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 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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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사람 없듯이 염려 없는 사람 없습니다.
누구는 10년 후의 노후를 염려하는가 하면, 1달 후의 월세를 염려하고, 당장의 식량과 목숨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는 어떤가요?
1) 히스기야 왕
고대 유다의 히스기아 왕은 경건한 왕이었습니다.(왕하18:3~4)
그러나 위기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자주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왕하18:13~16)
이런 몹쓸 문제와 위기는 두려움과 염려를 잉태시킵니다.
잠15:13)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이때는 얼굴이 망가집니다.
잠17:22)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이때는 몸이 망가집니다.
본문, 나중을 보면 히스기야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탓도 크리라 여겨집니다.
이 염려와 근심은 상황인식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때 어떻게 처신하나요?
과연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2) 처신
*상황적 조치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먼저 정치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조공을 바치며 침공한 제국을 달래야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제국의 요구는 그치질 않기에 왕의 염려는 늘어만 갔습니다.
*감정적 조치가 있습니다.
잠31:6`7)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실 때 사람들은 주님께 신포도주에 쓸개즙을 섞어 갈대에 꽂아 주었습니다. 일종의 독주처럼 처절한 고통을 잠시 잊도록 하기 위한 저들의 조치였습니다.
최근 들어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잠시 동안 염려와 근심을 잠시 낮추고자한 시도 아닌가요?
그러나 계속된 음주는 술중독이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에 성도에겐 합당치 않습니다.
*신앙적 조치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경건한 왕답게 제국의 선전포고문을 갖고 하나님께 펼쳐보여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왕하 19:14~19)
이 모습은 하나님을 깊이 의뢰하는 모습인 만큼 경건치 않으면 생쇼가 되기 십상이지만
경건한 성도라면 경험한 모습인 만큼 종종 찾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14절)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15절)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16절)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하니라” (19절)
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급해서 만도 아니고 믿음 있어서 만도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런 기도에 훈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모습이 아닌가요?
그래서 훗날에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도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왕하 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기독교는 믿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는 바를 배우고 확신에 거하며 또 가르치는 신앙입니다.
왕하18: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왕하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예수님이 12제자들에게 훈련한 모든 경건이 이 모습이었습니다.
그중에 기도훈련은, 새벽미명에 습관을 따라 기도하심을 보이셨고, 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의 교육은 제자들로 하여금 “기도해주세요” 보단 스스로 기도하도록 하심입니다.
디모데는 어떤가요?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이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일찍이 외할머니 어머니로부터 사사된 것입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히스기야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는 왕이기에 그의 이런 경건이 나라와 백성까지 살렸던 것입니다.
만약 히스기야왕이 뱃장만 있는 왕이라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요?
아님 술로 해결한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러므로 문제와 위기 앞에서 취한 나의 태도가 진짜 모습 아닌가요?
이런 모습이 진정한 신앙고백이고 우리 자녀에게 계승될 유산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돈이나 자기 지혜로 살 수 없는 난장이기 때문입니다.
3) 염려는 금물
문제와 위기 앞에서 언제나 1등으로 찾아오는 것이 염려이지만 금물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믿음을 약화시켜 기도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문제해결이 되질 못합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이 일사병으로 죽자 그 죽은 아들의 방에 들어가면서 이미 있던 사람들을 방밖으로 내쫒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인 불신의 사람들이었기에, 그들 곁에서 기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엘리사는 죽은 아들의 몸에 엎디여 3번 기도하였더니 그 아들이 살아나는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지만 “나사로가 잠자는 도다” 하시며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우는 자들을 물리고 기도하셨습니다.
시102편은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입니다.
“5절) 나의 탄식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9절)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시편의 제목처럼 기가 막힌 이 상황에서도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의 염려를 주께 다 맡기는 모습입니다.
문제와 근심과 위기의 종류와 상태가 어떻든 상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나를 보시며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왕하19: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그리고 앗수르왕 산헤립과 그 군대를 제거하셨습니다.
왕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병들어 죽게 되어 기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하20:5) ~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뿐만 아니라 15년을 더 사는 보너스와 통치하는 성의 보호도 받았습니다.
인천주안 장로교회 나목사님께는 많은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중, 간암에 걸렸을 때 일도 있습니다.
배에는 복수가 차고 얼굴은 새카맣고, 의사는 3일을 산다고 했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배가 부글부글 끓더니 설사가 나오고 복수가 터지고, 무려 그 다음 날까지 12번의 화장실을 갔습니다. 그 후 그는 그 병에서 나았습니다.
우연인가요? 은혜의 치료인가요?
생명이 죽는 화급함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통해 기도하게 하셨고 들으시고 고치셨습니다.
결론) 여기서 조심할 바가 있습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처럼, 문제와 위기 앞에서는 삼가 각근히 행할 수 있습니다만 그 후에는 하나님을 잊고 은혜를 곧잘 잃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왕도 이 미련함 때문에 국가의 안정과 개인의 건강함을 얻고도 종국에서는 슬픈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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