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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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종교에는 나름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기도는 차별화 되어있습니다.
저들의 기도를 듣는 신이라 칭하는 대상들은 죽어 있지만,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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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계신 하나님
알라스카의 요셉이라는 김춘근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단돈 200달러를 들고 오래전에 미국으로 간 사람입니다.
온갖 고생을 다한 후에 정치학 박사가 되어 알라스카주립대학에 교수로 있을 때에
위기가 왔습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간염이 찾아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불치병에 걸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Why me? - 하나님, 하필 왜 나인가요?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죽어야 하나요?
저는 그동안 윤리적으로 살려 애썼고 교회에서는 교사, 성가대원, 청년회장, 35세에 장로가 되지 않았나요?
정말 미국에 와서는 학교와 도서관 교회, 가정 밖에 모르고 살아온 나인데, 이런 사형 선고를 내리시면 어떡하나요?
이렇게 울부짖던 그는 사방을 둘러봐도 하나님 한 분 밖에는 믿을 이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LA근처의 있는 빅 베어라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다 죽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6일 째 되는 날, 한 번만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네 피 속에 잇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네가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모르느냐? ” 하나님의 일갈이었습니다.
그는 심한 충격과 함께 그동안 비교적 윤리적으로 살았다는 신앙의 교만이 일시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면서 37년 동안 살았던 모든 죄악들이 스크린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회개 기도가 터졌고 결국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놀라움도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는 변화 되어 신앙과 도덕성 회복을 통해 수많은 청년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Why me? 를 부르짖습니다.
첫 번째는 사형선고에 대한 항의였다면, 두 번째는 감사입니다.
Why me? - 왜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셨나요?
우리 신앙에서 이런 일은 꼭 성경에서 찾지 않아도 수도 없습니다.
제 아버님도 사형선고 받은 폐병에서 기도자리에서 고침을 받은 분입니다.
그 후 돌아가실 때 까지 한쪽 폐로만 사셨던 분입니다.
2) 기도
누구나 절실하면 부르짖습니다.
100일 기도는 기독교의 전통이 아닙니다.
금식기도도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절에 가면 100일 기도는 쉽게 보며, 금식기도는 지리산의 토굴에도 많습니다.
믿음을 갖고 기도하는 일도, 기독교의 전통이나 전유물이 아닙니다.
기도가 벌써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뭇 종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정성까지 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신은 응답할 줄 모릅니다.
그들의 간증에서 “ 살아계신 부처네” 들어 보았나요?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언제나 들으십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는데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옛 신앙인은 고백하기를, 하늘 높은 곳에 올라도 거기계시고 바다 깊은 곳에 내려가 자리를 펼칠지라도 그곳에 계시나이다 했습니다.
이런 기도의 천상비밀이 소개되었습니다.
계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사도 요한이 종말과 천상에 관한 일들을 계시 받으면서 본 내용입니다.
성도의 기도, 천사들로 하여금 금향로에 받들어 하나님 보좌에 드려지고 그곳에서 향기 나는 연기처럼 하나님께로 올라간답니다.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지요? 얼마나 가치 있는 기도인지요?
사도바울은 이 기도의 특성을 알았기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고, 마귀는 오히려 기도하지 못하도록 궤휼을 베풀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에게 아말렉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지휘하여 싸우고 있었고 모세는 산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들고 기도할 때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기고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를 안 장로들이 모세의 팔을 받쳐주어 쉬지 않고 기도하므로 마침내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전술이나 병기로 싸우는 전쟁에서 조차 기도는 최신예 전술이고 병기이다 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말이 나왔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그러나 전쟁만이 아닌 그 무엇이 다 속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비밀한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도를 합친 기도가 있는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입니다.
3)감사함으로
감사기도와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식사기도는 감사기도입니다. 음식을 주셔서, 또한 먹을 수 있기에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기도는 다릅니다.
지금의 상황은 좋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때야 할까요? 좋지 않은 상황을 기도하면서 과거에 좋은 상황을 연상하며 감사하고, 앞으로 좋아질 설령 그렇게 되지 않아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으면서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기도는 하나님을 깨우는 능력이 아니라 기도자인 내가 깨는 기도인 셈입니다.
*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가 됩니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어느 상황에서 종종 내가 주최자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절실하고, 절대적 상황일지라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그 주최자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혹 경험하셨나요? 우리의 기도가 전체적으로 “도와주세요”로써 일괄되고 있음을, 물론 하나님은 당연히 돕는 자이시지만 나의 주관자는 아닌, 비서나 상황에 맞는 응답을 주는 응답기로써 내가 찾고 있음을,
그러나 기도에 감사함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소는 달라질 것입니다.
*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신앙 고백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기도에는 우리의 방법, 우리의 기한, 우리의 소원의 무게까지 다 담겨 있습니다.
꼭 이래야 된다고 여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든 무제한이신 분입니다.
기간도 오늘 아니면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습니다. 방법도 무제한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사람만이 아닌 나귀를 쓰기도 하고 닭을 쓰기도 했고 벌레를 쓰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소원의 무게나 모양까지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초월하셔서 히스기야 왕은 살려 달라했건만 살림은 물론 수명을 15년간이나 연장 받았고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건만 부귀영화와 그 왕권까지 덤으로 주셨습니다.
* 찬미의 무게감을 더합니다.
시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주는 마땅히 홀로 영원히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세상에는 돈 보다 더 귀한 가치가 많습니다.
사랑, 효도, 우정, 믿음, 신실, 등
그러나 이 귀한 가치에 돈이 실린다면 그 가치는 더욱 빛납니다.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지극해서“ 내가 어머니를 참 사랑해요” 할 수 있지만, 편찮으실 때 병원에 모시고 간다면 효심은 실천되는 이치입니다.
내가 주님을 찬양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찬양 합니다.” 보단 기도로 감사함이 있고, 그 감사함으로 공의를 이루고 인자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받으실 찬송이라도 쟁반보다는 보석함이 드리는 찬송이 될 것입니다.
하찮은 우리의 기도를 금 향단에 받아서 금 제단 앞에서 향연으로 받으시는 그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나요?
미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 새 노래가 무엇일까요?
은밀한 중에 나아감, 성령으로 충만함,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일, 다 맞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일도 해당됩니다.
* 참기도가 됩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종교적인 기도와 참기도의 차이를 아셨나요?
기도와 간구는 흔한 일입니다만 감사가 있어야 참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바리새인들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주의 제자들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 기도는 훈련되고 습관 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언어가 기억해야 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지 못했다면 깨워야 합니다.
먼저 구원의 감사함을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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