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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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같은 사람한테 옛 이름과 새 이름을 함께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야곱아”는 옛 이름인데 “버러지 같은 너”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연인 상태의 옛사람입니다.
“이스라엘아” 는 어떨까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언약의 이름으로 주 안의 새 사람입니다.
이 이름은 지금도 자랑스레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옛 이름과 새 이름을 함께 불렀다는 것은 옛날과 지금을 생각하며 비교하라는 뜻입니다.
1) 하나님
“야곱아” 또 “이스라엘아” 를 부르신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라면서 계시하셨는데 사람이라는 생물의 창조자셨습니다.
야곱이 태어남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계셨습니다.
이 덕에 복중에서부터 세포분열과 순번을 작정하셨기에 이삭의 아들과 에서의 동생으로 출
생했었습니다.
젊은 야곱은 이런 일에 하나님개입을 실감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하나님을 인정해도 가슴으로는 부정하여,,
하나님 인정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가 속이는 자가 된 것이었고,,잘 속였으며,, 속물로 살았습니다.
버러지로 말하면 굼벵이 시절입니다.
만사에 살려고 했던 그러나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육신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에서를 두려워하며 떨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먼데의 하나님이 가깝게, 남의 구세주가 자신의 구세주로 들어오셨습니다,
세상은 달라보였고 자신도 달라져 삶의 목적도 목표도 스타일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통해서 새 성향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으니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의 하
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주님을 만난 이후의 거룩한 신분의 이름입니다.
이런 일이 야곱은 물론 제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일반으로 미치는 일이 됩니다.
타종교에서는 세례명이나 법명이라 해서 의미를 부여하지만 예수 믿는 성도는 성령으로 인
침을 받습니다.
2) 지금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잘 듣지 못해 하나님이 답답해하십니다.
이는 듣고자하는 집중이 없어서입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
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그러나 들려질 때가 있는데 곤고하고 슬픈,,하나님을 바라는 그 때입니다.
기록된 성경이 내게 향하신 실제적 말씀이 되는 때인데,,
그때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어 하나님께 엎드려 빌곤 합니다.
“하나님, 지금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에 참 죄송했었습니다.
그동안의 하나님 기다리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데 왜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셨던가?
그 이유는 오직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는 들을 수 있는 내게 들려주시는,, 꼭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정녕 물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가 있지만 물과 불이 어쩌지 못한다.
*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일반적으로 신이라는 존재들은 섬김을 받지,,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하는데,, 그들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보여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여기에 무한 긍지와 신뢰를 가져야합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무엇보다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에는 두려워할 일이 많고,,
두렵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역설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너는 내 것이라” 는 특별한 하나님사랑과 보호하심을 입는 존재임을 나타내셨으니
담대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한다면 자신은 나약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믿음은 언제나 든든함입니다.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이길 자 없는,,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든든합니다.
물과 불이 창궐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일제 시대에 박관주 장로님과 안이숙 여선생님이 하나님의 감동의 지시를 받고 일본 동경으
로 향했습니다.
평양에서 동경까지 검문검색이 많은데 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국회의사당에서 국회가 열리던 날 “ 일본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는 전단지
를 뿌렸습니다,.
곧 잡혔지만 그들은 일본경찰에게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들고 온 자들이다,.
나를 묶어 장작위에 세우고 일본이 섬기는 태양신 섬기는 자도 그렇게 해서 불을 붙여라 사
는 자가 하나님을 믿는 자다” 일본은 할 수 없었습니다.
담대한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감옥에 갔으나 곧 일본이 망함으로 다시 살았고 여교사는 목사 사모가되어 미국에서
산다는 지시대로 그처럼 살았습니다.
사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네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
가 막으리요
결론) 믿음의 결은 언제나 같습니다.
성도는 이스라엘이어야 합니다.
엡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
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거룩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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