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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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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1-15 14:05 조회 7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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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여리고성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불행과 손실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하드웨어는 좋은데 소프트웨어가 부실할 수 있습니다.

한우 고기인 줄 알았는데 수입 고기였다면,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맆싱크였다면,

이때 속았다 싶으면 분노가 나옵니다.

 

1) 우리의 문제

현재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애국가 가사처럼 4계절과 3면이 바다라서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경제대국으로 외국인들이 꿈을 이루고자 들어오고, 거리에는 수입차가 줄을 잇습니다.

이는 겉모양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지금 대통령에 대한 공분을 갖고 있으며 만사가 어렵습니다.

대우경제 연구소의 발표를 조금 인용하면, 올해는 모호한 선심공약이 많을 거랍니다.

경제도 계속될 불황이라서 소비가 위축되어, 투자위축과 저성장성 지속이 예상된 답니다.

잇단 재난 사고로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사고와 사건에 대응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경제가 높아질 거랍니다.

또 북중러 와 한미일의 신 냉전 기류가 형성될 거랍니다.

한마디로 복잡하고, 숨 가쁘고, 버거운 해로 전망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마음은 어떨까요? 어떨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좌절과 낙심과 분노가 심화되어, 통합과 화합은 강조해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사나울 듯합니다.

살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요?

어느 정치인이 이를 해결할까 합니다만 한갓 정치인들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먼저는 상처 입은 국민들이 자기 속은 자신들이 치유해야 해야 합니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 꽃을 담으면 꽃병이듯이 우리마음에 불만, 시기, 불평, 낙심들을 담으면 어둡고, 사랑, 신뢰, 감사,

희망, 겸손을 담으면 밝고 명랑함이 있듯이,

내 마음의 위로와 채움은 누가 아닌 내가 해야 합니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누구 탓을 하면 문제해결 보다 원망과 분노만 늡니다.

그러나 장미꽃만 감사하기 보단 장미꽃 가시도 감사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이룩합니다.

이 모양이 소금을 담는 새 그릇을 준비함입니다.

 

2) 근원적 치료

앞서 국민들이 자기 마음을 아름답게 지키는 일은 치유입니다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젠 소금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치료가 있습니다.

겉 치료가 아니라 근원적 치료인데, 문제의 물을 치료하는데 근원부터 치료했습니다.

왕하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

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니

 

엘리사가 행동했지만 그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치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출15:26)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렘30: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 난 자라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말4: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

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안수기도만 하나님의 치유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때가 맞아서 하나님의 치료가 아닙니다.

약도, 수술도, 심지어 알파고 왓슨의사의 수술도, 하나님이 시대에 맞추신 치료입니다.

인천의 어느 병원은 알파고 왓슨의사의 수술을 받으려고, 암 환자들이 몰린답니다.

심지어 암치료를 놓고, 의사와 알파고 왓슨의사와의 의견이 대립되면 환자들은 알파고 왓슨의사의 처방과 치료를 완전 선

호한답니다.

그러니 원로의사들이 필요 없게 되었답니다.

 

여하한 하나님의 치료는 근원적인 치료가 됩니다.

사람의 근원적인 인격은 어디인가요? 영혼입니다.

근원적인 치료는 무엇인가요? 죄 사함입니다.

그래서 앉은뱅이에게도 “네 죄가 사함 받았느니라” 하셨고, 그때 그는 일어났습니다.

부정한 여인에게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하셨습니다.

 

과학의 시대는 영혼과 죄를 모릅니다.

오직 들어난 현상과 증세만 치료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모든 근원은 영혼이고 죄입니다.

죄로 죽었기에 죄책으로 사는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여기서 살기위한 치료는 거듭남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3) 소금으로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서 물 근원으로 나아가 그 가운데 던지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치료를 선포했습니다.

소금은 치료의 방편일 뿐, 물을 절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과 치료의 행동들이 있어야 합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고 물 근원으로 나아가 던지는 일로써, 손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횃불이든 태극기이든 잡았던 그 손이 하나님께 맞잡혀야 합니다.

속으로 기도할 수 있고, 누워서도 기도할 수 있다지만 십자가에 달린 주의 팔처럼,

“내 손 잡아주세요” “우리가 항복 합니다”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 나라와 이 국민들을 고치셨으니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리라”

 

새 그릇에 소금을 담는 일은 거룩한 수고입니다.

물 근원에 나아가 그 가운데 던지는 일은 신령한 노동입니다.

이는 손들고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의 특권이고 의무입니다.

실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부흥입니다.

부흥은 거리의 시위가 아닌 골방의 기도에서부터 옵니다.

정치인이 변화되고 제도가 바뀌는 부흥이 아니라 내 영혼과 내 마음이 지혜로 충만해 집니다.

 

우리나라가 대단한 것은 교회들이 이런 위기에 기도한다는 사실입니다.

평안할 때는 문제가 많은 것 같았는데, 오히려 국가에 문제가 생기니 기도의 불이 넘실댑니다. 들어보셨나요? “기도가 애

국입니다” 하는 멘트를, “깨어있으라”하는 멘트를, 예배에 깨어있고, 기도에 깨어있자는 자극입니다.

이런 멘트를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하니 감사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는 피의 흔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초기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있고, 독립과 평화를 위한 순국열사들과 민주주의를 위한 애국지사들의 피가 묻어

있으니,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고 고쳐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국면을 맞이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읍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경험했던 성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입성할 때에 난공불락의 성벽이 안에서 밖으로 무너짐을 당했던 성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했던 성인만큼, 이제 이 성읍이 새롭게 부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권능과 치료의 은혜를 신앙과 마음에 각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면 어쩌다 흐리거나 비 오면 불평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래서 골고루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밤이 오면 아침이 옵니다.

오르막길이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과도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침은 정녕 오며 내리막도 곧 옵니다.

치유의 하나님은 지금도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금 치듯 함을 기쁘게 받으면, 인애와 정의가 살아나면, 그 치유는 급속할 것입니다.

사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결론) 하나님의 치료는 지속적으로 효력이 나타났습니다.

왕하2:22)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치료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완전 치료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에게 주시는 주 보혈의 구원은 완전하고 국가의 치료도 확실할 줄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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