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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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예배 후 혼자서 잠깐 기도를 했었습니다.
예배 전과 후의 습관적 기도였는데 늘 그랬듯이 기도만큼의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래서 한 글을 썼었습니다.
“추억은 과거로, 꿈은 미래로 인도한다지만 현재는 믿음이 안착 시킨다.
현재가 두려운가? 괴로운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이름을 불러 보라
현재가 어떤지 알 수 있으려니,,주의 이름을 부르면 상황변화 보다 죄책으로 두렵고 괴로운 마음에 기쁨부터 솟을 테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런 일에 산증인입니다.
1) 두려운 시대
현대가 어떤가요?
변화는 혁명처럼 급변하고 예측도 불가능한 시대라서 불안과 두려움은 갑절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여러 분야에서 아직 안전하지 못합니다.
교통신호 대기에 멈추었어도 불안하고, 치안도, 몰카도, 정치도, 건물도,,안보도 불안하기 그지없는데 코로나변종은 확산
위기에 있습니다.
이쯤되면 너나할 것 없이 의지할 바를 찾는데 이 역시도 어렵습니다.
희락은 그치고,,어떤가요?
TV에서 본 케냐는 야생동물이 사는 국립공원만 제주도의 10배가 되는 넓은 국가였고,,
생활수준은 아프리카이니 그만할 뿐이었는데 국민성은 밝고 명랑했습니다.
그들의 인사는 “안녕하세요? 우리 케냐는 평안하답니다, 여러분도 안녕하시지요? 다 좋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
에게나 들을 수 있는 국민적 인사말이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철없는 인사말 같지만 실상은 그랬기에 밝고 명랑하게 살게 된 듯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진지하고 우울합니다.
국민소득 3만불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유모와 위트가 없어 삭막하기도 합니다.
동네마켓 주인장에게 “내가 무얼 사러온 것 같으냐” 했더니 말귀를 못알아 들어 민망했었습니다,
빽빽한 글 보다는 여백이 여유를 주듯이 팍팍한 삶에는 사나움 보다는 밝고 명랑함이 필요합니다.
곧 정신세계인데 신앙자태가 됩니다.
내게 평강이 있으면 가족에게도 전달될 것이며 이웃에게도 미칠 것입니다. 그렇지요?
산꼭대기는 바람 불고 바닷가에는 파도가 일렁이듯이 우리네 삶에는 불안과 두려운 일이 항시 넘칩니다.
문제는 어떻게 없이 하느냐 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 것이냐 로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추운 곳의 집들은 벽이 두껍고, 비 많이 오는 곳의 집들은 지붕이 가파르고, 광야의 집들은 문이 작은 이치입니다.
2) 의인의 처신
성경의 많은 믿음의 영웅들은 우리와 같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죽었고,, 사는 동안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를 봅시다. 스승의 영감을 갑절로 계승했어도 결국 병들어 죽어야 했고,
또 하나님을 대면했던 모세도 죽기를 구할 만큼 문제가 많아 힘들어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달랐던 점은 그들이 사는 날 동안,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았기에 탁월한 믿음의 영웅이 되었
습니다.
그런 삶의 모습을 주님이 웅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 밤새워 기도하셨으니 곧 하나님께 피한 것입니다.
눅22:41~44)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우리는 아브라함이 본처가 죽으니 후처를 들였더라,,
솔로몬은 금 그릇과 금 방패를 썼다더라 하면서 이런 면을 본 받으려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주님께서 밤새워 기도하시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하나님께 의지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분인가요? 천사들을 군대만큼 동원하실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의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기도하셨는데 이는 마지막 시간까지 제자들을 교육하셨고 아버지하나님께 자신을 신탁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기도가 늘 허약한 것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 내 뜻대로 구함과,, 간절히 구하지 아니한 이유입니다.
기도에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인가요? 시간인가요? 장소인가요? 믿음이 아닌 신념입니다.
신념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반면 믿음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말씀을 인용해야지 “내 느낌은” 믿음이 안 됩니다.
또 마음의 경영으로 내가 앞장서서 내 중심적으로,, 내 세계관 안에서 구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산 팔게 해주세요,” 혹은 “오늘 짚신 팔게 해주세요,”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좋아요,”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덕에 내가 살아요, 이젠 나도 주님을 사랑해요. 무얼 드릴까요?”
의인의 처신은 단순하고 실질적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일,, 요란하지 않습니다.
3) 견고한 망대
어릴 때 수원성에서 놀곤 했었습니다.
정조 때 세운 성인데 많이 망가졌었기에 노래도 있었습니다.
“동문은 도망가고, 북문은 부서지고,,,”
견고한 망대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러나 세월과 함께 무너졌거나 아님 무너지고 있습니다.
독재자일수록 견고한 망대처럼 행세합니다.
혼자서 국가를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하다가 국가도 무너트리곤 합니다.
사람은 견고한 망대가 될 수 없고,,불의한 재물도 자고새가 낳은 알 같아서 중년에 떠납니다.
다 허세작열인데 믿지 말아야 합니다.
6.25때 한국전에 참전한 챨스 B 슐리쳐 상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천강 남쪽에서 후퇴하다가 전우들과 함께 인민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소련제 기관단총을 자신들에 겨누고 쏠려고 하는 인민군들에게서 걷잡을 수없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미국에서 16000키로 떨어진 강한 바람 부는 고지에서 15명의 전우들과 죽음과 마주쳤던 것입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군
복 상의에 넣고 다니던 작은 성경을 꺼내 시편 23편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기대치 않았던 일이 생겼습니다.
중공군으로 보이는 장교 한 명이 달려와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눈덮힌 보크싸이트광산포로수용소에 수용됐고 또 두려움과 추위, 고통과 배고픔 중에도
그는 살아 돌아가겠다며 의지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훗날 여러 포로 중 슐리쳐만이 살아 미국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반적으로 운이 좋아서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좋은 운이라는게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면역력이 높았던 이유였습니다.
믿음은 성경을 읽음과 기도하기로 높아집니다.
사람들은 핑계가 많습니다.
바쁘면 바쁘다고,, 경기가 나쁘면 일이 안돼서,, 기도도 성경도 못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음 없어서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밥맛이 돌고,, 밥맛이 없다는 것은 건강을 잃었다는 반증입니다.
아프다가도 식욕이 당기면 회복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습니다.
기도와 성경은 영적인 호흡이고 식욕입니다.
영적건강의 체크가 됩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양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성경 5장 읽고,, 기도는 10분 이상하리라는 계획에서 실행하면서 늘려야 합니다.
결론) 최근에 많이 읽히는 “죽음의 수용소” 책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크린이 아무런 것도 결정할 수 없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체험기입니다.
그가 깨달은 중요가치가 3개 나옵니다.
“창조적 가치“는 늘 무언가 만들거나 찾고, ”경험적 가치“는 배우거나 자신의 경험을 이웃과 나누고자 하고, ”태도적 가
치”는 주어진 상황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일을 해결해 나갑니다.
대체로 이런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살아나왔다는데,,성도는 어때야 할까요?
태도적 가치인데,,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여호와께 피함이 능사여서 입니다.
이들은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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