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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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분께,,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데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낸 적이 있나요?
요즘은 영상이 발달하였기에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없어지다 보니,,
글을 쓰고 이해하는 능력은 물론 글씨도 못 쓰는 시대가 되었으니 유감입니다.
모든 것이 편리위주로 대체 가능했기에 굳이 손으로 무얼 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청소는 청소기가,, 닦는 걸레는 1회용으로,, 음식은 배달로,, 사랑 고백이나 해고 통보도 대타로,, 그러다보니 감성이 메말
라졌고 사람 사이는 멀어졌습니다.
1) 아버지여,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음은 하늘의 아버지께 편지 쓰심이었고 교제하심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셔도 될 분이 친히 하셨음은 가까운 제자들부터 닮으라 하심이었고,
또 훗날의 성도된 우리가 그 기도의 유익을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의 마지막기도인 만큼 신학적으로는 “대제사장적인 기도” 라 합니다.
이 기도는 큰 중보적인 임무가 있어 주님자신보다는 훗날의 성도를 위함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 드린 편지가 된 것은 아버지를 무려 36번이나 구함이 있어서입니다.
왜 아버지를 찾았나요? 그만큼 갈망해서입니다.
독립적인 존재는 누구든지 잘 찾지를 않고 또 죽은 자는 그리워할지언정 찾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의존적인 존재는 찾으며 하나님아버지가 살아 계셨기에 부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중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하면 그 이름을 불러 아뢰십시오.
오직 조건은 그분께 나아가 찾거나 구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곁의 사람이 찾으면 처음에는 좋다가도 자꾸 찾으면 싫어한다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고 찾으셨고 마침내 찾아오셨던 것이며 지금도 성령으로 계십니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이 편지에는 아버지를 구함과 성도된 우리의 하나 됨과 영생을 구함은 있어도 주님 자신의 죽지 않고 살 바를 구함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버지를 믿었기에 다가올 영광을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요17:4~5)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사람을 나타내는 성향, 기품, 태도는 어디서 나오나요?
후천적으로 개량되고 개선도 된다지만 결정적일 때는 되돌아가곤 합니다.
진짜는 본성인데 동물이나 식물도 사람의 본성처럼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향과 태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습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또한 거듭난 성도는 주님과 성향이 같기에 아버지도 똑같음을 믿어야 합니다.
2) 믿음의 태도
성도는 주님과 같은 생명이기에 곤혹스럽고,, 죽는 순간에도 주님 같습니다.
일상으론 온유와 겸손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에게는 인자합니다.
무엇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여 살기만을 구하고 죽음은 기피하거나 두려워하질 않기에 과연 그렇습니다.
특히 성령보혜사가 내주하셔서 확증하시니 피보다 더 확실하여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한 성도의 최근 간증입니다.
새벽까지 잠을 못 잤기에 기도하면서 남편의 손을 붙잡고도 기도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출근길의 남편 차가 고속도로 입구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났지만 타이어교체만 했을 뿐 이상 없었답니다.
믿음의 태도는 중요합니다.
믿음의 진위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태도,, 혹은 지도자의 태도,, 다 격이 있고 있어야 하는데 현대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구한말,,고종은 24세의 민영익을 앞세워 약관의 양반청년들로 구성된 미국방문사절단을 파견했었습니다.
유길준은 전등을 처음 보고 “마귀의 등불이라” 고 놀랐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움직이자 지진으로 알고 비명을 지르고,,또
일행은 대통령에게 절은 안 하기로 했지만 딱히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가 막상 대통령을 보는 순간 엎드려 절을 하는
등의 헤프닝도 있었지만 그들의 늠름하고 기품 있는 태도가 조선의 품격을 올려주었습니다.
마침 열차를 타고 가는데 한 부자장로가 이들을 보고는 차림이 괴상하지만 기상이나 기품이 범상치 않은 모습에서 조선을
신뢰했습니다.
이 장로님교회에는 일본감리교선교부에서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도록 요청하는 편지가 있던 터라 이들에게서 감동을 받은
장로님은 개인적으로 선교사를 보내는 헌금을 했었기에 훗날 감리교선교사가 조선에 올 수 있었습니다,
태도,, 참 중요합니다.
옛날 목사님들은 가난과 핍박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주의 사자’ 라는 권위를 지녔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삯군’이 아니길 바랐기에 연금도 전세거리도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근로자 최저 임금 9160원,, 목회자들은 받고 있나“ 를 묻고 있기에 ‘교역자’ 가 되어갑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나 선민의식은 우월의식이나 특권의식이 아닙니다.
어떤 하늘의 혜택 보다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그 으뜸은 거룩인데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부탁 받으셨던 일입니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7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의무는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3) 주님의 간절함
주님은 끝 부분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24절) 아버지여” 또 “25절) 의로우신 아버지여”
피 끓는 호소 아닌가요? 누가 나를 위해서 이처럼 간절했나요?
위의 기도에는 주님이 오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을 아들로 보내셨던 모든 목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24~25절의 의미로써 하나님을 나타내는,,
“24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절)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하나님을 아는,,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곧 영생입니다.
그리고 26절은 마지막 완성인 천국생활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나와의 연합..
“~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라”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법이 있다면 살아볼 수 있을까요?
영어 알파벳을 시작하는 A는 1점, B는 2점 C는 3점이라며 Z까지 점수를 각각 매겨 본다면,,
러브(LOVE) 54점 머니(MONEY) 72점 열심히 일한다는 하드 워크(HARD WORK)는 98점이,
그런데 100점이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태도인 “아티티우데,,ATTITUDE" 입니다.
좋은 자세 곧 바른 마음 태도는 주와 연합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건강을 잃거나 아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간 산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산나물 먹고 스트레스를 없이 산 덕인 줄 믿습니다.
오죽하면 TV에서도 이런 방송을 할까요?
결론) 그렇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떨까요?
죄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으로 자세부터가 주님이 느껴져서 주변이 알아봅니다.
두 부류가 있는데 나를 찾아보십시오.
시52:7~9)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
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므로 주의 성도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
을 사모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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