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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힘 > 설교말씀

두려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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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9-05 07:56 조회 3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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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개에게 호랑이가면을 씌우고 쉬고 있는 개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혼비백산하며 도망쳤습니다.

이 영상을 본 후 개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있으니 개 세상은 질서가 유지되겠구나 했었습니다.

 

1) 두려움

사람에게 두려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다움으로 상황과 대상 따라 적절하게 처신할 수 있는 일종의 방어체제가 됩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을 비굴함이나 나약함으로 오해하여 두려움을 무시하면 방어체제의 스윗치를 끄는 일이 되므로 사고가

생길 것입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과 상황이 적절했느냐 입니다.

 

흔히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하지 않는다.”하는데 맞습니다.

하룻강아지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태어 난지 하루와 아님 일년된,.,그러나 공통점은 “모른다.” 입니다.

태어 난지 하루된 강아지는 눈을 못 떴기에 보이는 것이 없고,

아님 일 년 된 강아지는 경험이 없어서 범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호랑이가면을 보고 혼비백산한 개들은 하룻강아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수록 두려움이 없고 무식할수록 용감한 것은 무지 때문입니다.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차에게 달려드는 초등학생들은 눈 못 뜬 하룻강아지이고,

노숙인 할머니에게 담배 사달라고 욕하고 넘어지게 했던 문제중학생들은 무지한 하룻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경험이나 지식이 있으면 당연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른들은 무지나 실패를 두려워하고, 건강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직을 두려워하고,

늙을수록 혼자 사는 일과 궁핍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해서 조심조심합니다.

 

아이들은 어떤가요?

왕따를 두려워하고, 부모의 이혼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두려워하고, 성적 떨어지는 일을 두려워하고 등,

 

이런 면에서 두려움은 스스로에게 절제와 충동으로 작동하여 이탈과 방임과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성실과 인

내의 노력으로 향상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두려움의 힘은 부정적인 힘 같아도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니 괜찮은 힘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두려움의 힘은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하지 말 것은 말도록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어떤 것을 두려워하나요?

 

2) 하나님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탈레반이나 IS에 대한 뉴스가 계속 뜹니다.

이들은 알라를 극단적으로 믿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살폭탄테러와 여성과 아동에 대한 학대와 자신들과 다른 상대는 학살도 감행합니다.

이는 알라가 하나님이요, 그처럼 명령하셨다고 믿는 종교적 신념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중국과 북한은 어떤가요?

독재가 특징이고 종교는 인민의 마약이라며 박해하고 지금도 교회를 박해합니다.

그들의 사상에는 유물론적인 바탕에 세워졌기에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권과 자유가 있는 체제는 하나님이 헌법부터 계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제헌국회부터 기도하며 출발했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는다면 어떤 신이냐?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적이냐? 를 살펴야 합니다.

이단 사이비들도 성경적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실제는 아니기에 정통과 달리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죄를 짓습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죄고 우리 타락한 본성이 죄를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민족이며,,

헬라인들은 어릴 적부터 철학을 듣고 자란 민족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다 죄를 짓고 이미 죄 아래 있다고 선언 받는 이유는,,

유감되게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어서였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요?

말과 글에는 하나님이 있다지만 그 하나님을 삶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고,

외식과 위선만 발달했었습니다.

롬3:10~18)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

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 이유는 태생부터 의인이 아닌 죄인이요, 악인의 후손인 탓입니다.

원숭이는 얼굴이 빨갛던지, 머리가 빨갛던지, 엉덩이가 빨갛던지 나무에 살며 꼬리를 네 발과 함께 사용합니다.

이 원숭이가 꼬리를 성형하고 털을 밀어도 나중에 보면 본래대로 되어 있듯이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 탓에 의인이 아니 죄인이기에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근본이 죽었기에 선악을 모릅니다.

그 모습이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

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인 것입니다.

누구만이 아닌, 어느 곳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그렇고 후손이 다 그렇습니다.

종교와 철학으로 마음과 행동이 개선이나 개량되었다지만 잠시 뿐 곧 본래대로 되돌아가곤 하여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악

은 점점 관영하게 됩니다.

말세일수록 흉포화 되고, 대중화되고, 일반화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3) 하나님두려움의 힘

하나님을 모름이,,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지가,,,

단순한 듯해도 세상전체를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귤 상자의 귤 한 개가 물렀다가 썩으면 마침내 전체를 썩게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탈출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주자주 하나님 알 것을 주문하셨던 것입니다.

호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

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종교는 우상숭배이고 하나님 없는 철학은 신화에 불과할 뿐입니다.

유대교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없으니 예수님을 몰라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내가 지금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지금껏 믿지 않고 있습니다.

철학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없으니 기껏 생각하고 깨달은 것이 신화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다 마귀에게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 필요한 것은 약간의 개선이나 개량이 아니라 완전한 고침인 거듭남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새 창조입니다.

어느 날 내게 빛으로 찾아오셔서 성령님으로 믿음을 주시고 내 의지를 사용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며 주님의 십자가를 나

의 십자가로 고백되게 하십니다.

이 덕에 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새 성향을 갖고 새 목적을 향해 살게 됩니다.

이때에 누구는 사도바울처럼 급진적으로,

누구는 예수님제자들처럼 점진적으로 거듭남을 이룰 뿐입니다.

 

결론) 성경은 “너희는 하나님을 본 본받는 자가 되고” 했습니다.

티끌 같은 사람이 완전하신 신을 본 받으라?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았고 성령님이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본받듯이 성도는 하나님을 본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 한분만 두려워하면 세상에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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