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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두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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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8-08 08:45 조회 3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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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에 자주 하는 일이 손 씻기입니다.

이런 일은 옛날 피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손만이 아닌 발도 씻어야했었습니다.

그 물 담은 큰 대야를 물두멍,, 놋으로 만들어서 놋 물두멍입니다.

 

1) 위치와 놋

성막의 모든 기구는 저마다의 위치와 모양과 재질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계시로 이루었고

실제 원본은 하늘의 성전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지상사역과 성품을 의미하며 예배요소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놋 물두멍은 거룩한 성소의 제단을 향하여 들어가기 전의 뜰에 놓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단에 비해 위치는 뒤편이지만 기능은 제단 보다 앞섰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자신의 몸부터 깨끗이 하라는 하나님의 주문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원어자체도 물두멍 즉 “씻김”입니다.

 

신께 나아가는 자들은 언제나 공통됨이 있습니다.

부정 타지 않으려고 깨끗이 씻곤 합니다.

목욕재계 하거나 성수로 뿌리거나 아님 이슬람은 여전히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여기에 비하며 성도는 참 자유 합니다.

그러나 이 자유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작은 신이 아니요,

신중에 신이요, 참 신이시오, 큰 신이시기에 높이 받들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 방법이 옛날에는 물두멍 물로 씻고 희생양의 피를 갖고 나아갔다면

이제는 물대신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피 대신 그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렇습니다.

목욕한 사람에게는 다시 목욕할 일 보다는 손발을 씻음 같이 죄사함 받아 완전해진 성도는 날마다 내 죄를 자백하므로 인

간적 흠에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이 물두멍이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무는 인성, 금은 신성, 은은 순결성을 상징한다면 놋은 불을 견디는 견고성을 의미합니다.

불로 맹렬히 태우는 곳에는 놋이 있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는 곳에도 놋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범죄하여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시하시기를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

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실제 바라보았을 때 죽게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이는 놋이나 지팡이가 영험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서였습니다.

그 놋뱀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말씀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며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여기서 사는 길은 하나님약속대로 예수님을 믿는 일이요,

믿음 그 후로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일입니다.

 

2) 착각

현대의 성도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퍼렇게 살아계시는데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느낌이고 세상풍조를 따른 불신앙적 모습입니다.

또 다른 착각은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거나 잊고 계실 거라는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나를 사랑하심으로 오래 참으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임계점에 다다르면 그 하나님진노 앞에서 우리는,,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뼈도 못추리게 됨을 두렵게 인지해야 합니다.

 

다시 상기하십시오,

나에게만 특별하지 않으시고 죄악에 대해서 그냥 잊거나 용서하실 수 없으신 분입니다.

내 죄를 자백할 때 사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이미 사함과 용서함을 받았다면 이제는 성결하기 위하여 자주자주 손발을 씻는 심정으로 성찰하며 자백하곤 돌아서야합니

다.

 

오늘 이 놋 두멍을 만드는데 여인들이 놋 거울로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출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

들었더라

여인들이 거울을 얼마나 자주 볼까요? 왜 자주 볼까요?

살면서 사람들이 상대를 보아도 실제는 나를 제일 많이 보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 것이 아니라 나의 심령을 살펴야 합니다.

안색이 아닌 마음의 좌소에 무엇이 있는지를 간검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신앙은 바로 이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큰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신앙이 아니라 골방에 들어가서도 가슴을 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언제나 의식해서입니다.

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누렸던 자태입니다.

이런 곳에 다툼이 있겠나요? 허세와 위선이 있겠나요?

 

모든 종교는 다 선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선이 없는 이유는 위선이라서 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선을 말해도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 빛을 받지 못하면 선지자와 제사장 노릇만 할 뿐입니다.

역할이지 인격과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도인가요? 예수님의 제자인가요? 그리스도인인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역할은 없어야 합니다.

역할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자원함으로,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성막 덮개는 해달의 가죽으로 해야 했고 금은보석도. 필요한데 어디서 나왔을까요?

돈 주고 사온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출25: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

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자원자들이 너무 많아 일을 못할 지경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마음을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이랬습니다.

유뮤상통하여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주의 은혜를 받으면 언제나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신념이나 정치적으로 이런 이상을 구현하면은 꼭 끝이 좋질 않습니다.

종교적사이비공동체가 여기에 속하고 정치적 이상주의 국가가 다 여기에 속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질보다 사람을,,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더 귀히 높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라면,, 그 뜻이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면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다.

성숙과 형편에 따라서는 목숨도,, 금은보석이 성막에 필요하다니 부자들은 반지귀걸이목걸이를 내놨을 것이고 회막에서

봉사하던 여인들은 놋 거울을 내 논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희생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거나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자유와 번영은 피와 땀을 먹고 자라며 교회의 발전과 부흥도 이런 믿음에서 자랍니다.

 

내게는 소중한 헌금이 입금됩니다.

요양원에 계시는 여전도사님이 매달 3만원을 보내오는데 기초연금 십일조 같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진달래 피던 약산의 영변이라며,,그만 두라고 했는데도 아니라며 보내옵니다.

또 유치원선생이라며 5만원을 보내다가 10만원을 보내옵니다.

신학 공부할 때 북한에 대한 마음을 받았다면서,,또 1만원을,,다 합치면 1년에 150만 원 정도이지만 이런 마음과 물질을

허투루 대할 수 없어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과 건강의 하나님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잘 관리하며 최대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관리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내 손에서 내게만 유용되기 보다는 좀 더 거룩하게 유용되도록 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청지기 자세가 필요합니다.

 

결론) 인천의 어느 큰 도로예정지는 반대의견에 묶여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분할해서 꽃밭으로 가꾸었더니 나비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그냥 나누면 쓰레기장이 되지만 성찰하고 자백하면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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