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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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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1-29 13:47 조회 98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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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인 국회의사당으로 떠나기 전 유족들과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발인 예배가 있었는데, 천국환송예배라 하여, 그 자리에 참석하며 본문을 묵상했습니다.

 

1) 예수님의 자기 계시

요한복음에는 여러 편의 예수님의 자기 계시가 등장합니다.

 

요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8:12)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러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4:6)~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러한 자기 계시는, 나타내는 이와 계시를 받는 이들에 대한 확실성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라도 과장됨이 없습니다.

사람의 증거라면 어떨까요? 모호하거나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기 계시이기에 완전합니다.

 

그래서 “내가~ ”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여기에 빼거나 덧붙이질 말아야 합니다.

이 계시는 구약이 증명했고, 하나님 아버지가 증거했고, 예수님이 친히 증거하셨고, 성령님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그럼에도 주님의 자기 계시는, 언제나 가장 안 믿는 내용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요1:5) 빛이 어둠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마귀에게 속한 어둠이 빛을 싫어함, 그 한 가지 때문입니다.

 

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주님은 이 계시를 배부른 자들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돈 세고 있는 자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병들어 죽은 오라비가 있는, 슬픈 마르다에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조상 적부터 부활신앙이 있는 민족입니다.

요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더 발전해서 말씀하십니다.

요11:26)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이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떨까요?

마르다와 같아서 “네~ 마지막 날에 부활하지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지 않다하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야 하는데, 죽음에는 여러 모양이 있습니다.

사회적 죽음이 있는데, 관계의 단절입니다.

생물적 죽음도 있는데, 호흡이 멈춘 상태입니다.

의미적 죽음도 있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나사로는 생물적 죽음이기에 사회적 죽음도 함께 왔습니다만, 의미적 죽음에서는 산자였습니다.

주님을 믿었기에, 일찍이 영생을 지녔습니다.

믿는 자들의 실상입니다.

고전15:16~22)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곳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주님은 그러기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씀을 듣고도 지체하셨고 가시면서 “~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이제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11:11)”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신앙은, 하나님 무서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리라 했던 믿음입니다.

이삭은 늙게 난 독자로써, 생물적으로 낳을 수 없던 지경에서 낳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믿음을 주시고자 그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심히 죄 되게 하며, 정죄하고 마침내 죽게 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죄가 죽기 때문에 사람이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보혈은 이 정죄를 은혜로 바꿉니다.

영생을 주어 산자가 되게 합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죽게 된 것 같이, 이제는 주 안에서 믿는 자가 산자가 됩니다.

주님은 여기에 첫 열매요, 모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왜 생물적으로 죽느냐? 는 의구심이 옵니다. 우

리 몸은 죄로 오염되었기에 정화되어야 합니다.

천국에 합당하기 위해선 육체도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됩니다.

살후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 하라

 

주님의 계시를 보십시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이 먼저 나왔습니다.

다시 살아야 삶이 있기에, “생명이니,”

나사로가 살아났고 주님도 무덤에서 장사한 지 3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기독교는 복의 종교이고, 생명의 신앙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떡이고, 빛이고, 문이고, 목자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포도나무가 됩니다.

이 부활과 생명을 주시려고,

 

모든 물건은 값 주고 삽니다.

값 많이 주면 보물입니다.

우리가 얼마자리인줄 아시나요? ‘예수짜리’입니다.

 

3) 믿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그리고 또 묻습니다. “너도 이처럼 될 것을,,”

 

나의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마귀는 죽음으로 위협하며, 죄짓게 합니다.

죽음 앞에 비굴하면 죄의 노예란 비참이 옵니다.

 

그러나 옛 성도들은 당당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부활에 확고했습니다.

유대교가 핍박하고, 로마제국이 죽이고, 로마카톨릭이 죽이고, 나찌와 공산당이 죽여도, 부활이 있기에 죽음의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폴리캅이란 교부가 있었습니다.

교부란 사도들의 손자 격 신앙입니다.

화형 처형을 당하려 묶인 체 협박과 회유를 당했습니다.

“주를 한 번만이라도 거부하라 그리하면 네 발밑의 장작불을 꺼주겠노라”

이때 폴리캅은 외쳤습니다. “ 86세 사는 동안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부인하지 않으셨는데 늙은이가 좀 더 살자고 그 분을 부인하겠는가?” 결국 화형 당했습니다.

그는 이 신앙으로 죽었지만 천국에 살고 그 이름도 살아 있습니다.

 

결론) 부활신앙은 믿음의 진수이기에 인내를 주고 소망을 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주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게도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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