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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부한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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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11-28 11:52 조회 2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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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고 결국 사고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뜻이기에 언제나 표준이 됩니다.

교회지체인 성도는 성경적 사고로 살아야 주안에서 만물의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가치

사람의 최고 가치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실상은 “먹던지 마시던지 주의 영광“이라는 주님의 가치로써 같아야 됩니다.

그러나 이 다름은 죄 때문이고,, 이 다름으로 혼란이 왔고 싸움과 전쟁도 온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을 최고로 여기는지,,대체로 자신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입과 배를 위하고,, 그래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합니다.

여기에 절대적인 것이 돈이기에 현대는 돈 행복이 최고가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경기로 소득차이가 커졌고 집값상승으로 빈부격차가 늘어났기에 돈 행복은 단연 최고가 되어 돈 싫어하

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유독 우리 국민이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가족들이 오순도손 행복하게 사는 게 1위였는데 아닙니다.

가족행복이 아니라 돈 행복이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의리,, 여성들은 사랑,, 혹은 정의 혹은 섬김도 있었는데 옛말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더 확산되어 나라지킴이라는 숭고한 사명 보다는 돈 많이 버는 일이 우선되었고 곧 능력자가 최고가 된 것

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여서 복음적인 것 보다는 돈이 넘쳐야 은혜가 넘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징조를 말씀했었습니다.

딤후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돈 사랑하는 것,,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에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가치관으로 무장하니 부자를 꿈꾸는 이들이 많게 되었으니,,

그러므로 성도들은 “들으라 부한 자들아”하셨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부자에게는 더 큰 심판이 있고,, 부자가 되기 위해 바르지 못했던 뭇 행위들이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부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부자인데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2) 욥의 인내

그러므로 성도는 욥을 교훈삼아야 합니다.

그는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동방의 최고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욥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큰 부자가 며칠 만에 망했고 병들었을 때 한 말인데,,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또 그는 과부와 고아들에게 많이 나누었습니다.

쌓는 기분보다 나누는 기분을 더 알았던 신앙인 것입니다.

욥31:16~18)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니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

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 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

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같은 부자지만 얼마나 다른지요?

“약5:4)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무 힘들게 부자가 되니 돈 쓸 줄 모르는 구두쇠가 된 것입니다.

 

아니면 허랑방탕하여 사치의 끝판 왕이 되기도 합니다.

약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느니라

약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부자,,욥 같은 부자가 많아야 세상은 원통이 줄고 감동은 배가 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원망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켜 인내해야 합니다.

욥이 좋은 증거인입니다.

다 망했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전 부다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이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사람은 언제나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관심이 있다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믿음에게 있습니다.

 

아다시피 믿음은 전진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침노하고,, 열심히 하고,, 그러나 다른 특성도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인내하는,, 큰 믿음이 무엇일까요? 주님 기쁘시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원망하지 않고 오래 참는 일입니다.

약5:9~10)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3) 기독신앙

철은 단단해도 녹이 슬고,, 돌은 철과 같이 단단해도 녹이 슬지 않지만 부서집니다.

기독신앙은 하나님께 전진하며 열심을 다하고 이웃에게 긍휼이 있지만 고난에서는 인내합니다.

그런데 변했습니다.

부자 되길 사모하여 신앙적 전진은커녕 제자리에서 뛰는 것도 힘겨워 하고,, 열심은 흉내만 내고 고난은 무서워 떨고,,결국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소금과 깨소금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금은 하얀 천일염인데 사람들은 깨소금으로 주의 상에 올리는 격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교회와 성도의 믿음만은 아니어야 합니다.

이 가을에 다 단풍졌는데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름이 있었습니다.

겨울에 그 진가를  더 나타내듯이 불신시대의 성도의 믿음은 청정함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12제자들의 눈빛은 어땠을까요?

사도바울과 그 선교여행 다녔던 누가와 같은 전도대원들의 행색은 어땠을까요?

12제자들은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예수님을 지녔고,, 줄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당하고 거룩했을 것이며 세상에서 보지 못한 권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곧 예수였고 교회였던 것입니다.

비록 재미도 없고 가난했었지만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모여들어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땠을까요? 행색은 초라했을 것이고 일행들도 거지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당대의 웅변가나 변사의 말과 다른 신뢰의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코끼리는 실제로 보면 너무 크고 기린은 너무 높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어느 사람은 소문 보다 실제로 보면 너무 작고 너무 약하고 초라함이 많습니다.

꿈도 없고 마음씨도 작고, 기상도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큰 사람, 좋은 사람,,넓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요? 너무 사람 중심적이고 너무 친교 중심적이고 너무 인문학 중심적이고 너무 말 중심적이기에

너무 별 볼일 없는 것은 아닐까요?

 

결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좋은 것은 알아봅니다.

옛날의 교회들은 사람들이 찾아주었는데 지금은 떠납니다.

옛날의 성도들은 주변이 인정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믿음을 말하지만 믿음의 능력이 잃어서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갈망합시다.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시리라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5: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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