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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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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7-06 16:14 조회 1,02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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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사님이 뜬금없이 질의를 해왔습니다.

“목사님,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아담이 구원을 받았을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모든 사람을 죄인되게 한 인류시조인 아담이 죄에서의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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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원받았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범죄 한 즉시 하나님은 그에게 한 동물을 죽여 가죽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한 말씀을 주셨는데,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의 아들은 카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제물을 갖고 제사했습니다.

그 제사가 어디서 왔을까요? 자기 죄에서 구원받았던 부모의 삶에서 보고배운 줄 믿습니다.

 

1)동일한 구원

작은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도 남과 북의 문화가 다릅니다.

북의 김치는 젓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풍부한 젓갈을 넣습니다.

이조초기의 김치와 이조말엽의 김치는 다를 겁니다.

임진왜란 시기에 고추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문화에 있어 지역과 시기는 중요합니다.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떤가요?

지금과 예수님 시대와 거슬러 다윗시대와 고대기인 아브라함 시대의 구원은 어떨까요?

또 동양과 서양은 어떨까요?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인들과 우상 신을 섬기던 이방인과의 차이는?

 

언제나 믿노라했던 사람들은, 아담의 구원처럼 구원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데서 출발한 겁니다.

믿음으로 주예수를 믿어 성령까지 받았지만 정통유대주의자들이 와서 속살거렸습니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니 율법도 지켜야 한다.

가뜩이나 상대적 신앙으로 무장되었던 이방인들이기에,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 슴슴하다느꼈는데, 율법의 행위라는 상대적 공력을 첨가하라는 이를 진리인 냥 받아드린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화가 나서 다시 외친 겁니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그리고 결론짓습니다.

갈3: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리라

로마서에서는 더 확실한 대못을 쳤습니다.

롬3:20~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다는 선언, 언제든지 누구든지, 구원받고 의롭다함을 인정받는 데는 단한가지 뿐,

하나님이 세우신 주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나의 구원사건으로 받아드리는 일입니다.

율법은 의로워도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죄를 깨닫는 기능뿐, 구원의 능력의 십자가의 피 흘림의 효력입니다.

 

2)믿음으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실제로 보며 동시대에 살았던 부류들입니다만 보이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질 못했습니다.

이성적 판단으로 오히려 그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위에서 처형시켜 시켰습니다.

때로는 본다는 것이, 안다는 것이 걸림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이나 현대의 성도들은,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율법과 선지자들의 통해 믿음으로 믿고, 현대는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해 믿습니다.

그 결국 아브라함과 동일한 복을 받았습니다.

갈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사람들끼리는 혈통과 시대와 신분으로 차별합니다만 광대하신 하나님의 판별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로 판별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내게 주입되어 하나님과 동일한 의를 소유한 겁니다.

이를 알기에 “놀라운 주의 은총”이라고, 눈물로 찬송하고, “감사하리로다” 혹은 “찬양하리로다” 진술하는 겁니다.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기위해서는 언제나 거울을 사용합니다.

현대는 유리거울, 옛날에는 동판, 그리고 물에 비추인 자신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착각은 율법을 준수하므로 구원을 얻는 줄 착각한 겁니다.

지금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십계명, 주일성수, 열심적 교회생활, 봉사생활, 이 모든 일이 선하고 의로워도 구원의 방편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믿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편팔이 나를 구원해 내심을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됩니다.

 

그러나 거울을 자주 대하면 늘 자신의 더러움을 살필 수 있듯이 율법과 계명과 윤리적 생활을 하면 주의 의가 더 확실히 요구됨을 발견하여, 자연 상대적으로 은혜의 구원이 실감되어 구원의 감사나 찬양의 고백은 구원이후의 모양이 됩니다.

 

3) 복

지난 주간에 몇몇 목사님들이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아브라함은 언제 믿었을까” 했기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을 때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전에 이미 믿음으로 있었기에 고향을 떠났던 겁니다.

그러나 그가 “의”로 여김을 받은 믿음은, 좀 다릅니다. 그 후에 일입니다.

아들을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늘의 뭇별과 해안의 모래를 보고 믿을 그때였습니다. 롬4:21~22)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의로 여김을 받은 후에 열국의 아비가 되었던 것이지, 열국의 아비가 되었기에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열국의 아비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란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첫째도 은혜요, 둘째도 은혜였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가 찾아주심도 은혜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신일도 은혜요, 성령을 주셔서 보증 삼은 일도 은혜요, 자녀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일도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공짜라는 의미도 되지만, 하나님이 하셨다는 의미도 됩니다.

 

구체적으론, 갈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여전히 율법과 율법의 기능은 존재하여도 관계가 끝났습니다.

율법이 거울이 아니라 주가 만사의 거울이십니다.

 

갈3:26)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신분의 격상이 왔습니다. 이조시대는 신분의 격상을 위해 돈을 주고 족보를 사야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양반후손들만 있는 것이 이 탓입니다.

 

갈3: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요즘 기능성 옷이 많습니다. 방수와 방풍은 기본이고 땀 흡수와 초경량급 옷도 등장했습니다.

예수 옷, 세상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안전한 옷입니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수민족이 된 것입니다. 본향은 천국입니다.

한 목적을 행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느 인터뷰를 들었더니 찬양사역자였습니다. 그 동기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근무하던 회사가 공연연출회사인데 사장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큰 공연의 피날레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장식하는데 사장은 이때 큰 손실을 이루면서 까지 라이브로 했답니다. 여기서 감명을 받아 주를 만나고 하나님 찬양사역의 소명을 받았다했습니다.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니라

우리나라 재벌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줍니다.

후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적장이었던, 안중근 열사가 저격한 이또히로부미는 가난한 신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잘하여 섬기던 주인의 양자가 되어 그 후손이 될수 있었습니다.

‘이또’는 새 성입니다. 신분의 격상으로 좋은 스승과 벗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현대는 복이 없다고 탄식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좌절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예수님과 동등한 후사이기에 지금 ‘공부 중’입니다.

장차 예수와 함께 영광을 받기위해서 현재 고난도 함께 받는 겁니다.

믿음은 아브라함과 모든 것을 동등하게 이루워 주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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