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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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의 신문은 온통 붉은 태양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붉은 태양이 대망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 중 더러는 합장하고 떠오르는 태양에게 기원도 했습니다.
엄밀히 판단하면 태양숭상입니다.
자칫 1월1일은 태양절이 됩니다.
1) 복의 근원
복 주시는 이는 태양이 아닙니다.
그 태양을 지으시고 능력으로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이분께 구하는 것이 믿음이며 신앙입니다.
시146:5~6)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키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사람들은 복 주시는 대상부터 모르니 방법도 몰라 자기 식으로 합니다.
또 복도 살 생명이 아니라 망할 바를 구하곤 합니다.
매년 이처럼 태양을 향해 합장기원하며 복을 구하는데,
무슨 복을 구하나요? 재물을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대체로 다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의 모든 복이 성취되면 큰일 납니다.
희망이 없어집니다.
그게 타락입니다.
아니 희망이 또 있겠지요.
종전보다 더하게, 재물을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 취직시켜 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결국 탐심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작에 본인은 할 바가 없어졌으니 어떨까요?
그러나 이런 복은 하나님이 이미 세상에 심어놨습니다.
재물이 필요하면 벌어야 되고, 건강이 필요하면 심신이 조화된 생활을 하면 되고, 행복이 필요하면 행복의 조건을 맞추면
됩니다.
이 복은 내가 찾아야 합니다.
사32: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이때 보람과 성취도 옵니다.
그렇지 않고 복을 소망만 하면 복권을 사지 않았는데 1등 되길 바라는 어리석음 보다 더하고,
세상 것만 추구하면 결국 사는 것 같아도 죽게 됩니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이 아무리 목말라도 바닷물은 마시지 않습니다.
세상 것은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행복도 마찬가지라서 더 큰 행복 찾다가 도박과 놀음에 빠지는 경우 허다합니다.
이번 뉴스를 보니 중국의 한 젊은 엄마가 도박에 빠져 어린 딸을 팔다가 공안에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돈 따는 재미에 빠졌겠지요, 점점 더 빠져들어 두 딸을 파는데 까지 이른 것입니다.
2) 성도의 기원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시대에 살아도 전혀 다른 존재들입니다.
한동네에 살아도 참새는 시끄럽게 지저귀며 이 나무 저 나무에 떼지어 옮겨 다닙니다.
그러나 백로를 보세요, 우아하게 물가에 조용히 서서 때를 기다립니다.
성도는 복을 달라는 기도도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태양이라는 홈쇼핑에서 이복 저 복을 주문하는 기원라면,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기원이 우선입니다.
시141:2~3)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분향함, 저녁 제사”
이 단어가 말하듯이 손들고 기도하는 기도자를 위함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중심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실까가 아니라, 그 너머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에
우선 마음이 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눈을 감습니다.
밤에도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에 몰입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 하나님 아버지” 해놓고선 기도의 중심은, 하나님 보다 내 소원의 간구와 혹은 회중을 의식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 간의 사이가 좋으면 괜찮다가도 좀 요원해지면, 목사님은 설교로 장로님을 치고,
장로님은 대표기도로서 목사를 치는 일들이 있습니다.
다 불량한 짓입니다.
기도는 기원입니다.
시141:3~4) 여호와여 내 입 앞의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의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시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
저급 신앙이라면 개의치 않을 일들입니다만, 경건할수록 단정하기에 동서고금을 통해서 말을 삼가하고 진수를 먹지 않더
라도 악행에 함께하지 않으려 합니다.
더 본받을 사항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감동된 구절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깊이 묵상하기 바랍니다.
시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
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의인의 훈계” 더 나아가 책망일지라도 기름처럼 귀하게 여기겠답니다.
이럼이 복 받을 짓입니다.
전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런데 대체로 그렇지 못합니다.
무슨 말을 하면 “상처 받았다” 하며, 되레 공격하기 일 수여서 교회조차도 꿀 설교만 있지
책망이 없습니다.
이럼이 자멸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설교도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설교에는 선자자적 성향이 담겨 있어 책망도 있어야 하고 성도는 이런 교훈에 “아멘” 하면서성찰을 해야 됩니다.
복은 무슨 복이든 소망과 희망적 사항이어도, 꿈꾸고 생각하고 빈다고 해서 오질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만드는 실천적 사항입니다.
나의 인격과 삶을 개선하고 개량해야 합니다.
시141: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주께 향하며, 주께 피하는” 이 자세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기도해야 하고 성경 읽어야 하고 예배에 참예해야 합니다.
작년에 어느 분이 매일 시편과 잠언을 정해 놓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좋아졌다며 간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유익하고 잠언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아주 유익한 지혜서였기에 성경을 일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입니다.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먼저 영혼이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범사가 튼튼해집니다.
요3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나무는 뿌리가 중요합니다.
그 나무의 뿌리를 알려면 가지를 보면 안다 그랬습니다.
가지만큼 뿌리가 나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나무는 그 뿌리가 튼실하고 물가에 심기워졌습니다.
이게 복된 나무입니다.
반면 빨갛고, 노랗고, 파란 천으로 늘리워진 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겉은 화려해도, 사람들이 축문을 달아도, 오히려 앙상해 질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3) 나를 지키사
소중한 보물은 지킵니다.
사람은 경호원이 항시 동행하고, 건물은 카메라가 있고 아니면 개라도 매놓습니다.
나만을 알아달라는 신앙은 유치하고 천박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를 알아보고 알아주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키십니다.
시141:9) 나를 지키사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행악자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복을 말하면 이런 복이 어디 있나요?
부자가 되었지만 다시 가난한 자가 되었다면, 귀한 자가 되었지만 다시 멸시받는 자가 되었다면 그게 무슨 복인가요?
집도 건강도 사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안전합니다.
결론) 우리의 복은 주와 함께 하는 복이며 주 안에서의 복입니다.
보이는 복만 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 안주하십시오.
시141: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는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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