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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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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1-01 14:13 조회 695회 댓글 0건

본문

오늘 우리가 성찬식에 참예했습니다만 본문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 베드로에게 경고하셨습니다.

“ 34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1) 새벽닭

올해는 정유년 즉 닭 해랍니다.

지금 우리는 조류독감으로 많은 닭들을 집단 살처분 하고,

계란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 성찬식 카스테라도 못살까 염려되었습니다.

요란한 닭 해를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이 잡히고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가시는 시간은 새벽이었습니다.

마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

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 새벽에 숫닭이 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은 확실했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닭 울고 난후에 이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심히 후회하면서 통곡했던 시간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새벽닭의 은사는 새벽이면 회를 치며 울어 새벽을 깨우는 일입니다

특종을 보이는 모 프로에서 희한한 숫탉이 소개되었습니다.

잡아먹으려고 닭을 잡았는데 “안 돼 안 돼” 혹은 “하지 마”를 외치기에 주인은 포기했습니다.

 

본문의 이 숫닭은 이런 은사는 없었습니다만 베드로를 위해 우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마친 후 또 누군가의 보신용으로 불행의 환골탈태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는 다릅니다.

누구는 육계가 되고, 누구는 산란계가 되고, 누구는 숫닭이 됩니다.

그러나 사명은 같습니다.

닭은 닭 자신을 위한 사명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한, 타인을 위한 희생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 몫을 이루는 사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닭에 대한 동서양의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일의 관건은 인내심이다. 계란은 부화시켜야지 그걸 깨부숴서는 닭을 얻지 못한다.”

“계란이 내부 힘에 의해 깨지면 생명이 생겨나지만 외부의 힘으로 깨지면 생명을 잃게 된다.”

 

이런 닭, 정유년에 정치적인 경고도 있습니다.

계란을 잘 고르면 봉황이 태어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 나와서 활개 치다가,

결국 동족까지 집단 살처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새벽닭을 통한 교훈

우리가 위 말씀에서 교훈 받을 것은 무엇인가요? 닭고기를 먹어라 말아라가 아닙니다.

새벽인 만큼, 그러나 이 새벽이면 우는 충성된 새벽닭을 통해 베드로의 죄를 돌이키셨습니다.

 

* 주님은 무엇이든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비슷하게는 엘리야를 먹이시는데 까마귀를 사용하셨고,

발람선지자를 책망하시는데 나귀를 사용하셨고,

요나를 깨우치는데 벌레와 박 넝쿨을 사용하셨습니다.

또 훗날 베드로의 외식을 지적하는데는 사도바울의 담대함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충언도 필요하고, 지적도 필요하고, 칭찬과 격려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붙들어주는데 기술이 필요하고 또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많은 연구결과, 책망이나 지적 보다 칭찬과 격려가 더욱 효과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베드로의 장점도 아셨고 약점도 아셨습니다.

아니 모든 제자들을 아셨고 지금은 모든 이들의 마음속도 아십니다.

요2:24~25)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

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에 경계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또 부활의 주님은 훗날에 있을 베드로의 종말의 모습도 경고하셨습니다.

요21:18)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런 일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눈 크게 뜨고 귀담아 들으면 온통 이런 경고가 풍성합니다.

목사인 저는 주변 목사들의 여러 상황과 말들에서 받곤 합니다.

아무개 목사는 은퇴에서 어떻게 해서 문제를 일으켰고, 어느 목사는 목회 외에 병원사업을 하다 잘못되었고 등,

계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주님은 우리가 영육 간에 건강하시길 바라십니다.

베드로에게 왜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셨을까요?

마음이 건강하고, 영혼이 건강하고, 신앙이 건강하고, 주님과의 관계가 건강하길 바라서였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모든 인연은 하나님이 맺어주십니다.

그러나 관계유지는 내할 탓입니다.

좋은 관계는 좋은 머리보다 좋은 마음으로 가능 지속됩니다.

리더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연약한 베드로는 잠시 배반했지만, 이 말씀이 생각나 심히 통곡하므로 잃어버린 관계의 건강미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애같이 아프면서 큽니다.

그럼에도 아프지 않길 바라고 아프면 곧 낫길 바라는 부모마음이듯이,

주님도 어버이 마음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벽닭의 그 울음을 싫어하면 안 됩니다.

또 돌이키는 일을 마다하면 안 됩니다.

유럽 카톨릭교회당 첨탑에는 닭이 표상으로 있습니다.

일명 베드로 닭인데 뉘우침의 신앙을 상징했다고 보여 집니다.

옛 선비들은 몇 개의 거울을 지녔습니다.

어디서나 몸과 마음과 행동을 비추어보려 했던 것입니다.

 

3) 시대적 사명

상황은 언제나 반복됩니다.

역사의 패턴이기도 합니다.

새벽닭을 통한 교훈을 받았다면 어둠의 이 시대에 새벽닭 같은 사명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현재적으로는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

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미래적으로는 마28:18~20)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에 회를 치며 외치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결론) 12제자와 12달 그리고 12지간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닭 해에 태어난 제자가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주를 부인하는 신앙이기보단 시인하는 신앙이 되고,

후회하며 자책하기 보다는 감사가 넘치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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