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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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일본의 한 연구소 실험인데, 생쥐가 자신의 먹이를 먹기보다 고통당하는 위기의 쥐를
구해준다는 연구발표였습니다.
투명 플라스틱 상자에 중간에 칸을 막고 한쪽엔 먹이를, 다른 한쪽엔 물이 차올라 이웃 생쥐가 위기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때 마른 칸에 있던 생쥐는 먹이보다 이웃 쥐를 자신의 칸에 오도록 고리를 제거했습니다.
둘째는, 북한의 처형사건이었습니다.
김정은은 국방장관 격인 인민군대장을 체포 3일 만에 대공포로 처형했답니다.
1) 사람
위의 사건은, 사람이 고난 받는 이웃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생쥐보다 못한 존재가 됨을 교훈하며 그럼에도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한가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원래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로 빚어졌습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니라 하시니라
한문의 사람 ‘人’은, 두 획의 결합된 것이 이 의미입니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있는 자 없는 자, 성한 자 문제 있는 자 등,
잠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군박하는 자는 곧 여호와를 학대한 불경한 일이 됩니다.
신앙이 무엇인가요?
자기중심과 물질중심의 타락한 가치관에서 죽고, 본래 하나님이 주신 참 인성,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이 신앙은 성숙할수록 이타적이고 비물질적으로써 주의 통치를 사모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온전한 신앙입니다.
곧 거룩함, 의로움, 청결함, 진실함, 그리고 사랑,
적십자정신을 아시나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돕자는 박애입니다.
그 근원은 십자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님이 그러셨지요.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일반적으로 원수에게는 복수하려 합니다.
그러나 복수는 언제나 복수를 낳을 뿐, 그래서 주님은 원수 갚는 것을 주께 맡기라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교훈은 하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예배당에서 예배만 하고, 간구만 하여 하나님을 일시키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써 우리의 거룩을, 빛을 증명해야 합니다.
2) 느헤미야
본문은 느헤미야의 산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평안한 시대의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적국인 제국에 포로된 시대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포로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느1: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사만 하면 할 도리를 다했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은 언제나 삶이 없습니다. 외적인 거룩은 종교화되었지만 내적으론 의, 청결, 진실, 사랑은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에 넌저리를 치셨고 그 성전을 적군들로 말미암아 헐게 하셨으며 백성들은 포로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그럼에도 그 본국에서 들려 온 소식에 슬펐습니다.
느1:3~4) 저희가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화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우리는 신앙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인간다움이 신앙에도 배어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되어라, 신학자가 되어라, 전도자가 되어라, 순교자가 되어라” 해도
먼저 “사람이 되어라” 가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종종 믿음이 우선이라며, 사윗감이나 며느리감의 믿음을 운운하곤 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인간됨됨이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나중에 들어가면 됩니다만 인간됨됨이가 그릇되면 믿음도 볼품없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느헤미야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느1:2)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성도는 민족심도 있고 애국심도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심도 없고 애국심도 없이 어찌 세계선교와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나요?
북한은 공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북의 동포들은 억압과 굶주림에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죽거나 대륙의 방랑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 마음과 이 생각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헤아림이 곧 나를 헤아림이고 이들에 대한 긍휼이 곧 내 후손에 대한 긍휼이 됩니다.
*인간미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느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일반적으로 남의 죽음도 내겐 손톱 밑 가시만큼도 여기질 않습니다만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울고 슬퍼했습니다.
주님이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신 일이 연상되지 않나요?
우리는 언제 어느 일로 한숨 쉬고 울었나요?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리카 보트 피플이, 캄보디아의 보트 피플이, 어느 누구의 구조 없이 망망대해 바다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기타리스트들의 영웅인 B,B.킹이 지난 주간에 별세했습니다.
흑인으로써, 그의 가난이 기타를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로인하여 미국 흑인의 노동요였던 블루스를 세계의 대중음악으로 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그가 블루스를 한 이유는 “내가 거리에서 노래하던 시절 가스펠을 청한 사람들은 한 푼도 안 줬지만 블루스를 불러보라던 사람들은 꼭 팁을 줬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가스펠을 청한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자신만을 위한 복 구함은 탐욕입니다.
*자신을 탓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실제 느헤미야는 왕도 아닙니다. 한갖 엘리트에 불과할 뿐인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간주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탓에 익숙합니다.
정치가 미숙하다면 정치인의 탓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 표로써 행세하면 되고
교회가 바르지 않고 목회자가 불량하다면, 내가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적만 한 체 남을 고치려 하여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세네카-
“인간은 인생이 짧다고 한탄하면서도 마치 인생이 끝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할 바를 깨닫고 작정한, 목적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느1:11) ~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망가진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체 포로된 느헤미야, 울며 근심하며 기도할 수밖에 도리가 없던 이 신앙인은, 이 때에 소명을 받습니다.
소명은 간절한 부담감입니다. 주관적이지만 확실한 만큼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중건하리라 하는 소명에 붙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목적이 있는 신앙인 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신앙의 탐욕에서 수정해야 합니다.
먼 땅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지 못하더라고 이 땅에서 나만이 해야 할 바를 찾아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기도하면서, 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그곳에 참여해야 합니다.
‘의리’를 외치던 배우 김보성씨는 홀로 네팔로 갔습니다.
구호단체와 연계하지 않고 갔는데, 곤란한 그 땅에 어떤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신념이었습니다.
때로는 움직이는 이타적 신념이 잠자는 이기적 신앙 보다 낫습니다.
* 은혜 받는 신앙이었습니다.
느1:11) ~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무엇인가 할 바를 찾아 기도했더니 길을 열어 주신 것인데, 느헤미야는 왕의 술시종이 되었습니다. 왕을 대면하여 볼 수 있는 직책인 만큼, 포로에게는 언감생심인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주신 하나님은 그 왕으로부터 성을 중건할 여러 은혜를 받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생각할 바가 있습니다.
내게 왜 은혜를 주시지 않는가? 두 가지로 살펴봐야 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어떻게 썼는가? 아님 정욕으로 쓸려고 구한 것은 아닌가?
내가 용기를 달라면 주님은 그 용기를 어떻게 주실까요? 먼저 위기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내가 물질 달라면 어떨까요? 먼저 내 사적인 물질의 용도를 줄이실 것입니다.
내 진로를 열어 달라면 어떨까요? 먼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라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로 느헤미야는 성을 중건하는 도전과 모험과 역경의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결론) 세상에서 눈물은 약한 것, 혹은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어도 주께 눈물은 수정 같은 보석으로 간주됩니다.
느헤미야는 눈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금식과 기도로 아뢰어 결국 씻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만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과 근심만은 곤란합니다.
기도와 금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포로된 한 인물을 통하여 국가와 민족의 중흥의 인물로 사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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