다.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그렇다면 이 무리가 어떤 무리인가요?

사41: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

할 것이라

 

결국 이들은 이 엄청난 결핍을 통해,,“갈증으로 혀가 마를 때에” 하나님을 뵙는 은혜를 누린

하나님백성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혀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셔야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입니다.

아시나요? 세상의 많은 문제는 사람이 문제라서 발생한 것입니다.

혀가 마를 지경이 되어야 그나마 하나님께 돌아와 진심으로 부르짖는 부류가 있을 뿐 대부분

은 혀 깨물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계16:10~11) ~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우리의 교만이 이렇습니다.

되레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지켜보시며 때가 되도록 기다리시기에 괴로우신 줄 믿어야 합

니다.

성도란 교만이 벗겨지고 죄악에서 돌이킨 참 화목을 누리고 구세주의 보혈로 씻김 받은 사람

입니다.

여기 여러분도 있어야 합니다.

 

3)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야곱은 많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이 관계에 속에서 불러주신 이름들입니다.

사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름에는 소원이 있기도 하고 생김이나 혹은 관계가 들어있습니다.

여성의 이름은 여성스럽게 하여 꽃 화자나 아름다울 미자가 남자는 강할 것을 생각하여 쇠

철자를,,또 오래 살라고 천하게 이름을 지어 개똥이 쇠똥이도 있었고 성도들은 주님이나 하

나님을 인용하기도 하고 성경인물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모든 성도의 이름은 예수님 안에서 같습니다.

나의 종, 이스라엘아, 야곱아, 나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거룩한 신분입니다.

세상이 불러주는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에 무한 긍지와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므로 내가 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옛날성경에는 “지렁이”라고 했었습니다.

솔직한 우리들의 정체입니다.

버러지가 어떤가요? 약한 존재이고 땅의 존재이고, 추하고 더럽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를 아시는데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착각 속에 살고 있기를 “나 잘났다”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결론) 언제나 “나 잘났다” 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에 임합니다.

이는 비하가 아니라 사실이고 진실입니다.

사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

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하나님을 뵈기 원하거든 스스로 버러지가 되어야 하고,,

이 낮은 자리에서 감추어진 내 죄를 보고 주님의 십자가로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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