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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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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0-11 21:47 조회 1,0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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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연길에 갔더니 우려할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농촌지역 교회들에는 정부가 cctv를 달아놨습니다.

농촌교회에는 특이할 만한 일이 없다지만 저들 교회 뒤편에는 한국교회가 있고, 한국선교사나 그 관련자들이 다니는 일을 감시한다는 취지랍니다.

일종의 교회감시 정책이고 탄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닌 교역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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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한 자여

악한자의 행악은 분명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으니 악을 행합니다.

공산당이 그랬고, 일제가 그랬고, 나찌당이 그랬고, 고대 로마도 그랬습니다.

이들의 정치이념 저변에는 유물론적 사상이며 무신론적 사상입니다.

그래서 침략하고 탄압하고 학살도 감행합니다.

잠24: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찌니라

 

위는 악인의 은사입니다.

이들의 결국은,, 간단명료합니다.

잠24:16) ~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인류의 역사를 흩어보면 자명한 것이 하나 보입니다.

권선징악입니다.

의인은 죽임을 당해도 살아나고 악인은 번성한 듯해도 쇠퇴합니다.

왜 그런가요? 인류 역사의 주관자가 살아계시며 의로 통치하시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는 언제나 미련한 자가 됩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2) 의인이여

의인의 특징은 악인의 반대입니다.

태양 따라 도는 행성처럼 하나님 중심이 가득 합니다.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자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빛이 있고 열이 있는 곳에는 곰팡이가 피지 못하는 이치입니다.

쉽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빛과 열을 받아 실족함을 이루지 않지만 등지면 어둡고 습해

온갖 세균이 번식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악인과 의인의 차이는 넘어지는데 있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데는 악인도 의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일어나는데 결국이 다릅니다.

의인은 하나님이 붙드시고 도우시지만 악인은 오히려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3) 선택

인생은 자유의지로 시작하지 않았으나 자유의지로 선택되고 결정되어 집니다.

내가 태어난 것, 내 의지 아닙니다. 그러나 악인의 반열에 설 것이냐 의인의 반열에 설 것이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앞선 초청 앞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냐 거부하느냐가 일생을 좌우하고 영원을 결정짓는다면 너무 간혹 한가요? 그럼에도 맞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중 하나는 그 십자가위에서 주를 믿어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언약의 은혜를 받았지만 다른 강도에게는 없었습니다.

 

주가 일반으로 주신 믿음을 믿는 이에게는 그 죽음조차도 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존하는 오늘은 오죽 하겠나요?

시92:12~15)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리로다

 

빛과 열이 충만하길 바란다면,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백향목 같이 발육을 희망한다면 의인의 반열에 서야 합니다.

 

*비교적 의인이 있습니다.

인류의 현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자력의 의인입니다. 훌륭한 인물들입니다. 존경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자기를 책임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의인이 있습니다.

타력으로 인한 의인이고,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의 의인입니다.

이들은 대단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하나님의 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쉽게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자신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너무 쉬운 흥왕을 사모해서 급실망하곤 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먹고사는 일, 배우고 익히는 일, 늙는 일, 돈 버는 일, 사랑하는 일, 다 어렵습니다.

하물며 여호와의 집에 심겼어도 흥왕하는 일이 쉽겠나요?

 

연길 뒷골목을 가는데 지나치는 행인 발에 무언가 밟힐 뻔한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가가 보니 작은 새였습니다.

날개가 부러졌는지, 다리가 부러졌는지 핵핵대고 있기에 안고 축복하고 길거리 웅덩이 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훌 날아오르더니 아파트 유리창에 부딪혀 또 떨어졌습니다.

앞서도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다시 손에 얹고 자리를 이동해 주었더니 이번에는 부딪히지 않고 날랐습니다.

 

무슨 얘기인가요? 새도 힘든 것을 보았습니다 .뇌진탕을 감수하고 비상했습니다. 목숨건 사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새는 추운지방에서 곧 겨울을 나야합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의인임을 믿으시나요? 참새보다 귀한 영적 존재임을 인정하시나요?

여호와의 집에 심기웠고 흥왕할 줄 믿으시나요? 끝까지 인내하시면 됩니다.

신앙이 그런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가 이 모든 의인의 삶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목숨 부지하기 위한 삶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평강의 왕이었습니다.

순전하진 않았어도 흥왕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겼기에, 7번 넘어져도 일어났고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해야겠기에 말년에는 평강의 왕으로 존경받았습니다.

 

살기 힘든 시대일수록 요행을 사모합니다.

요즘 복권이 잘 팔리는 이유입니다.

안락을 추구하는 시대일수록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신앙은 무뎌지고 여려집니다.

 

인생, 끝나지 않았습니다. 달려갈 길 더 가야 합니다.

신앙, 아직 결산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두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의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놓으셨고 주의 가슴에 우리를 붙이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우리가, 의인으로써의 의를 발휘하느냐입니다.

*의인됨을 망각하지 말고

*또 의인의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도 맙시다.

*의인의 삶은 만들어 나가는 삶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산다는 일은 여간 일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 같은 의인된 신분으로 만든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그 뜻을 따라 예수님은 세상의 삶속에서 일체의 순종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성령님은 이 소원을 우리 안에서 이루게 하십니다.

 

결론) 의인은 다릅니다. 망하는 세상과 사람들 속에 있다지만 주의 보호하심에 있는 만큼 안전지대에 있습니다.

그 관계를 주님이 이루워 주셨지만 그 관계 유지는 의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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